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Subtitle
  아프간 대통령 줄행랑..초고속 정권 붕괴
Date
  2021.08.16
Register Date
  2021-08-16
Count
  11

   
 
 
 
 
 
 
 
 
 
 
 
 
 
1. 탈레반의 속전속결 아프간 장악..수적 우위 정부군은 뭐했나(종합)
2021. 08. 16.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이 순
식간에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탈레반의 속전속결식 세력 확장
에 관심이 쏠린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정부의 항복을 받
아낸 것은 미군과 동맹군이 단계적인 철수를 시작한 지난 5월 이후 불
과 3개월 만이다. 동맹군의 철수 개시에 맞춰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한
탈레반은 지방 소도시를 거점으로 빠른 속도로 장악력을 높였다. 유엔
아프간지원단(UNAMA)의 데보라 라이온스 대표는 지난 6월 안전보장이
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의 370개 지구 가운데
50개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국제사회는 탈레반의 빠른 세
력 확장을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인 7월 21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탈레반이 이제 아프간 전체 지구들의 중심지 중
절반에 달하는 200여곳을 장악했다면서 "다만 탈레반은 주도를 장악하
지 않은 채 외곽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던 탈레반이 본격적으로 아프간의 주요 거점도시를 공략하기 시작
한 것은 이달 초부터다. 현지 관리 등에 따르면 탈레반은 지난 6일 전
후로 남서부 님로즈주(州) 주도 자란지를 손에 넣었다. 미군 철군 후
처음으로 이뤄진 탈레반의 주도 장악이었다. 탈레반은 그 후 무서운
속도로 지방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수도 카불을 향해 진군했다. 지난
12일에는 아프간에서 2번째와 3번째로 큰 도시인 남부 칸다하르와 서
부 헤라트는 물론, 카불 남서쪽 150㎞ 지점의 거점 도시 가즈니(가즈
니주 주도)까지 차지했다. 탈레반은 또 이튿날인 13일에는 카불에서
불과 50㎞ 떨어진 로가르주의 주도 풀-이-알람까지 점령하며 수도권도
압박했다. 14일 북부 최대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발흐주 주도)에 이
어 15일 카불과 인접한 동쪽 낭가르하르주 주도 잘랄라바드까지 손에
넣으면서 탈레반은 카불을 제외한 대도시를 사실상 모두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5일 아프간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탈레반은 2001년 미군
의 공습으로 정권을 잃은 지 20년 만에 아프간을 온전히 다시 접수했
다. 예상을 깬 탈레반의 빠른 세력 확장에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서방 국가들은 패닉에 빠졌고, 대사관 철수와 자국민의 탈출 계획을
서둘러야 했다. 또 탈레반을 막겠다며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던 북부
지역의 군벌 도스툼과 누르는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으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빠른 속도로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체질적으로 허약한 정부군이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이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를 보면 지난 4월 기준 급료를 받는 아프간군(ANDSF)은 30만699명이
다. 탈레반 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핵심 전투대원은 6만
명이고 탈레반을 추종하는 지역 무장단체 대원이 9만 명, 이외 지지자
들까지 포함하면 총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숫자만 보면 규모 면에선
아프간군이 탈레반보다 우위지만, 아프간군 수가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급료를 타 먹으려고 거짓으로 등록한 경우가 상당수 있기 때문
이다. 실제 병력은 통계의 6분의 1 수준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프간군에 들어간 지원금도 어마어마하다. 아프간군은 연간 50억~60
억 달러(약 5조8천억 원~7조 원)의 국제사회 지원금을 사용했다. 미국
이 '아프간군 기금'(ASFF)으로 지원한 자금만 2005년부터 이달 6월까
지 약 750억 달러(약 88조 원)에 달한다. 무기와 장비, 훈련비 등을
모두 합치면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군에 쏟아부은 돈이 830억 달
러(약 97조 원)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비해 탈레반은 마약거
래 등을 통해 연간 3억∼16억 달러(약 3천억~1조9천억 원)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유엔이 추정했다. 이처럼 병력과 물자 면에서 탈레반보다
우위에 있는 정부군이 대등한 전투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던 점은 이해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지난 20
년간 무려 구축해 놓은 아프간 군경은 탈레반과의 싸움에 '목숨을 걸
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조직을 버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과거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에도 저항했던 탈레반은 9·11 테러의 배
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미국이 벌인 20년간의 전쟁을 꿋꿋
하게 버텨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군 철수 뒤 아프간군은
사실상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으며, 이것이 35만 명에
달하는 군과 경찰 조직이 와해한 원인이라고 전했다. 탈영한 아프간군
병사 타즈 모함마드는 "지난 며칠간은 식량도 물도 무기도 없었다. 처
음엔 특공대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 보급했지만, 점차 뜸해졌고
결국 보급이 끊겼다"고 말했다.

2. 아프간 대통령 '빛의 속도' 줄행랑..초고속 정권 붕괴
강창욱 기자,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국민일보, 2021. 08. 15.
아프가니스탄이 20년 만에 다시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 미군이 철수를
선언한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자마자 백기를 들었다. 정부의 부패와 무능이 탈레반 정권으로
의 회귀를 자초한 것으로 평가된다. 탈레반은 국제사회 시선을 의식한
듯 평화적 권력 이양과 여성 인권 보장을 강조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데 공을 들였다. 압둘 사타르 미르자크왈 아프간 내무
장관은 15일(현지시간) 녹음된 연설을 통해 “과도 정부에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탈레반 협상
가들이 정권 이양을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궁으로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온 지 한 시간도 안 돼 공식 발표가 나온 것이다. 이날 카불에 진입
해 외곽 3개 지역을 장악한 탈레반은 “카불을 무력으로 점령할 계획
은 없다”며 아프간 정부에 항복을 요구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곧바로 사의를 표한 뒤 측근들과 인접
국 타지키스탄으로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보
안상 이유로 가니의 동선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탈레반은 가니의 행방을 확인 중이라고 언론에
설명했다. 압둘라 압둘라 아프간 국가화해위원회 의장은 온라인 영상
을 통해 “그(가니 대통령)는 힘든 시기에 아프간을 떠났다”며 “신
이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말했다. 압둘라 의장은 권력 포기를 거
부해온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을 비판해온 인물이다. 그는 이날 탈레반
과의 협상 테이블에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과 함께 정부 측 협상
자로 참석했다. AP통신은 “그(가니)의 동포와 외국인들이 탈출하려고
경쟁하다시피 했다”며 “이는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 재건을 목표로
했던 서방의 실험이 끝났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과도정부 수장에는 친미 인사로 평가되는 알리 아마드 자랄리 전 내무
장관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의 아프간 접수는 각본을 미리
짜둔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행정부를 장악한 탈레반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침들을 발표하며 국내외 우려를 잠재우는 데 주의
를 기울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공항과 병원을 계속 운영하고
긴급 물품 공급도 끊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프간군 해산을 명령하면
서 군인들에게 귀향을 허용했다. 외국인은 다음주 새 탈레반 정부에
등록하거나 떠나도록 했다. 강제로 잡아두거나 출국을 방해하지는 않
겠다는 얘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ABC방송에 출연해 “카불
에 있는 미 대사관이 완전 철수를 위해 공항으로 이동 중”이라며
“만약 탈레반이 방해한다면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탈레반 대변인이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이 히잡을 쓴다면 교육
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고 혼자 집밖에 나가는 것이 허용된다”고
밝힌 부분도 눈에 띈다. 1996년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엄격한 이
슬람 율법을 앞세워 여성의 교육과 사회생활을 금지했다. 탈레반 정권
이 다시 도래하면서 여성 인권에 대한 우려가 무엇보다 큰 상황이다.
탈레반이 자랄리 전 내무장관을 과도정부 수장으로 유력하게 검토 중
이라는 점은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쓰고 있음을 방증한
다. 자랄리 전 내무장관은 미 연방정부 산하 방송국인 미국의소리
(VOA)에서 20년간 일한 바 있다. 탈레반 입장에서는 미국이 자신들을
내몰고 수립한 과도정부에서 초대 내무장관을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탈레반의 속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각국은 대사관 인력
철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 대사관은 민감한 자료를 소각하며 철수
절차에 돌입했다. 영국도 로리 브리스토 주아프간 대사를 오는 16일
저녁 전까지 탈출시킬 계획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한 지난 5월부터 거세진 탈레반의 공세는 지난
일주일간 매우 빠르게 전개됐다. 탈레반은 2001년 9·11테러 배후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미국 요구를 거부했다가 공
격을 받고 그해 말 파키스탄 접경으로 쫓겨났다. 아프간 정부의 부패
와 무능이 20년 전쟁을 허망한 결말로 이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
식 병력을 보면 아프간 정부군이 30만명으로 탈레반(7만명)의 4배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군 상당수는 명부에만 존재하는 ‘유령 군인’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패한 군경 간부들이 급료를 가로채기 위해 허수로
군인 수를 기재했고 한다. 미국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천문학적 규모의
돈은 증발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1조 달러(1155
조원)를 아프간에 쏟아부었다”고 했다. 미국 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책임론이 제기됐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
결정은 1975년 사이공의 굴욕적인 함락보다 나쁜 속편”이라고 말했
다. 마이크 로저스 하원의원도 “미국은 아프간 여성과 어린이에게 등
을 돌렸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프간 정부군의 급속한 붕괴는 2400여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엄청난 돈이 들었던 지난 20년이 얼마나 무익했는지 보여준
다”고 반박했다. 아프간 정부의 뿌리 깊은 부패가 철군 이유이자 패
망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말 미군 철수를 마
무리하겠다는 계획이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 국방부
와 전쟁 비용 프로젝트에 따르면 20년 전쟁 동안 미군 2448명, 나토
(NATO) 및 기타 동맹국 군인 1144명,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4만7000명
이상, 아프간 군인과 경찰 최소 6만6000명이 사망했다. 뉴욕타임스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가 지속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간
정부와 군대를 영구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화됐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는 군인과 경찰에게 최근 몇 달간 급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탈레반이 이번 달 주요 도
심 공격을 시작했을 때 아프간 군대는 너무 사기가 저하돼 거의 저항
하지 않았다. 지방 지도자들과 고위 지휘관들은 탈레반과 항복 거래를
이어갔다”고 지적했다. 실제 탈레반은 이날 마자르 이 샤리프 교전도
큰 피해 없이 승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간은 우리 정부가 지정한
여행 금지국으로 주아프간대사관의 필수 인력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
려졌다. 기업 종사자 등 일부 인원이 있었지만 지난 6월 말 정부의 철
수 요청으로 지금은 대부분 국내로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사
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이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유관국과 협
조해 대사관도 철수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미군이 막은 이슬람 극단주의, 신장 위구르 번지면 중국엔 '악몽'
중앙일보, 김홍범 입력 2021. 08. 16.
국제사회 초강대국들이 개입했다가 상처를 입는 '아프간 징크스'의 불
똥이 중국으로 튈지가 국제사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
다.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한 만큼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는 주변국들의 오랜 염원이다. 그럼에도 과거
원나라부터 영국·소련에 이어 미국까지 모두 아프간에서 막대한 피해
를 본 채 나오면서 이번에도 열강의 무덤이 재확인됐다. 미국이 아프
간을 탈출하면서 이 후폭풍이 어디로 갈지가 중국의 숨은 고민이 됐
다.

미국의 공백…고민 빠진 中
중국은 15일 카불 함락 직후 중국 중앙(CC)TV 인터넷매체인 앙시망(央
視網)을 통해 현지의 상황만 타전하며 특별한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일대일로’ (Belt and Road Initiative·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
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진행 중인 중국의 입장에선 지정
학적 요충지인 아프간으로의 확장이 가능하다면 추후 중앙아시아 지역
전체로의 영향력 확대도 쉬워진다. 따라서 일견 미국의 아프간 퇴장은
중국엔 중앙아시아 진출을 노려볼 기회를 뜻한다. 미국의 빈자리를 중
국이 채울 수 있어서다. 그러나 탈레반의 복귀를 놓고 중국 당국은 내
심 긴장하고 있다. 그간 아프간의 미군은 중국엔 보이지 않는 이득도
줬다. 중앙아시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미군이 막아내면서 결과적
으로 이들이 세를 넓혀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방파제 역할
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부활한 탈레반이 중국 신장 지역의 독립을 내건 이슬람 테러
단체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을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
게 됐다. 중국 외교의 대원칙은 '하나의 중국'이고, 이를 위협하는 최
대 요인은 대만이다. 그런데 중국 내부적으로 더욱 심각한 건 인종과
종교에서 중국의 주류인 한족(漢族)과 다른 신장 위구르 지역이다. 지
금까지는 엄격한 통제와 강력한 공안 통치로 신장 위구르 지역을 다스
려 왔지만, 미국이 암묵적으로 인정한 탈레반이 신장 위구르의 독립을
지원하려 할 경우 중국으로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위협에 직면
하게 된다. 탈레반과 신장 위구르족 모두 수니파다. 이는 신장 위구르
의 독립 시도에 기름을 붓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티베트를 비롯한 다
른 소수 민족에게도 중국 이탈의 동기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으로 '통일 중국'을 공고히 했던 중국으로선 최악의
악몽이나 다름없다.

중국 정부는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
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탈레반의 2인자로 알려진 물
라 압둘가니 바라다르를 톈진(天津)으로 초청해 고위급 회담을 가졌
다. 이 자리에서 왕 부장은 “중국은 아프간의 최대 이웃으로 주권독
립과 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하며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며 “탈레반
이 ETIM 등 모든 테러 단체와 철저히 선을 긋고 지역의 안전과 발전
협력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탈레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탈레반 정권을 인정할 테니 탈레반 역시
중국 국경선 안으로 개입하지 말라는 요구다. 이에 대해 영국 일간 파
이낸셜타임스(FT)는 “제국들의 무덤(아프간)이 이제 중국을 부른
다”고 진단했다.

중앙아 도미노 우려하는 러시아
중앙아 지역에 혼란이 자국 안보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도미노식 위
기 전파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해 왔던 러시아도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이달 초 “우즈베키스탄
과 타지키스탄군은 탈레반의 도발을 무찌를 준비가 돼 있어야 하며 이
것은 러시아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 대외 혼란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후 러시
아는 중국과 함께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병력 약 1만 명을 동원해 중
국 북서부 닝시아 자치구 칭통샤 연합군 전술훈련 기지에서 합동 군사
훈련을 했고, 동시에 지난 5∼10일 병력 2500명을 투입해 아프간 인근
국가인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대규모 연합 군사훈련을 벌
였다. 그간 탈레반이 ‘앙숙’인 파키스탄과 밀접하다는 이유로 공식
외교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인도는 과거와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
했다. 앞서 인도 정부는 지난 6월부터 은밀하게 탈레반과 접촉하는 중
이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은 “인도 외교 정책의 큰 변화”라고 평가
했다.

반면 그간 꾸준히 탈레반을 지원해왔던 파키스탄에선 탈레반의 득세를
반기고 있다. 지난 1994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주(州)에서 만들어진
탈레반은 대부분 파슈툰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슈툰족은 아프간
(1500만명)과 파키스탄(4300만명)에 걸쳐 산다. 다만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 정부 붕괴와 함께 갈 곳을 잃은 난민이 자국 내로 밀려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달 말 미국
PBS 뉴스아워와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은 이미 300만명의 아프간 난민
을 받아들였는데 내전이 길어질 경우 더 많은 난민이 밀려들 수 있
다”고 말했다.

미국 입장 따라왔던 유럽도 '나비 효과'
영국 하원 외무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톰 투겐트하트 하원은 아프간 철
군은 수에즈 위기 이후 최악의 외교 정책 실패라고 비판했다고 BBC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군의 철수와 탈레반의 복귀는 유럽에도
나비 효과가 나타날 조짐이다. 영국 BBC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아프간
사태 논의를 위해 휴가 중인 의원들을 부른 데 따라 16일 의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APA 통신은 “알렉산더 샬렌버그 오스
트리아 외무장관은 중앙아시아의 불안정은 이른 시일 내로 오스트리아
와 유럽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며 “빠르면 이달 말 이
지역의 혼란을 막기 위한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유럽의
걱정은 아프간 난민에 있다. 탈레반 공포로 아프간 난민들이 유럽까지
몰려올 경우 중동 난민의 유럽행 복사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
다.

4. 옛소련도 실패한 '침략군의 무덤'..아프간 전쟁의 역사
권순철 기자, 한경, 2001.09.16.
미국이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험한 지형과 주민들의 보복 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나라였으며 그래서 침략군의 무덤으로 불려왔다고 더 타임스가 1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금까지 무굴제국 몽골제국 영국 러시아 등이
이 나라의 전사 부족들을 정복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했
다. 다만 알렉산더대왕이 한때 이 나라를 정복하는데 성공했으나 2천
년 이상 전의일이라고 신문은 말했다. 높은 산들과 넘기 어려운 산맥
과 나쁜 날씨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아시아의중심에 완충지대가 됐고
이 때문에 외부 제국주의 열강들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정복을 시도했던 나라들은 곧 그 전략의 어리석음을 알게 됐다
고 신문은 전했다. 심지어 이슬람이 아프간의 산악지대에 진입했을 때
도 부족들은 외부 지배에 굴하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아프간쟁탈전은
1842년 1월 영국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에 나섰다. 당시 4천5백명
의 영국군과 1만2천명의 부양가족 중 단 1명만이 비틀거리는 조랑말을
타고 잘랄라바드에 있는 인도.영국군 혼성부대 기지에 도착했다. 빅토
리아여왕 시대에 영국 육군이 당한 최악의 패배였다. 또 러시아가 북
쪽에서부터 처들어왔다. 러시아는 1865년에 부카라, 타시켄트, 사마르
칸트를 점령하고 1873년에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세웠다. 그로부터 5
년후 영국이 1842년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2번째 전쟁을 일으켰으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1880년 철수하고 아프간의 외교권만을 주장했
다. 1885년에는 러시아가 다시 침략해 남쪽을 휩쓸었으며 메르브와 헤
라트, 옥수스강 북쪽의 오아시스를 점령했다. 이어 영국과 러시아간의
쟁탈전은 계속됐으며 1907년 양국이 세인트피터스버그조약을 체결함으
로써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났고 그 후 70년간 어느
나라도 다시 침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외세의 침입이
없어지자 내부에서 끊임없는 반란과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다가 지난
79년 집권한 바브라크 카말 정부가 소련을 불러들임으로써 또 한 차례
피비린내 나는 정복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1979년 발을 들여놓은 소련
은 지난 88년 제네바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할때까지 5만명의 병력을 잃
고 돌아갔다.

영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의 높은 산악지대가 그들의무
덤이 된 것이다. 한편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놀란 서방진
영은 직접 개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고 미 중앙정보국(CIA)이 즉
각 나서서 바주카포, 로켓포, 견착식 스팅어 미사일, 대포, 탄약 등
모두 21억7천만파운드(4조3천4백억원) 상당에이르는 무기를 제공했다.
이 무기들은 파키스탄에서부터 노새에 실려 산맥을 가로질러 아프간
군벌에 전달됐고 소련군이 패퇴한 이후에도 이들은 이 무기들을 그대
로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경우 자신들
이 30여년전에 제공했던 무기들로 무장한 아프가니스탄군과 맞서게 되
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