저널명
  남북한 평화와 협력
표   제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과 교류협력에 관한 연구
발행처
  출판부
작성일
  2006-03-06 오후 12: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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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83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과 교류협력에 관한 연구


장 영 권(jangyk21@korea.com)*
(사)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제1장. 문제의 제기
제2장. 평화통합론의 재구성
제3장. 평화복합체에 의한 평화통합
제4장. 정치군사평화와 교류협력
제5장. 경제평화와 교류협력
제6장. 문화평화와 교류협력
제7장. 결론




제1장. 문제의 제기


북한의 핵 개발문제로 인한 북미간의 갈등이 한반도를 먹구름처럼 뒤덮으면서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연 한반도가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회의감마저 든다. 남한과 북한은 이미 한국전쟁을 통해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했고, 그런 만큼 한반도에서는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남한과 북한의 긴장과 대립을 막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남북통합과 민족통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럽의 유일한 분단국이었던 서독과 동독은 지난 1990년 10월 3일 분단의 벽을 허물고 통일의 감격을 만끽했다. 그러나 통일독일은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상당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것은 동서독의 교류와 협력에 있어서 경제적 평화와 문화적 평화를 통해 점증적인 제도적 통일을 이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과 대만간은 경제적, 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양안간의 긴장과 대립을 조정하며 단계적 통합으로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간에 국가통일과 분리독립 문제로 위기의 파고가 때때로 높지만 무력적 충돌로 돌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것은 중국과 대만이 교류와 협력으로 상호의존이 매우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의존적 심화는 나아가 정치?군사적 긴장도 해소하고 평화적 통합과 통일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남한과 북한은 어떻게 통합과 통일을 이루어나가야 할까? 물론 독일식 보다는 중국과 대만간의 모델을 통해 평화적 방법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통일을 하는 것이 후유증을 최소화시키고 통일국가의 발전을 견인해 내는데 유리하다. 남한과 북한은 그동안 정치?군사적 긴장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긴장을 해소하고, 국가 통합력을 높여왔다. 즉, 남한과 북한은 경제적, 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정치?군사적 대립과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적인 통합과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교류와 협력에 관한 우리의 입장은 남북한의 평화통합에 있다고 보고, 지속가능한 평화의 실현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즉, 남한과 북한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평화통합의 방안과 과제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평화와 평화통합의 개념을 살펴보고, 남한과 북한의 실질적인 평화통합의 조건이 되는 정치?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의 교류협력의 평화통합 기능과 전략, 현황과 문제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을 확대하기 위한 교류협력의 정책 과제와 대안들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제2장. 평화통합론의 재구성


1. 평화의 개념 정의

평화의 개념을 초기의 학자들은 대체로 ‘전쟁이 없는 상태’ 즉,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를 가리켰다. 말하자면, 국가간 전쟁의 부재와 주권 불간섭이 지켜지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국가간에 무력충돌이 없고, 국가주권의 담을 높이 쌓아 상대방 국가의 내정에 간섭만 하지 않으면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소극적인 의미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평화란 일반 전쟁(세계대전)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강대국의 평화는 강대국이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국제평화란 국가간에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세계평화란 내전을 포함하여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전쟁이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는 이제 소극적인 개념이 되었다. 전쟁의 역사는 기록되었어도 평화의 역사는 기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쟁은 없으나 평화는 불가능한(War impossible, peace unlikely)’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평화의 개념이 필요하게 되었다.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는 인권·자유·정의와 같은 원리에 따라 삶의 질이 보장되는 상태를 말한다. 개별국가와 세계속에 존재하는 각종 구조적·제도적 폭력의 해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여기서는 전쟁의 부재와 불간섭뿐만 아니라 갈등·대립·폭력의 근본 원인까지 제거하여야 참된 평화가 유지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의 개념은 국제질서의 새로운 재편을 가져온 탈냉전 시대에 다시 수정되어 정의되고 있다. 냉전기의 평화는 주로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상정하였으며 전쟁억제, 국제분쟁의 해결, 군비확산 방지 및 군비축소 등 ‘소극적 평화’를 중심 주제로 다루었다. 이에 반해 1990년 이후 탈냉전 시대에는 ‘적극적 평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즉, 동구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로 핵전쟁 등 세계대전의 위험이 사실상 사라지고 새로운 국제체제가 등장하면서, 국제사회의 새로운 관심사 즉, 지역분쟁, 빈곤, 인권, 환경, 여성, 난민, 마약, 에이즈 등 이른바 ‘전지구적 난제(Global Problematique)’의 해소가 그 주안점이 되었다.
따라서 탈냉전기의 평화는 인권·자유·정의와 같은 원리에 따라 삶의 질이 보장되고 위협과 폭력, 착취가 없는 상태인 적극적인 평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현대적 의미의 평화란 힘에 의해 외양상으로 평온이 유지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군사, 경제, 문화 등의 모든 영역에서 폭력과 착취가 제거된 상태를 의미한다.
평화의 개념은 이처럼 다의적이고, 가치 대립적이어서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구나 평화의 개념은 탈냉전기 이후에 새로운 평화위협 요인이 등장하고 있고, 이를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한반도의 전쟁방지와 남북통합을 통한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평화의 개념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의 평화의 개념은 우선 ‘전쟁의 방지’라는 소극적 개념을 중시한다. 내전을 포함한 전쟁의 부재상태로서의 평화는 국민들에게 행복, 복지의 충실, 번영 등을 보장할 수 있는 기본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국가간의 이익 추구에 따른 갈등과 군사적 경쟁과 위협이 없는 상태도 평화의 개념속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즉, 평화의 개념을 단일한 의미가 아닌 ‘복합체적’ 의미로 고찰해야 한다.
복합체적 의미의 평화란 ‘인권?자유·정의와 같은 원리에 따라 개인의 삶의 질이 보장되고 인류공동체의 공동번영을 위하여 국가간에 경제적 이익과 문화적 가치 추구에 따른 갈등, 정치적 주권침해와 군사적 위협, 착취와 이를 위한 폭력(전쟁)이 없는 상태’이다. 국가간과 그 사회 속에 존재하는 각종 구조적 폭력과 착취의 해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인류공동체적 평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개별 국가간에 전쟁의 부재와 불간섭뿐만 아니라 갈등·대립·폭력의 근본원인까지 제거하여 복지와 번영을 위한 인류공동체를 형성해야 지속가능한 평화가 유지, 구축된다고 보는 것이다.

2. 평화복합체와 평화통합론

복합체적 의미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평화의 조건’이 복합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평화의 조건은 전쟁의 원인론을 바탕으로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이론을 원용하여 새롭게 제시할 수 있다. 지역 및 국제분쟁의 원인론은 많은 이론적 분류가 성립되었지만 그것들은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예로 로젠(S.J. Rosen)과 존스(W.S. Jones)는 전쟁이론의 원인을 힘의 비대칭성, 내셔널리즘, 경제적 자극, 군비경쟁 등 열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분쟁원인 및 행동의 대부분을 이 유형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지만 이것을 크게 정치?군사적 원인, 경제적 원인, 문화적 원인으로 보다 추상화시켜 새롭게 유형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평화의 조건을 정치?군사적 평화(정치군사평화), 경제적 평화(경제평화), 문화적 평화(문화평화)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이것은 정치?군사적 문제, 경제적 문제, 문화적 문제에 있어서 대립?갈등이 확대되지 않으면 전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갈퉁은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이후에는 구조적 폭력이 인간의 욕구를 다치게 해도 가해자가 확실치 않아 그 누구도 책임질 수도 없는 문제라고 보고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으로 구분했던 것을 확산시켜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의 삼각관계로 역동한다고 설명했다. 갈퉁은 이러한 폭력과 관련 “만일 인간의 현실에 있어서 신체적?정신적 실현이 그의 잠재적 실현 이하의 제약을 받고 있다면, 거기에는 폭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폭력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고, 자아실현이란 원망에의 도달을 방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갈퉁의 이와 같이 정의된 폭력은 ‘직접적 폭력(direct violence)’과 ‘간접적 폭력(indirect violence)’ 또는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문화적 폭력(cultural violence)’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직접적 폭력에는 전쟁, 테러, 린치, 폭행 등을 들 수 있다. 구조적 폭력의 예로는 사회적 구조에서 오는 빈곤, 억압, 인종차별, 사회적 불공정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두 가지 폭력의 모든 이면에는 문화적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폭력은 문화적으로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치, 이념 등에 의한 것이다. 갈퉁은 이와 같이 폭력은 주로 문화적 폭력으로부터 구조적 폭력을 경유하여 직접적 폭력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갈퉁의 구조적 폭력의 개념은 갈퉁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했으나 격심한 비판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전쟁학’의 창시자인 부툴(Gaston Bouthoul)은 “인간의 발육과 완전한 개화를 저해하는 것은 모두가 구조적 폭력”으로 되어 버리기 때문에 갈퉁의 폭력개념은 완전히 혼란된 개념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갈퉁을 위대한 평화연구자라고 인정하는 볼딩도 중대한 유보를 하고 있다. 그는 갈퉁의 개념은 오늘날 세계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소재를 분명히 밝히는 데에는 공헌했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결법의 발견을 더욱 어렵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갈퉁의 폭력 개념은 용어의 추상성과 접근의 모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소 수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쟁과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고 갈퉁의 이론을 원용하여 지속가능한 인류공동체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평화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지속가능한 평화의 개념에 따른 평화의 조건들은 정치군사평화, 경제평화, 문화평화의 세 가지로 유형화된다. 정치군사평화는 갈퉁의 직접적 폭력의 해소와 유사한 개념으로 주권침해와 정치적 탄압, 전쟁?테러 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그리고 문화평화는 가치?역사?사상 등의 왜곡?배척 등이 없는 상태라고 개념화한다. 경제평화는 약탈적 경제구조형성과 이를 통한 경제적 수탈, 배분의 왜곡 등이 시정된 것을 의미한다.
복합체적 평화개념은 평화의 복합적 조건(경로)인 정치?군사적 조건, 경제적 조건, 문화적 조건 등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지속가능한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인류공동체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평화의 조건(경로)’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평화는 정치군사평화, 경제평화, 문화평화가 조화를 이룬 상태이고, 이러한 평화를 추진해가는 지역내 국가군을 이루는 복합적 집성체 또는 복합적 동학을 특히 ‘평화복합체(peace complexes)’라고 한다. 평화복합체론은 ‘평화는 지역내의 국가간 복합체적 경로(조건)를 통해 실현된다’는 명제이며, 이의 이론적 근거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규모는 지역적 수준과 복합체적 영역, 즉 평화통합의 이론이다.
평화복합체는 지역을 단위로 하여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평화조건들에 대한 주요 인식과 관심이 깊이 상호 연계되어 국가적 평화문제가 독자적으로는 분해되거나 해결될 수 없는 일련의 국가군이 참여하여 복합체적 평화조건들을 이행해 가는 평화체제 또는 평화통합체로 정의할 수 있다. 평화복합체의 내적 역학관계는 평화의 상호의존이 우호 혹은 적대관계에 의해서 추동되었는지에 따라 한 스펙트럼을 따라 배치될 수 있다. 부정적인 극단에는 갈등 조성(conflict formation), 중간에는 평화레짐, 긍정적인 극단에는 다원적 평화공동체가 위치한다.
따라서 평화복합체가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갈등과 분쟁이 야기되는 것을 방지하고 평화공동체로 지향하기 휘해서는 평화의 조건들을 평화적 방법으로 이행해 나가야 한다. 남한과 북한의 경우 전쟁 또는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선 남과 북이 평화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한 통합, 즉 평화의 조건들을 복합적으로 이행해 가는 ‘평화통합(peace integration)’을 추진해야 한다. 이 때의 평화통합이란 평화조건들을 복합적으로 이행해 가면서 주권이나 결정권의 독립적 속성을 궁극적으로 포기하고, 공동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공동자원을 투입시켜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통합은 자율적 관계라는 점에서 폭력적 수단까지 포함하는 통일과 구별되며, 기존의 통합이론의 통합의 개념과도 다소 차이가 있다. 기존의 통합이론은 대개 사회?심리적인 면이나 정치?제도적인 면의 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평화통합은 평화의 조건인 정치군사평화, 경제평화, 문화평화 등의 교류협력이라는 경로를 통해 평화적으로 평화복합체 내의 국가통합을 이루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평화통합은 인간이 다같이 희구하는 평화질서를 전쟁이나 기타 폭력의 사용 배제라는 소극적 방법으로서가 아닌 평화복합체적 평화공동체 형성의 인간 본성의 속성을 활용하는 적극적 방법에서 이룩하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평화통합이론(peace integration theory)’은 정치?군사면에서만 다룰 수 없고 광범위한 인간학, 즉 경제학, 문화학 등이 모두 동원되어야 의미 있게 되는 종합과학의 이론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평화와 평화통합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로 동일 연장선상에 있음을 의미한다.
평화조건들의 평화복합체적 복합적인 이행에 의한 평화통합의 핵심은 사회기능의 평화적 통합에 있고, 이에 따라 평화통합이론과 기능주의는 상호 밀착되어 있다. 평화통합 행위는 기존의 남한과 북한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갈등과 대치를 해소시키거나 적어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평화통합의 진전은 곧 평화와 평화체제의 강화를 가져온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이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제3장. 평화복합체에 의한 평화통합


1. 평화복합체에 의한 평화통합의 기능

국가단위를 넘는 평화복합체적 평화통합에서는 폭력의 배제, 비폭력의 사회변화를 갈구하는 ‘평화에의 의지’가 주된 추진력이 된다. 물론 유럽공동체와 같은 경제공동체가 성공한 지역통합의 한 사례로 나타나 있지만, 국가의 평화통합에 관한 주된 관심은 전쟁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국제정치, 특히 평화의 연구는 국가간 갈등을 해소하고 전쟁을 방지하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에서 말하는 ‘힘(국력)’은 그 개념이 모호하고 복잡하여 힘을 중심으로 한 국제평화유지는 한계가 있으며, 이에 따라 보다 영구적인 전쟁예방 조치로서 모색되는 분야가 평화복합체에 속한 국가간의 평화통합이다.
한국은 현재 평화복합체내의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평화통합을 통한 통일을 중요한 과제로 안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은 분리된 두 개의 정치?경제?문화 체제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지역수준의 평화통합과 동일하게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한의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평화통합이론에 기초하여 평화로드맵이나 통일로드맵을 구상해낼 수 있다.
한반도 지역에서 평화복합체를 구성하고 있는 남북한 사이에 교류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인 평화통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첫째, 남북한간의 평화통합 확대를 위한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이 적극 부각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남북한간의 교류협력의 추진은 유럽 등의 지역에서의 지역통합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유럽통합의 과정은 일정 분야에서의 통합과 이에 따른 확산효과의 발생, 그리고 이에 대한 적응의 순환과정으로 볼 수 있다. 남북한간에 추진되는 다양한 교류?협력은 협력 기반의 취약으로 인해 기존의 통합의 성과에서 비롯되는 확산효과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에는 유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긍정적 요소가 존재한다. 즉, 민족통일의 실현의지가 남북교류와 협력의 대전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반 분야에서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기능적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이 통일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작업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통일의 당위성으로부터 여러 분야에서의 교류협력 사업의 필요성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둘째, 남북한 당국이 평화통합을 확대하기 위한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교류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를 수 있겠으나 적어도 교류와 협력이 당위성에 대해서는 양측이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한 당국은 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교류와 협력 필요성의 논리를 개발하여 북한측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즉, 교류협력에 대한 북한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셋째, 남북한 평화통합 확대를 위한 교류협력의 추진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개인 및 단체의 지지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한 사이에는 아직 상호 적대적 관계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호간의 교류와 협력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계층이 존재한다. 이러한 계층의 규모가 확대된다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계속적 추진은 난항에 부딪힐 것이다. 반면 남북 교류협력을 적극 지지하는 계층도 있다. 남북 교류협력 일반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들이나 또는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찬성하는 계층, 그리고 대북지원사업 관련 산업 분야의 종사자 중 남북 협력으로 사업의 기회가 확대될 수 있는 기업의 경영자 및 근로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따라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교류협력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직접적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으로부터 가능한 한 폭넓은 지지를 유도해 내야 한다.
넷째, 남북한의 평화교류와 협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평화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제도화의 수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제도적으로 상설화한 남북한간 평화교류협력의 기구를 설치, 운영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일단 평화기구가 설치되면 소속원들은 기구의 존재 이유를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라도 교류협력의 아젠다와 방안을 지속적으로 제안해 냄으로써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다. 상설 교류협력기구는 비록 초국가적 기구가 가지는 권한과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정보의 축적과 업무의 일관성을 구현함으로써 의견의 조정과 합의사항의 시행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물론 민간단체의 활동이 정부 정책의 도구로 활용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비공식적 차원에서 민간단체와 정부와의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좀더 광범위한 분야에서 한층 더 효과적인 교류협력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다.

2. 평화복합체에 의한 평화통합의 전략

한반도 지역이라는 평화복합체내의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을 위한 구체적 추진전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평화복합체내의 국가들의 평화통합은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정치군사평화, 경제평화, 문화평화의 복합적 이행체제와 이들의 상호 이행과정이다. 그러므로 남한과 북한이 평화복합체적 평화통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단계적, 복합적, 중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평화통합의 시작은 저위정치 (low politics)의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저위정치의 영역 가운데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그리고 가시적인 성과를 조기에 이룰 수 있는 경제평화의 영역을 우선적으로 평화통합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통합의 경우 석탄과 철강분야의 협력을 강화한 것이 그 예이다.
둘째, 상호 이질적인 가치, 이념 등을 동질화할 수 있는 문화적 평화 영역의 교류협력을 경제적 평화영역과 병행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문화평화의 영역 확산에 의해서 경제평화의 영역이 보다 견고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평화 영역과 문화평화 영역의 교류협력이 확대되면서 신뢰구축과 함께 정치군사 평화영역으로 평화의 파급효과를 전이시켜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평화전이’라고 할 수 있는 데 평화전이의 확대에 따라 교류협력은 보다 강화된다. 말하자면 정치군사평화통합은 경제평화통합과 문화평화통합의 불가피한 부수 효과로 나타나게 된다.
넷째,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의 과정에서 강화된 교류협력을 지속가능한 체제로 유지시키려면 평화전이 효과를 제도화해야 한다.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초국가적 권위체를 창설하여 평화통합 과정을 관장하고 이를 심화시킬 수 있다. 초국가적 권위체가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평화통합의 확산효과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관계는 특수관계적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의 추진이 쉽지 않다. 합의사항의 이행을 보장할 실질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어 운영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경제적 평화통합과 문화적 평화통합의 점진화에 따른 정치?군사적 평화통합에 수반되는 남한과 북한의 이행보장적 기구의 제도화는 한반도에서의 영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된다.

3. 평화통합을 위한 교류 방식

인접국가간의 평화복합체적 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한 통합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나는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적(NAFTA)와 같이 역내 국가간의 유사한 ‘제도통합에 의한 경제공동체(institutional economic community)’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대만?홍콩과 같이 상이한 제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류협력에 의해 생산요소의 보완적 결합을 통한 통합이 이루어지는 ‘기능적 경제공동체(functional economic community)’이다.
중국과 대만간에는 제도 및 체제의 상이성도 존재하고, 교류협력을 위한 제도적 틀이 부재한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평화와 문화평화의 영역에서 교류협력의 확대 및 심화가 이루어져 왔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지속적인 정치?군사적 갈등구조 하에서 활발한 경제적, 문화적 평화 교류와 협력이 심화?확대되어 왔다는 점에서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과 대만은 정치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경제적 요구를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인적?물적 교류를 포함한 문화교류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 괄목한 관계 발전을 이룩해 왔다. 이질적인 요소가 강한 남한과 북한은 중국?대만?홍콩식의 모델에 군사적 평화통합을 병합하여 평화통합을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을 위한 교류협력은 1970년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상봉 제의에서 시작했다. 남한과 북한의 교류협력은 1970년대부터 소련의 해체로 냉전체제가 붕괴된 1990년대 초까지 ‘선 교류협력, 후 정치군사’로 인한 치열한 명분 싸움이 전개되었다. 1991년 12월 남북한 총리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고, 1992년 2월 상호 비준함으로써 남한과 북한은 남북 불가침과 평화공존을 국내외에 천명했다. 남한과 북한은 이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고, 다각적인 교류와 협력으로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여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함으로써 분단의 질곡에서 역사적 획을 긋게 되었다.
남한과 북한은 특히 남북기본합의서 제3장에서 ‘남북교류협력’을 실시하기로 하고, 관련 부속합의서에서 경제교류협력, 사회문화교류협력, 인도적 교류협력(문제해결)으로 나누어 구제적인 실천 프로그램을 밝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한과 북한의 상호불신과 불이행으로 사실상 효력이 발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인 평화통합과 국가통일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체결한 ‘6?15남북공동선언’은 평화통합을 촉진하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남한과 북한은 6?15선언을 통해 정치군사평화, 경제평화, 문화 평화를 위해 진일보한 쾌거를 합의했다. 따라서 한반도 지역의 평화복합체에 속한 남한과 북한이 평화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평화의 조건별로 정치군사평화 교류협력, 경제평화 교류협력, 문화평화 교류협력으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제4장. 정치군사평화와 교류협력


1. 현황

남한과 북한의 정치군사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은 주권침해 방지와 전쟁방지를 위해 정치?군사적 신뢰조성, 군축, 평화보장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과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남북화해)과 제2장(남북불가침)의 내용에 따라 상호체제 인정과 존중, 내정 불간섭, 파괴?전복 행위 금지, 군사협정 준수, 국제무대의 대결 중지, 연락사무소 설치?운영,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군사 직통전화 설치, 정치 및 군사위원회 구성 운영 등을 교류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 남북한은 정치?군사적 교류와 협력에 있어서 각각 제도적 통일 방안을 제시하여 대내외적으로 정권의 합법성을 과시하고 통일논의의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였다. 이로 인해 남한과 북한은 오히려 상호간의 불신을 초래하고 대립과 갈등을 더욱 조장하였으며, 상호 이해와 협력의 증진에 필요한 경로를 차단하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남한과 북한은 정치군사평화의 확대를 위해 국가 최고통치자에서 총리, 장관급을 비롯하여 실무자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남북한 당국자 회담을 개최해 왔다. 남한과 북한의 정치군사평화의 확대를 위한 주요한 합의서는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 등이다.
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이 최초로 합의한 사건이자 이 성명 1항에서 명시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이 이후 남북한간의 기본적인 통일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1973년 8월 8일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을 빌미로 북한이 일방적인 대화중단을 선언하였다. 남북한은 다시 1989년 2월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을 개최함으로써 1980년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 이후 9년만에 당국간 회담을 개최하였다. 이후 남북한간은 총 160여회에 이르는 회담과 접촉을 갖게 되는 데, 그 결과물이 1991년 12월 남한총리 정원식과 북한총리 연형묵이 서명하고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이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정치적 선언’정도로 의미를 축소시키고 대화를 중단했다. 그후 남북한 2000년 6월 역사적인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김정일 북방위원장과의 회담을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한반도에 본격적인 해빙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장관급 회담은 준정례화되어 2000년 7월 첫 회의와 2004년 5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진행되면서 주요한 남북 현안을 논의하는 장이 되었다. 남북장관급회담은 서울?평양?제주도?금강산 등에서 개최되어 그동안 경의선 철도 연결,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남북경협위원회 설치, 철도 및 도로 착공, 북핵문제, 국방장관 회담 등을 합의하고 이행해 왔다.
그러나 남북장관급회담은 주로 경제적, 문화적 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에 착실한 진전에 기여한 데 비해 한반도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인 군사적 문제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군사적 문제를 다루기 위한 회담은 2000년 8월 제2차 장관급회담에서 남북 국방장관회담 개최에 서로가 동의하고, 2000년 9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되었다. 그 후로 몇 차례의 실무접촉과 남북군사실무대표회담을 진행하여 다소의 진전을 이루어냈다. 남한과 북한은 다시 2004년 2월 제13차 장관급회담과 5월의 제14차 장관급 회담을 통하여 장성급 남북당국자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2차례의 장성급 회담을 열었다. 남한과 북한은 군사적 회담을 통해 서해상의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 등을 합의하고 이행하였다.
남한과 북한의 정치?군사평화의 확대를 위한 교류협력은 주로 장관급회담을 통해 추진해 왔다. 장관급회담은 남북한의 주요 경제?문화?군사적 현안 및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실질적인 대화의 조정 및 관리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2004년 7월 남한 정부의 김일성10주기 조문거부, 대규모 탈북자 기획입국 등을 문제 삼고 15차 남북장관급회담, 장성급회담 실무대표회담 등을 잇달아 거부하여 장기간 공전되었다.
다행히 북한이 봄농사철을 맞이하여 비료지원을 받기 위해 10개월여만에 대화 재개를 요구하여 2005년 5월 16~19일 개성에서 출퇴근 남북차관급회담이 개최되었다. 남북한은 차관급회담에서 6월 21~24일 서울에서 제15차 장관급회담을 열고 군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 문제를 계속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제16차 장관급회담이 2005년 9월 13~16일 평양에서 개최되어 남북경협 확대 등에 관해 합의했다. 이어 2005년 12월 13~16일 제주에서 제17차 장관급회담이 개최되어 9?19공동성명 이행 등에 관해 논의했다. 이처럼 남북한은 정치군사평화를 위한 교류와 협력은 다시 복원되어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추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하면 중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다 견고한 상설화된 제도가 필요하다.

2. 평가

정치군사평화의 확대를 위한 남한과 북한의 교류협력의 실질적인 창구인 남북장관급회담은 중단 이전까지 획기적인 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 남북대화가 몇 번의 특사방문과 최고 지도자들의 선언적 제의를 통해서 비정례화된 회담이 진행되었다면 남북장관급회담은 이러한 비정례화된 틀을 어느 정도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정례화한 장관급회담이 상호 신뢰구축을 훼손시키는 몇 사안들로 인하여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남북한은 앞으로 평화통합의 과정에서 정치?군사적 긴장국면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한의 정치?군사적 교류협력은 핵문제 등으로 인한 북?미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므로 북?미갈등이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한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실효를 거둘지 미지수다. 남한과 북한은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에 따라 심하게 요동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반도문제를 민족 주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정치군사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남북한의 정치?군사적 교류협력은 경제적, 문화적 교류협력의 진전이 계속되고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에 따른 비무장지대를 통한 인적?물적 교류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지속되고 있는 경제적, 문화적 교류협력이 정치?군사적 교류협력을 추동해 내고, 나아가 남북한간 정치?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도모해 평화를 구축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화해협력을 위한 민족사의 대전환기를 맞이하면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한간에 정치?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를 확대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당국자간 대화통로를 상설화, 정례화함으로써 평화지향적인 평화통합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해 가야 한다. 앞으로 남한과 북한은 정치군사평화 확대를 위해 남북한간 상생의 구도로서 상호의존을 심화시키고 평화통합을 실질적으로 진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3. 정책과제

남한과 북한의 정치군사평화의 확대를 위한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호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북장관급 회담이 14차례 개최될 정도로 준정례화된 상황에서 10개월여 동안 중단되었던 것은 남북관계가 아직 완전한 상호신뢰구축이 안 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남한과 북한이 돌발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것이 전제되어야 남북한간의 정치군사평화가 실질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칭)남북평화기구’의 상설적 운용화가 필요하다. 남북평화기구를 통해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남북관계의 내실 있는 발전과 평화를 도모해 갈 수 있다. 제도의 상설적 운용은 장관급회담 등의 파행을 막을 수 있고, 회담 중단 등의 문제가 생기면 조기에 수습하여 정상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금강산 관광으로 인하여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지 않았다. 또한 개성공단사업도 북한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키고 남북한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있다. 개성공단사업은 남북한간에 극단적인 군사적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군사전략적 요충지에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성공단사업의 정치군사평화에 대한 기여 의미 역시 매우 크다. 즉, 금강산사업과 개성공단사업은 경제적, 문화적 평화 확대의 기여 못지않게 정치군사적 평화 확대에 크게 기여하는 남북한의 대표적인 평화창출 사업이다.
남한과 북한간의 신뢰회복과 정치군사평화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남북한은 군사적 대결 종식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공동번영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남북한의 평화체제의 구축이 지금 당장의 실현이 어렵다면 정상회담을 정례화하여 ‘남북평화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발효의 재천명 등이 필요하다. 나아가 남북한은 적당한 시점에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확대하고 군축협상을 통해 평화를 상호 보장해 나가야 한다.


제5장. 경제평화와 교류협력


1. 현황

경제평화는 경제적 교류협력을 통해 대립,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경제적 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은 남북교역과 남북협력사업으로 구성되는 데, 남과 북이 민족경제교류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내부거래로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말한다. 이는 문화적 교류보다 상대적으로 시장경제 논리에 충실하고 상호주의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의 경제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은 그 동안 정치?군사적 상황에의 종속성, 북한의 경제난, 경협 시스템의 부재에 따른 불투명성과 불안정성, 국제시장여건의 제한성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다. 1980년대 말 탈냉전 및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남북한간의 경제 교류협력은 정치?군사적 갈등 하에서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남북 평화통합이란 측면에서도 점차 경제평화의 동인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남북한의 경제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은 대부분 교역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치군사평화의 기복에도 불구하고 교역량과 참여업체가 증가해 왔다.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7?7선언’이후 1989년 1월 북한물자의 최초 반입으로 시작된 남북한의 경제적 교류협력은 그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2002년의 경우 432개 업체가 남북교역에 참여하였으며, 반출입 품목은 568개에 이르렀다. 남한은 2002년 이후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북한의 제2의 무역상대국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의존도도 2001년 15.1%에서, 2002년에는 22.1%, 2003년에는 23.3%로 늘어났다. 이는 남북한간의 경제평화를 위한 교류와 협력이 북한의 평화적 변화, 즉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는 지렛대로서의 역할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남북한간 교역이 시작된 1989년 이후 2004년 12월까지 누적 교역실적은 49억9216만 달러가 된다. 이중에서 북한으로부터의 반입액은 26억1358만 달러인데 비해 반출액은 23억7858만 달러이다. 동기간의 누적 명목수지는 남한이 2억3500만 달러 적자이나 비거래성 교역을 제외한 누적 실질수지는 이보다 적자폭이 훨씬 큰 18억4467만 달러이다. 남북간 물자교역은 매년 증가추세를 보여 2005년 10월 현재까지의 집계가 8억7500만 달러에 이르고 있고, 2005년말까지 남북교역 사상 최초로 10억달러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남북한간의 거래성 교역(상업적 매매거래, 위탁가공)중 상업적 매매거래는 초기에 대부분 해외중개상을 통한 간접교역 형태로 진행되어 오다 1990년대 중반부터 농산물, 한약재 등 일부품목을 중심으로 교역 당사자간 직접계약을 체결하여 거래하는 직접교역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통행, 통신 제약에 따른 거래위험을 줄이기 위해 중개교역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남북한간의 거래성 교역중 위탁가공 교역은 1992년 처음으로 실현된 이래 빠른 증가추세를 보였으며, 2004년의 경우 전체교역의 25.3%, 거래성 교역의 50.6%를 차지하였다. 위탁가공 교역의 급속한 증가는 남북한 모두가 유인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북한은 생산과정으로 쉽게 통제하고 손쉽게 외화를 획득할 수 있고, 남한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의 위험부담 없이 남한에 비해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위탁가공 교역 품목에 있어서는 섬유류가 80% 이상을 차지하나 최근에는 전자?전기분야 등으로 점차 위탁가공 교역 영역이 다변화되고 있다. 참여 업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2004년 118개 업체)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설비투자, 공정관리와 기술지도 등의 문제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 부문에서는 개성공단 시범단지 18개 업체를 포함하여 2005년 1월말 현재, 누적 협력사업 승인업체 수는 2002년 25개에서 54개로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괄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남한과 북한은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으로 남북경협 교류와 협력은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활성화되게 되었다. 금강산관광사업은 2003년 9월 이후 육로관광이 정례화한데 이어 2004년에는 관광객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여 안정적 추진기반을 확보하였다. 개성공단사업은 2000년 8월 개성시와 판문점 일대의 2000만평을 3단계에 걸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자유경제지대(공단 800만평)와 복합 배후도시(1200만평)로 개발하기로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추진한 사업이다. 개성공단사업은 그 동안 북핵 위기속에서도 사업 이행을 위한 남북한의 의지와 노력으로 2003년 6월에 착공식을 거행하고, 2004년 12월 첫 시제품을 생산함으로써 본격적인 사업추진에 돌입하게 되었다.
남한과 북한은 개성공단 건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통관?통신?검역합의서 채택(2002년 12월 8일), 투자보장 등 4개 경협합의서 발효(2003년 8월 20일), 개성공단?금강산 통행합의서 체결(2004년 1월 29일) 등에 합의했다. 종합형 경제특구를 지향하고 있는 개성공단사업은 남한의 수도권에 인접해 있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시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언어소통이 원활하고 양질의 저임금(월임금 US$ 57.5)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중국보다 나은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2. 평가

남북한간의 상업적 물자교역 규모는 1995년 2억달러 수준을 넘어선 이래 증가율이 점차 완만해지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대북지원 물자와 금강산사업 반출물자 및 경수로 사업관련 중유 지원분 등을 포함한 것이므로 이들 지원물자를 제외한다면 남한 경제가 침체한 1998년을 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간 남북한 교역규모는 대략 2억5천만 달러 수준에서 정체현상을 보여 왔다. 남한 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든 1999년 이후 다시 남북한간의 거래성 교역이 증가했으며, 특히 2000년도에는 남북정상회담 등 긍정적 환경변화에 힘입어 거래성 교역이 다소 증가했고, 2004년말 현재 남북한 총교역액은 7억5878달러에 이르렀다.
1989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된 교역위주의 남북한간 경제적 교류와 협력은 크게 경제적 동기에 의한 민간부문의 교역 및 투자 사업과 정치 및 인도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진 정부차원의 대북 지원 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민간교역은 정치·군사적 긴장상태 하에서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정부차원의 지원과 함께 남북관계의 극단적 악화를 예방하는 안전판 역할을 담당하였다. 예를 들면 금강산관광사업이 실행된 이후 2002년 6월 발생한 ‘서해교전’ 사태가 조기에 수습될 수 있었던 것은 남북한 경제평화의 확대가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켰던 사례로 볼 수 있다.
남북한간의 경제평화를 위한 교류와 협력의 확대는 금융위기 이후 ‘북한 리스크’를 경감시킴으로써 남한경제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 제고에 기여하였으며, 남북교역 및 금강산관광사업으로 인한 외화수입은 북한경제의 유지 및 부분적 회복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아직 남북한간의 경제평화를 위한 교류협력 관계는 많은 장애요인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 위주의 교역은 높은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으며, 통신 및 왕래의 제약요인으로 인해 기업의 효율적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남한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제정 당시 남북한간의 교류협력을 촉진 장려한다는 긍정적 취지에서 출발하였으나, 그동안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수정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과도한 위임조항 및 준용조항을 축소해야 하며, 기타 국내법과의 모순가능성 해소 및 남북교역의 민족 내부거래 원칙과의 일치성 확보문제는 시급한 과제이다.
북한측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데, 나진·선봉 지대 개발계획 추진 이래 외자유치 관련 법규의 개정 및 제정이 이루어졌으나, 과도한 행정적 규제 및 북한 국내경제와의 연계성 미비의 문제점은 물론 남북경협에 관한 법규의 모호성 등의 장애요인이 존재하므로 이의 개선이 시급하다. 더욱이 북한의 경제체제는 아직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설사 남북한 당국간에 합의된 투자보장 등 제도적 장치가 발효절차를 완료하더라도 실질적 적용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정부와 민간기업의 명확한 역할 구분이 곤란하기 때문에 남북경협 사업의 수익성 추구 원칙이 지켜지기 어려우며, 이는 곧 남북경협사업 확대 심화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즉, 위탁가공 교역을 포함한 거래성 남북교역의 지속적 확대와 남북한 산업간의 상호보완성 구현을 위해서는 남한기업의 대북 투자 확대 및 수익모델의 창출이 급선무이나 과다한 거래비용과 북한체제의 제약 요인 등으로 인해 투자확대를 위한 인센티브가 미약한 상황이다.
예를 들면, 최초의 본격적인 대형 대북 투자사업인 금강산 관광사업의 경우에도 수익성을 면밀히 고려하지 못한 계약내용, 육로 관광사업의 지연, 일방적인 외화획득을 목표로 하는 북한의 접근 방식, 투자주체의 자율적 의사결정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장래가 불투명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까지 남북한의 경제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은 교역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사업을 제외한 대규모 직접 투자사업은 아직 부진한 상태라는 점에서 남한경제에 대한 실물경제적 기회비용은 미미하다. 상대적으로 외화유입과 인도적 차원의 지원 등을 통해 북한경제에 미친 영향은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남북관계에 대한 정치·군사적, 문화적 파급효과 역시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과도기적 상황 하에서 남한기업의 비경제적 동기에 의한 경협사업 추진은 수익모델 창출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도 간과할 수 없다.

3. 정책과제

남북한의 경제평화의 확대를 위한 교류협력은 개성공단사업 등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서 정착되어야 한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한의 경제적 교류협력은 대부분 기술 및 자본, 자재공급 등 전 과정이 남한에 의해 ‘올인’되는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남북한의 경제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의 궁극적 목적인 북한 스스로의 경제개발이나 발전과는 거리가 먼 비효율적 모델이다. 남북한간에는 보다 실질적인 경제교류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남한 기업의 대북진출은 투자 효율성과 사업 타당성에 대한 진단모델을 개발하여 산업별, 업종별, 규모별로 나누어 장기 전략적인 구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남북한의 경제적 교류와 협력은 기업의 수익성 차원에서 접근, 남북한 모두에게 실익을 담보해야 한다. 남북한의 경제적 교류와 협력에 참여하는 남한 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와 수익성을 창출해 낼 수 있음은 물론, 북한 개발의 중요 모텐덤으로도 작용해야 한다.
북한은 경제난 타개를 위해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하에 ‘경제개선조치(2002년 7월 1일)’에 이어 시장기능 도입 등 추가 경제개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의식변화로 시장경제 마인드가 확산되는 한편 농업?경공업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생산성이 향상되고 상거래가 활성화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북한은 물자부족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환율 폭등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강?절도, 빈부격차 심화 등 자본주의적 병리현상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북한 지도부가 경제개혁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으나, 체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여 경제개혁?개방 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식량?에너지 등 주요 물자를 대외원조에 의존하는 가운데 SOC가 낙후되고 자체 투자재원이 고갈된 데다 시장경제 운영전문가도 부족한 실정이다.
남북한의 경제평화를 위한 교류협력 확대를 위해서는 첫째, 남북한간의 물류 및 거래비용을 감축해야 한다. 둘째, 대북투자 및 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적 관행 수준에 맞는 법적, 제도적 정비와 이의 조속한 정착이다. 셋째, 북한 경제의 개혁, 개방을 보장하는 단계별 청사진을 마련하여 일관되게 추진되어 한다.


제6장. 문화평화와 교류협력


1. 현황

남한과 북한의 문화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은 정치?군사적, 경제적 평화를 위한 교류와 협력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로 남한과 북한의 가치, 의식, 태도 등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여 동질성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교육, 문학, 예술, 보건, 체육,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 등 여러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을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남북기본합의서 제3장 ‘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제9조~14조 ‘사회문화 교류협력). 또한 이산가족의 서신거래, 왕래와 상봉, 상호방문, 그리고 상대측 지역에서의 자연재해 발생시에 인도적 제공 등도 포함한다(남북기본합의서 제3장 ‘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제15조~18조 ‘인도적 문제의 해결).
남북한의 문화평화를 위한 교류와 협력은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촉진되기 시작했다. 냉전종식과 소련과 동구의 몰락, 북한의 국제적 고립 및 경제난 등 북한이 직면한 위기 상황은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남한은 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여 남북한간의 화해와 교류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당장의 제도적 통일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대북 화해와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공존과 공존공영을 이룩하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선통합 후통일’이라는 구도를 갖고, 남북한의 기능적 통합을 추진해 왔다. 남북한은 중국과 대만과 같이 경제교류 외에 친지방문을 포함한 문화적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간의 실질적 상호의존도를 높이고 평화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방식과 함께 당국차원의 대화와 합의, 정상회담과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동시에 추진하는 병행 방식을 채택하였다. 다시 말해 남북한이 정치?군사적 위협을 완화하고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여 남북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남북한간에 보다 많은 접촉, 정경분리에 의한 민간교류와 협력의 확대, 인도주의적 대북지원 지속 및 이산가족문제의 해결 등 상호 공통점을 확인하고 이를 발전시켜 문화평화를 확대해 왔다.
1998년 11월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2005년 6월 7일 100만명을 돌파했고, 2005년 10월말 현재 110만명 넘는 남한 주민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1989년 이후 2004년까지 금강산관광객을 제외한 남한주민의 북한방문자수는 총 8만1470명이고, 2004년도 방북인원은 2만6213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71.5%나 증가했다. 동기간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은 65건 3930명에 이르렀다. 북한 핵문제가 표면화했던 1993년 이래 소강상태를 보였던 문화적 교류협력사업은 1997년과 1998년에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고, 더구나 최근에는 남북한간 교류가 방북 일변도에서 벗어나 쌍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 분야도 다양화 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문화적 평화 확대를 위한 교류협력은 학술분야에서 평양기술대학 건립추진사업, 남북통일학술토론회, 반일문제에 대한 남북공동토론회와 전시회 등이 그간의 주요 성과이다. 예술분야의 경우는 평양교예단 서울공연, 남북공동사진전, 남북미술전, 평양노래자랑, 고구려전시회 등이 대표적 성과이다. 언론분야의 경우는 주로 방북취재와 북측 예술단의 초청공연 등이 있다. 이밖에 체육분야에서 남북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사상 최초로 공동입장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래, 2002년 부산 아세안게임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 2004년 일본 동계올림픽 개막식 및 아테네올림픽 개?폐막식 공동입장 등 주요한 국제체육무대에서 남북공동입장의 기조를 이어왔다.
북한의 식량난 악화로 인한 인도적 측면의 문화적 교류는 1995년 북한의 수해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인도적 측면의 문화적 지원교류는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정부, 민간단체, 종교계 등에서 식량 및 비료농업개발, 의료품?분유?보건의료 지원 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문화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은 현재 경제적 교류협력에 비해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것은 문화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이 본질적으로 남한과 북한의 사회체제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매우 민감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문화평화의 확대를 위한 교류협력과 관련, 남측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요구가 높은 반면, 북측에서는 이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체제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북한은 주로 대규모사업으로 남측으로부터 상당한 금전적 대가를 획득할 수 있는 사업 외에는 아직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2. 평가

1990년대 이후 경제적, 문화적 평화 교류와 협력으로 북한주민들의 의식은 적지 않게 변화했다. 물론 이와 같은 북한주민들의 의식변화가 전적으로 남북한간의 교류와 협력의 확대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나, 남북한의 교류협력의 확대가 북한 지도부 및 주민의 대남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은 북한의 문학예술 작품이나 남한을 방문한 북한인사의 발언, 북한의 정치?군사정책과 다른 정책과의 분리주의에서도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과거와 달리 풍요로운 삶이나 이윤추구, 그리고 외화획득의 추구, 개인적 삶의 질 향상 추구 등 일상생활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를 부분적으로 중시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변화는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현격하게 나타나고 있다. 보다 넓게 본다면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중국의 시장지향적 개혁개방 성공, 남한의 경제발전, 북한경제의 위기 등 복합적인 요인이 북한의 자본주의와 남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여전히 남북한의 문화평화를 위한 교류협력은 대체로 경제적 관계처럼 활발하지 못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과 대만관계와는 달리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당국간의 협의 및 제도적 장치 마련이 가능해졌다고는 하나, 실질적 측면에서 남북한간 교류협력의 경로가 여전히 많은 제약하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해 남북한 문화적 관계와 북한의 대남인식은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남북한의 경제적, 문화적 평화교류와 협력이 북한의 평화통합의 변화를 어느 정도 유인해 내고 있지만 정치?군사적 긴장도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북한의 완전한 평화통합은 경제적, 문화적 평화에 의하여 촉진되기는 하지만 정치?군사적 갈등과 대립이 이를 상쇄시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3. 정책과제

남한과 북한은 문화평화 확대를 위해서는 먼저 남한과 북한의 민족적 공통점를 찾아 동질성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분단으로 인한 이질성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도적, 민족적 교류협력이 조건 없이 확대되어야 한다. 남북한간의 문화평화가 상호의존이 심화되면 자연스럽게 서독과 동독이 1986년 ‘동서독 문화협정’을 체결한 것처럼 남한과 북한도 지적소유권합의서를 포함하여 ‘남북한 문화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남한과 북한은 이를 바탕으로 문화적 평화 확대를 위한 교류협력을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즉, 첫째 남한과 북한은 공히 문화평화의 교류협력의 촉진을 위한 국내법과 제도를 정비한다. 둘째, 문화의 개념을 평화확대라는 측면에서 유연하게 개념을 정의하고, 영역을 넓혀간다. 셋째, 남한과 북한의 이질적인 요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설적, 제도적 ‘(가칭)문화평화기구’를 구성하여 가동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인도적 측면의 문화적 영역에 대한 남한과 북한의 상호인식을 확대하고,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과 협력제계를 구축해야 한다.


제7장. 결론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의 교류와 협력 사례에서 시사점을 찾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정치?제도적 통합에 종속되어 동서독간의 경제통합이 이루어졌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는 경제적, 문화적 교류의 빠른 확대가 제도적 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통합과정을 진전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현실적 필요와 사상적 해방이 대만과의 관계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상호간의 경제적, 문화적 상호의존관계의 심화는 경제적 부작용을 부분적으로 해소시키고 나아가 정치?군사적 긴장에 대한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간의 경제적 평화를 포함하여 문화적 평화 교류협력의 확대는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며 상호간의 신뢰를 심화시킴으로써 이질적 체제로부터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해소에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남북한간의 합의에 의한 제도적 틀 형성과 제한적인 경제?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은 중국과 대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촉진되고 있다. 남북한도 중국과 대만간의 교류협력을 모델로 하여 1차적으로 정치군사평화의 사안과 경제평화?문화평화의 사안을 분리하여 평화통합을 관리해 가는 것이 요긴하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경제적, 문화적 평화를 확대, 심화시켜 남북한간의 정치?군사적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독일통일 과정에서 동서독간 장기간 지속된 교류협력은 국가통일로 가는 민족통일의 토대가 되었다. 독일분단이 동서냉전의 산물이라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다름 아닌 교류협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독일통일은 ‘접근을 통한 변화(Der Wandel durch Ann hrung)’에 의한 동·서 긴장완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서독의 통일전략은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신뢰를 쌓아 민족공동체를 건설해나가면서 정치통합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는 방안이었다. 이는 결코 서두르지 않은 ‘작은 걸음의 정책(Die Politik der kleinen Schritte)’으로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에 의한 통합방안이었다.
그러나 독일통일의 방안은 통일을 앞당기는 데는 보다 효과적인 측면이 있으나 경제적, 문화적 평화의 확대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통일독일은 동서독이 통일된 이후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평화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통일이후 경제침체와 빈부격차확대, 동서독 주민간의 이질화 등으로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동서독간의 통일은 지나치게 상호주의와 기능주의적 통합으로 접근한 것의 부작용이다. 그러므로 남한과 북한의 독일통일의 교훈에서 부작용과 후유증을 극소화시키려면 기능주의적 통합보다는 평화복합체적 평화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다시 말한다면 한반도 평화복합체내에서 남과 북이 경제평화를 실현하고 이를 토대로 문화평화, 정치군사평화를 실현해야 남북간 평화통합을 실현할 수 있고, 통합 후의 후유증을 극소화시킬 수 있다.
한반도 지역의 평화복합체에 속한 남한과 북한의 정치군사평화, 경제평화, 문화평화의 확대를 위한 교류협력은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을 촉진시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안정, 나아가 동북아지역의 안정과 복지번영공동체 구상 실현에도 크게 기여한다. 그러므로, 남한과 북한의 평화통합을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평화확대를 위한 측면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평화의 조건인 정치군사평화, 경제평화, 문화평화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경제평화, 문화평화, 정치군사평화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복합적으로 추진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남북한의 평화통합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평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평화통합의 구조는 취약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치와 이념의 이질화는 결국 경제평화를 저해하고 나아가 정치군사평화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남북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호 인정과 존중이라는 평화공존 의식을 갖고 공동번영할 수 있는 평화복합체적 평화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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