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말의 상처
작성자
  동 강
작성일
  2007-10-06 오전 8:06:00
조회수
  1735


상처는 사람의 육신에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처는 마음에만 받는 것도 아닙니다.
상처는 사람과 언어 사이에도
뚜렷이 그 흔적을 남깁니다.

이민족 지배하의 삼십육 년,
사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강산이 세 번 반이나 변하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고문을 당하고 난 지 육십 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점점 더해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우수로 좌측 안면 삼회 타격'

어느 코미디의 대사가 아닙니다.
파출소의 사건 조서 내용이랍니다.

'오른손으로 왼쪽 뺨을 세 번 때림'

이러면 훨씬 쉽고 좋을 것을.......

아직 멀었습니다.
법조문이 그렇고, 판결문이 그렇고,
토목공사장의 용어들이 그렇고,
미장원의 용어들이 그렇고,
목수일의 용어들이 그렇고.
심지어는 일상 언어들에서까지도
어렵지 않게 많은 상흔들을 발견합니다.

소대나시, 사시미, 요지, 사라,
무대포, 우동, 후까시, 함바, 비까번쩍......

민소매, 생선회, 이쑤시개, 접시,
덮어놓고, 가락국수, 부풀리기, 현장 식당, 화려하게.....
이러면 될 것을.....
영 다르다 싶으면,
아무래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면 되는 것을.....


지명에 이르면 더 답답합니다.
그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이름을 팽개치고
일본인들이 편의를 위해 한자어로 고친 것이건만,
자기네들도 쓰는 한자어로 억지로 고친 것이건만,
그것도 모르고 덩달아 한자어 투성이로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산책하는 양재천 변에는
'각종 야생화 다량 식재'
이런 팻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들꽃 많이 심음'
이러면 어디가 덧나나요?
구청이 한 일이 가치가 떨어지나요?
권위에 손상을 받나요?

전국에 그 많은 '벌말(들말, 들몰)'을 '평촌(坪村)'으로,
'새터'를 '신기(新基)'로,
'위뜸, 아래뜸'을 '상리, 하리'로,
'무너미 마을'을 '수유리'로, '두물머리'를 '양수리'로,
'뚝섬 시장’을 ‘뚝도 시장’으로....
그 예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모두가 일제 때 바뀐 것이랍니다.
우리는 덩달아 그것을 쓸 뿐만 아니라
일부러 더 만들어 쓰기조차 합니다.
'김'을 굳이 '해태(海苔)'라 하고
'굴'을 '석화(石花)'라고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조선 오백년 동안
한문 때문에 외면당했던 우리 글,
이제 또 일제 때 입은 상처가
반세기가 넘도록 깊어만 갑니다.

더더욱 우울한 것은,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혹시 일제의 잔재는 아닌지,
우리 모두가 아주 잠깐씩만 생각해 보고 쓰면
언젠가는 그 상처가 아물 것입니다.
요컨대 관심의 문제입니다.

내일모레가 한글날입니다.
유네스코가 글자 없는 민족에게
영어와 함께 한글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우리말, 우리 글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이처럼 천대 받는 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말은 그 민족의 얼이 담긴 그릇입니다.
우리말에 이렇게 많은 상처를 남기다 보면
우리 민족이 얼빠진 민족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얼빠진 민족',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한글날을 앞둔 이 가을날,
우리말에 최소한의 관심만이라도 가졌으면 해서
다소 열을 올렸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7. 10. 6

동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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