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제5회 역사 NGO세계대회 세미나 개최
Subtitle
  한류와 동아시아문화의 융합
Date
  2013.07.24
Register Date
  2013-07-26
Count
  327

   
 
 
 
 
 
 
 
 
 
 
 
 
 
 
 
 
 
 
 
 
 
2013 역사NGO 세계대회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포럼
2013 History NGO World Conference
Forum by the Institute for East Asia Peace Studies

한류와 동아시아문화의 융합
Harmony between Hallyu and East Asian Cultures

◈ 일시 : 2013. 7. 24 (수) 09:00-16:00
Date: at 09:00~16:00 hours, on 24 July, 2013
◈ 장소 : 경희대학교 청운관(대학정문 바로 좌측) 307호
Venue: Rm 309 Chung-un-gwan, Kyung-Hee University
◈ 주최 : 사단법인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Organized by the Institute for East Asia Peace Studies
◈ 후원 : 동북아역사재단
Sponsored by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세미나 세부계획

7월 24일(수) 오전 세부일정(Morning Session)
<한류와 동아시아문화의 융합: Hallru and East Asian Cultures>
◈ 제 1부 등록 및 상호 인사(Registration)
▶ 08:45-09:00 등록 및 인사 (Registration)
◈제 2 부 학술회의(Forum)
 사회: 한은경 성균관대학교 교수
Panel Coodinator: Professor Eun-Kyung, Han (Sungkyunkwan University)
▶ 09:00-09:05 환영사: 연구소 이사장
Welcome address by Dr. & Chief Director Cheoung Byung-Ho
of the IEAPS
▶ 09:10-09:40 중국 유학생 린리밍 발표
Presenter: Lin-Liming, Chinese student
▶ 09:40-10:10 한국 학생 임수연 발표
Presenter: Lim Su-Yun, Korean student
▶ 10:10-10:40 일본 유학생 우오즈미 야스코 발표
Presenter: Uozmi Yasko, Japanese student
▶ 10:40-11:00 휴식(coffee break)
▶ 11:00-11:10 일본 유학생 이구치 케이나 토론
Discussant: Iguchi Keina, Japanese student (To Lin Liming)
▶ 11:10-11:20 중국 유학생 사미미 토론
Discussant: Samimi, Chinese student (To Lim Su-Yun)
▶ 11:20-11:30 한국 학생 김미란 토론
Discussant: Kim Mi-Ran, Korean student (To Uozmi Yasko)
▶ 11:30-11:40 발표자, 토론자 질문에 대한 답변
Answers to the discussants by presenters
▶ 11:40-11:50 참석자 질의 및 응답
Questions & Answers by audience and presenters
▶ 11:50-11:55 사회자 결론
Closing remarks by Panel Coordinator
▶ 11:55 폐회 (Forum Ends)

* 이사장 환영사
Welcome Address
by Dr. Cheoung Byoung-Ho, Director of Board of IEAPS.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세미나를 주관하는 사단법인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 정병호입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참석하여 성원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Good morning distinguished guests, foreign students stationed in Korea, and members of our institute. I am Dr. Cheoung Byoung-Ho, Director of Board of the IEAPS. I am pleased and honored to welcome you to the today's symposium. Thanks for your concerns for our institute.

저희 연구소는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 경제협력, 문화교류,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통일문제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와 아시아 지역의 사회발전과 번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순수학술연구기관입니다.
Our institution was founded in an attempt to promote peace and prosperity of the Asian region. The purpose of the institute is to provide strategic insights and practical policy solutions on global and regional security and prosperity to decision makers.

오늘은 '한류와 동아시아의 문화의 융합' 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 중국,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지역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문화면에서 다양성도 있지만 상호 공통점도 많다고 봅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와 불교, 그리고 유교문화는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짐으로써 이들 세 나라는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Our institute has planned to organize a symposium regarding 'Hallyu and Culture of East Asian Countries' in this morning. As you are well known, Korea, China and Japan have shared similar cultural background from ancient times owing to the flow of Chinese Character, Confucianism and Buddhism from China to Korea, and then from Korea to Japan.

중국과 일본도 고유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지만 한류는 1990년대 이후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에 당 연구소는 한류와 동아시아 삼국 문화의 연관성을 알아보고 이러한 문화의 교류를 통하여 이들 삼국이 상호 협력적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자 이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중일 세 나라의 대학원생들이 발표와 토론에 참가합니다.
Though China and Japan have their own cultural heritage, Hallyu fever has widely spread out China(Taiwan) and Japan since the 1990s, and now it has become popular cultural contents among youths around the world. Our institute has planned to organize a symposium regarding Hallyu in order to understand the nexus of Hallyu and culture of East Asian countries, and to improve friendship among peoples of Korea, China, and Japan. In this symposium, graduate students from the three countries would present papers and participate in the discussion.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은 과거의 불편한 역사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시기와 반목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한중일 삼국은 문화의 교류를 통해 정치적 갈등 요소를 해소하고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상생발전을 도모하는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참신한 시각과 논의로 학술대회를 진행하고자 하오니 발표도 경청하시고 고견도 피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We have to admit that Korea, China and Japan are not fully free from antagonism due to the historical uneasiness of the past. However, it is the time for the three countries to try to understand each other and to enhance friendly economic as well as social ties through the exchange of each other's culture. I sincerely hope you would be encouraged to take part in the event and exchange valuable ideas on Hallyu and cultural binding of East Asian countries.

그러면 오늘 학술대회의 사회를 맡아 주실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한 교수님은 한국광고홍보학회 학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겸 문화체육관광부 언론중재위원으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발표자와 토론자의 소개는 차후 사회자가 해 주실 것입니다. 참고로 오늘의 학술대회를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의 후원이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참석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말씀을 드리고 아울러 모든 분들께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I would like to introduce some people who will join today's forum. Professor Han Eun-Kyung will preside over the symposium. She lectures media and broadcasting at Sungkyunkwan University in Seoul. In the early stage of the event, Professor Han will introduce today's presenters and discussants. I once again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concerns and participation in this meaningful symposium, and I wish you all the best. Thank you very much.


림려명 발표문

시대별로 본 중국의 한류

림려명
1. 서론

한류(韩流)란 최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는 한국의 대중문화 열풍을 가리키는 말이다. 1999년 11월 베이징청년보(靑年報)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김현미, 유상철, 박영환 등 여러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
한국의 대중문화와 연예인에 열광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또한 “갑작스러운 강추위(寒流)”라는 단어와 성조만 다를 뿐 비슷한 발음으로 한은경 외 3명 (2010), 『한류 포에버: 중국. 대만 편』,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10쪽.
“韩流”가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리 매김 하였다.
1992년 한중수교이후, 양국은 경제와 문화측면에서 서로 교류를 강화하였다. 1993년 한국드라마 <질투(嫉妒)>가 처음으로 중국에서 방영되었는데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였고 1997년 6월 CCTV에서 방영한 한국드라마 <사랑이 뭐길래(爱情是什么)>의 큰 성공으로 중국에서 한류의 시작을 알렸다. 최고 시청률이 15%대를 돌파했고 외화 가운데 시청률 2위를 기록하였으며, 그 인기는 재방영까지 몰고 갔다.
드라마 방영으로 조성된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가요에도 이어졌다. 1999년 말 클론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듬해 2000년 2월 H.O.T와 NRG 등 한국 가수들이 중국 청소년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면서 ‘한류’라는 용어가 급속히 전파되게 되었다 한은경 외 3명 (2010), 『한류 포에버: 중국. 대만 편』,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8쪽. 방정배, 한은경, 박현순 (2007), 『한류와 문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북스, 61쪽.
. 이러한 현상은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의 젊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음악, 드라마, 패션, 게임, 음식, 헤어스타일 등 대중문화와 한국 인기연예인을 동경하고 추종하며 배우려는 문화현상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한류는 하나의 외국문화로서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이를 반영 하듯 한국의 대중문화열풍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한미(韩迷)' 혹은 '하한주(哈韩族)'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이러한 한류문화는 시대별로 중국에서 발전해 왔다.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류를 <한류 1.0-3.0시대>등 3개시대로 구분하였다. <한류 1.0시대>는 1995년부터 2005년, 드라마 등 영상콘텐츠를 중심으로 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시기이다. <한류 2.0시대>는 2006년부터 2011년, K-Pop의 아이돌을 중심으로 하는 시기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주지역에 진출한 시기를 말한다. 마지막 <한류 3.0시대>는 2012년 이후, 기존의 음악이나 드라마에서 벗어나 문학, 미술까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분야가 확대되고, 유럽과 미주지역을 비롯한 세계 전 지역으로 진출한 시기로 나뉠 수 있다 최광식 (2013), 『한류로드』, (주)나남, 24쪽.
. 문화부는 <한류 3.0시대>의 3가지 중심축을 전통문화, 순수문화예술, 문화콘텐츠 등 3가지 영역으로 정의하였는데 이뿐만 아니라 한국어, 관광, 스포츠 등도 포함이 된다.
현재 중국은 <한류 1.0, 2.0 시대>를 거쳐 <한류 3.0시대>로 나아가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중국에서의 한류현상을 시대별로 알아보고 한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2. 시대별 중국에서의 한류

2.1 <한류 1.0시대>1995-2005, 한류 팬덤의 시작은 드라마

1993년 <질투>라는 한국드라마가 처음으로 CCTV에서 방영된 후 2002년에 드라마 <가을동화>,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목욕탕 집 남자들>, <명성왕후> 등 드라마가 잇달아 히트하였고 2005년 <대장금>의 방영을 계기로 그 열풍이 최고조에 달했다. 박영환 (2008), 『문화한류로 본 중국과 일본』, 동국대학교출판부, 49쪽.
<대장금>이 방영 당시에는 하루에 1.8억 중국시청자들이 <대장금>을 시청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 한국드라마의 하락세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중국정부의 외국 콘텐츠 규제정책과 관련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02년 ‘수입드라마 입안 강화에 대한 국가광전총국의 통지’ 한국콘텐츠진흥원 (2012), 「국가별 한류 콘텐츠 수출동향과 한국 상품 소비인식 분석: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사례 비교」, 코카포커스, 05호 (통권 53호), 4쪽.
, 2004년에는 ‘해외 TV프로그램 수입 및 방송 관리 규정’을 통해 중국의 각 방송사는 수입 외국 드라마를 해당 채널의 하루 드라마 방송시간의 2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19시부터 22시까지 황금시간대에는 어떤 외국 드라마도 방영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한류가 <대장금>의 방영으로 최고점에 달하자 2006년 8월에는 ‘드라마 수입. 합작. 방영에 대한 강력한 관리 통지’ 규정을 제정하여 외국 드라마 수입과 방영에서 동일 국가나 지역의 드라마가 중복되지 않도록 국적별로 심의통과 편수를 조절하기 시작하면서 외국 드라마에 대한 수입다변화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중국CCTV소부뢰(央视索福瑞)에 의한 시장조사에 의하면 2000년에서 2011년까지, CCTV8에서는 총 96편의 한국드라마를 방영하였고, 후난위성(湖南卫视)에서는 49편, 안휘위성, 강수위성, 절강위성 등에서 방영된 한국드라마의 편수도 적지 않았다. 중국에서 수입한 외국드라마에서 30%가 한국드라마이다. 비록 국가광전총국(国家广电总局) 국가광전총국(国家广电总局)의 정식 명칭은 중국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 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国家广播 电影电视总局), 중국 방송 지휘 감독부서이다.
에서 규정을 가하고 있지만 한국드라마의 시청률은 항상 다른 드라마보다 높게 나타났고 2011년 저녁 10시에 방영되는 드라마 중 상위 15개 드라마 중에는 한국드라마가 47%를 차지하였다 徐圣慧(2012), 「数字解析韩流热潮」, 市场观察 , Market Observer, 03期.
.
2012년 2월 9일 국가광전총국은 또 TV 방송국에 ‘외국 영화·드라마 관리 강화 방안’을 통지했다. 이에 따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는 외국 드라마 방영이 제한된다. 또 외국 드라마 방영 횟수가 50부 이내로 제한되고, 당일 드라마 총 방영시간 중 외국 드라마 방영시간은 25%를 넘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해당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대상은 한국 드라마이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았고 다양한 한국 드라마가 TV 방송국에서 방영돼왔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 드라마·영화 방영이 제한되면 한국 드라마 상영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12년 하반기 국가광전총국에서 허가한 국가별 드라마 편수를 보면 태국 25편, 한국 17편, 인도 8편으로 중국에서 한국드라마를 억제하는 대신 태국드라마를 더 많이 선호하는 추세이다. 비록 <대장금>이 방영되던 때처럼 큰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광전총국에서 규제를 가하는 와중에도 한국 콘텐츠의 중국 수출이 꾸준히 증가해온 것은 중국 내 한류 팬 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2012). 이종임 (2012), 『신한류와 문화이동의 지형화』, 논형, 108쪽 (재인용).
.

2.1.1 한류 수용의 원인

한류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원인 때문에 중국에서 흥행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날로 발전하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중국 본토 드라마 제작의 한계점이다. 1978년 등소평의 대외 개방정책 실시 이후 중국은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고 이에 따라 평균적으로 전체 소득이 증가하였으며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닌 중산층들이 크게 성장했다.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레저, 문화 활동에 대한 수요도 증대되었다. 이처럼 대중문화 소비층은 확대되었으나, 이에 걸 맞는 대중문화가 중국에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한은경 외 3명 (2010), 『한류 포에버: 중국. 대만 편』,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10쪽.
. 중국 드라마들은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 다양한 현실을 효율적으로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주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역사극, 비현실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무협 드라마, 경찰들에 관한 수사 극, 공산당의 활약상을 그린 전쟁 드라마 등이다. 가끔 현실 사회를 반영한 드라마가 있다고 해도 반부패나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통제 때문에 드라마 창작에 있어서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현실 사회를 반영하는 깊이에 있어서도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중앙텔레비전방송국은 시청자 확보를 위해 대대적으로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였다 박영환 (2008), 『문화한류로 본 중국과 일본』, 동국대학교출판부, 76-78쪽.
.
둘째, 한중간의 문화적 유사성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동일한 유교 문화권으로서 문화 상품의 국가 간 이동 시 문화적 할인율이 매우 낮고 생활양식과 가치관에 유사점이 많다. 문화적 유사성이 많을수록 문화 상품은 호소력 짙게 수용되기 마련이므로 중국 내 한국문화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 있는 것이다 한은경 외 3명 (2010), 『한류 포에버: 중국. 대만 편』,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10쪽.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 문화산업특별위원회(2008), 『한류포에버: 한류의 현주소와 경제적 효과 분석』,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175-179쪽.
.
셋째, 한국 문화의 서구적 세련미가 중국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경제적 발전에 따라 중국인들의 가치관이 변화되고 서구 지향적 소비 취향의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 자본주의 가치와 중국이 주도했던 과거 동아시아의 전통적 문화요소를 내면화한 한국드라마가 중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드라마는 서구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가운데 내용적으로는 유교적 가족 공동체의 조화, 강력한 도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류는 단순한 서구화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 문화와 서구의 드라마 구성 형식 및 문화내용이 성공적으로 조합하여 동아시아의 정서에 맞게 세련되게 가공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쉽게 받아 들여 질수 있었고 친밀감을 주었다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 문화산업특별위원회(2008), 『한류포에버: 한류의 현주소와 경제적 효과 분석』,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43쪽. 한은경 외 3명 (2010), 『한류 포에버: 중국. 대만 편』,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11쪽.
.
넷째, 한류가 흐르기 이전에 중국에는 ‘일류(日流)’가 불었는데 점차 일본 드라마의 높은 가격을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만족도가 떨어지자 대안이 필요하였다. 거기다 방송매체는 늘어나 공급해야 할 콘텐츠의 절대량이 증가하였고, 미국 대중문화는 문화적 거리감과 충격이 크므로 공감대를 찾기 쉬운 대중문화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본드라마보다 낮은 가격에 지속적인 고급 콘텐츠 공급이 가능한데다 문화적 근접성마저 가져 문화적 충격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 드라마가 입성을 한 것이다.
다섯째, 한국드라마의 자체 특성 때문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준수한 외모에 배경화면이 아름다우며 드라마 속 극적인 요소들이 중국 시청자들에게 새로움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동양적인 문화에 서양적인 문화가 적절히 혼재되어 중국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젊은 층들이 추구하는 심미적 요구도 충족시켜주었다 姜妍(2011). 借鉴 “韩流”在中国的盛行—探析中国文化产业的发展之路. 广角镜·Wide-a ngle lens. 第9 期(下) 总第381 期. 18- 024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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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류 2.0시대>2006-2011, 드라마에서 K-POP으로

이전의 한류 열풍은 <대장금> 등 드라마가 주도하였다면 다음은 K-pop을 중심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중국에서 K-pop 1세대는 클론, HOT, NRG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사장은 중국 K-Pop시장의 개척을 위하여 2002~2003년 사이에 중국에서 70억 원을 들여서 무료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였다. 김수이 (2006), 한류와 21세기 문화비전, 도서출판 청동거울, 244쪽.(재인용)
그 덕분에 한국 가요는 젊은 세대에게 널리 알려지고 이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 장르에 열광하게 된다.
2003년 중국에서 ‘신우치(新舞器)’라는 보이그룹이 데뷔를 하였는데 그들은 중국 현지 10대들을 캐스팅해서 한국으로 데려와 춤, 노래, 스타일을 가르친 후 다시 중국에 데뷔시킨 최초의 토착인 수출 ‘아이돌 스타’이다. 그들의 타이틀곡인 ‘이 느낌이야’는 방송에 소개되자마자 중국 인기가요 차트 6위에 올랐고 많은 현지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신우치’의 예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지금 한류는 콘텐츠를 단순히 아시아 대중문화시장에 파는 수준을 넘어서 아시아 각국의 문화적 조건에 맞게 ‘토착화’하고 ‘현지화’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한류의 ‘현지화’전략은 현지인을 한류 식 스타로 재가공하는 것과 한국의 스타들을 제작단계부터 현지화 하는 것, 그리고 특정한 문화콘텐츠의 제작자본과 유통을 다국적화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 댄스 그룹들을 중국에 진출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소요되고 언어적 문화적 공감대의 부족으로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10대들을 키워 댄스그룹을 만들면 경제적으로 절감효과를 가져오고, 정서적 유대감을 높을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김수이 (2006), 한류와 21세기 문화비전, 도서출판 청동거울, 252쪽.

이러한 예로 한국 아이돌 가수 슈퍼주니어 슈퍼주니어(Super Junior)는 대한민국의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13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으로, 2005년 11월 6일에 데뷔하였다.
를 들 수 있는데 전 슈퍼주니어 멤버 한경은 중국에서 오디션을 보고 합류를 한 중국멤버이다. 전에 중국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부터 한경은 한국 아이돌 그룹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이미 유명세를 치렀다. 2008년 한경을 리더로 한 슈퍼주니어-M (Super Junior-M)이라는 중국 진출을 위한 슈퍼주니어 유닛이 결성되었고 그들이 당해에 2008 CCTV-MTV 음악성전 최고 인기 그룹 상을 받은 데는 한경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현재 한경은 슈퍼주니어에서 탈퇴하여 혼자 중국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데뷔한 가수인데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가요가 중화권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서는 그룹을 만들 때 세계화와 중국시장을 고려해 중국 멤버들을 일부러 합류시킨다. 에프엑스(f(x))의 빅토리아와 엠버, 그리고 미쓰에이(Miss A)의 지아, 페이는 중국인 멤버들이고, 원더걸스(Wonder Girls)에도 새로운 멤버 교체에서 홍콩 출신 교포인 혜림을 새 멤버로 발탁하였다. 실제로 중국 멤버들이 합류되어 있는 그룹은 중국에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로운 신인그룹을 선보였는데 12명인 보이그룹 EOX는 EOX-K (한국인 6명)와 EOX-M (중국인 4명, 한국인 2명)으로 나뉘어져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한다. EOX-K와 EOX-M은 같은 날, 같은 시각 동일한 곡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각각 발표하고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활동하는 획기적인 전략으로 데뷔하였다.
<표 1> 한류 음악산업 중국 수출액 (단위: 천 달러)
2007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CAGR
(2009~2011)
1,665
1,844
2,369
3,627
6,836
69.9%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13.04.01), <콘텐츠 해외진출 유형에 따른 정책방향>.

K-pop의 인기와 더불어 음악 콘텐츠 수출 금액은 2007년 167만 달러에서 2011년 약 683만 달러로 증가하였으며, 이는 전년 대비 88.5%, 최근 3년간 약 70% 성장한 수치이다. 전 세계를 뒤흔든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중국에서도 최대 포털 음악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2012. 10. 11). 또한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슈퍼주니어, 2PM 등의 팬클럽 활성화 등 아이돌 중심의 K-Pop 인기는 지속중이다 한국콘텐츠진층원 (2013), 「콘텐츠 해외진출 유형에 따른 정책방향」, 코카포커스, 02호 (통권 68호),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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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한류 스타들의 'K팝(K-pop)' 현장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한중 우호 콘서트가 열린 베이징 국가올림픽체육중심체육관을 찾아 소녀시대와 2PM, 슈퍼주니어 등 한국의 K팝 스타들을 만나 격려한 뒤 40여 분 공연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은 한중 우정 콘서트가 양국 문화가 더 가까워지고 두 나라 국민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며 특히 싸이와 K-Pop을 전 세계로 알린 YG 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문화산업 측면에 더 많은 지원을 해줄 것으로 약속하였다. 앞으로의 중국에 대한 한류영향은 하나의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기대 된다 MBN뉴스 (2013.06.28), [한·중 정상회담]박근혜 "니 하오"…중국어 능통 '한류 전도사',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139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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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한류 3.0시대>2012년 이후, 음식. 의류. 화장품. 관광. 의학

중국의 한류는 드라마와 가요의 영향을 중심으로 이젠 생활 곳곳에서 중국 사람들의 가치변화를 일으켰다. 위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 한류의 붐이 드라마를 통해 형성되었다면 현재의 한류는 K-Pop이 그 붐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중국 사람들한테는 한류가 의류, 의학, 관광, 음식 등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어디가나 ‘한판’과 관련된 서비스를 볼 수 있다. 한류 3.0의 핵심어는 K-Culture이지만, 한류 3.0은 K-Culture를 넘어선다. 한식과 한국패션이 한류와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기술력이 앞선 제품이더라도 한국산을 숨기던 시대에서 이제는 드러내는 시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제고되고, 이것은 다시 상품, 문화산업의 발전으로, 한류의 지속으로 선순환 된다 최광식 (2013), 『한류로드』, (주)나남,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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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에 가장 관심이 많은 층인 20~30대 중국 여성들도 경제력 상승과 함께 한류 전파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 TV에서 보던 한국 화장품과 패션 등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한국의 스타일을 향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한류열풍을 타고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 수는 지난 2012년 283만 명에 달했다. 올해 5월말 현재는 전년 동기 대비 약 40%가 증가한 134만 명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 증가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관광고사 (2013), 방한 중국관광객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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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의료관광이다. 특히 한류열풍과 한국의 성형기술 발전에 따라 수술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도 급증하는 추세다. 주중 한국대사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의 한국 의료관광이 전년대비 76%나 증가했다. 의료관광 분야는 글로벌화에 따라 국제의료서비스 시장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의료관광은 혼자만 오지 않고 항상 보호자나 다른 수행원을 데리고 오는데다가, 장기간 체류하며, 대개 부유층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료 이외의 관광, 숙박 등 부가가치가 아주 높은 관광산업이다. 요즘은 호텔에 아예 진료센터를 차린 경우도 있다. 환자와 보호자가 같이 생활하며 편안한 여건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의료관광산업은 앞으로는 상당히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평가받고 있다 최광식 (2013), 『한류로드』, (주)나남, 60-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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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반 한류

중국에서의 한류가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드려졌던 것은 아니다. 최근에 한국 대중문화의 급속한 확산에 대해 중국, 일본, 대만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경계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나아가 한류에 대한 배타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한류에 대한 역작용을 대강 ‘역한류’, ‘혐한류’, ‘항한류’ 이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역한류’는 한류 수용국의 문화가 거꾸로 한국으로 역류해오는 현상으로 특정 여론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문화이동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혐한류’는 한류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논리보다는 감정적으로 한류를 훼손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항한류’는 한류에 의해 잠식당한 자국의 문화영역을 보존하기 위해 한류에 대항하자는 움직임으로 타당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반한류’라는 말도 쓰이고 있는데 ‘혐한류’와 ‘항한류’의 의미를 합친 개념으로 한류를 반대하는데 감정적으로 혐오하기만 하는 경우와 논리적으로 대항하는 경우를 합쳐 이르는 말이다. 현재 중국의 실정에서 볼 때 중국은 '항한류'보다 '반한류'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이어령 교수 특별기고(2005), 한류(韩流)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上),신동아 6월호.

중국에서의 ‘반한류’의 원인으로는 첫째, ‘양국 간 정치, 사회적 측면’, 둘째, ‘자국 문화산업 보호 측면’, 셋째, ‘드라마 속 역사관 문제’, 넷째, ‘쌍방향 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한류의 전파’ 등 측면에서 교려해 볼 수 있다.
첫째,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사실 ‘반한류’ 이전에 중국과 한국 두 나라의 네티즌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양국 역사에 대하여 서로 공방을 펼쳐 온지는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양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만큼 공식화된 논쟁은 아니어서 문제화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2005년 중국에서 <대장금>의 히트로 한류가 최고조에 이른 당시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록한 사건이 중국 사람들이 ‘반한류’ 감정을 갖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정덕구 (2011),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중앙북스(주), 25쪽.
.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중 일어난 중국인 유학생 폭력 사태에 한국 정부가 법대로 해결하겠다고 발표한 후 ‘반한류’에 대한 사태는 더욱 격화되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 물건을 사지 말고 한국인과 만나지도 말자!”, “중국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도 모두 몰아내야 한다.”며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며 ‘반한류’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 문화산업특별위원회(2008), 『한류포에버: 한류의 현주소와 경제적 효과 분석』,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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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중국에서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 문화산업으로 인한 중국 자국문화산업의 침체위기에 대한 우려이다.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 문화산업특별위원회(2008), 『한류포에버: 한류의 현주소와 경제적 효과 분석』,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68쪽.
과거 중국은 역사적으로 세계의 중심국가라는 중화사상에 근거하여 국가적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였다. 실제 중국의 유교사상이 한, 중, 일은 물론 동아시아 대다수 국가를 유교문화권으로 묶을 정도로 문명사적 위치도 높았기 때문에,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에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받아들이자는 중체서용의 견지에서 수용해 왔다. 이러한 입장은 한류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실제로 2002년 중국에서 수입해 방영한 한국드라마는 모두 67편으로 재방송까지 포함한 한국드라마 방영 횟수는 총 316차례이다. 이는 1년 중 한국 드라마가 10개월 이상 매일 방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4년에는 중국에서 방영한 수입 드라마는 모두 649편이었으며 그 중에서 한국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16.5%로 무려 107편에 달했다 박영환 (2008), 『문화한류로 본 중국과 일본』, 동국대학교출판부, 53쪽.
. 이에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중국 젊은이들에 대한 우려가 기자의 기사 및 오피니언리더의 기고 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정부는 자국 문화산업 보호 및 외래문화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한류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셋째, 드라마 속 역사관 문제이다. 2008년 <중국청년보>가 중국 대중이 가장 싫어하는 드라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타났다. 한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었던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대중들이 싫어하는 드라마에 선정된 것이다. 또한 2011년 9월 중국 언론 매체인 <환구망>에서 자국의 넷 이용자 6800명을 상대로 ‘중국인이 한국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49.9%가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답하였고, 그 요인으로는 49.9%가 ‘한국식 역사관’을 24.4%가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21.3%는 ‘한미 동맹’을 선택했다 유세경, 이석, 정지인(2012), 「중국 일간지의 “한류”보도에 나타난 프레임 분석: 2001년~2010년 기간에 보도된 기사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57호.
. <대장금>에서는 중국인들이 발명한 침구술을 한국인들이 발명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우리의 아이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적으로 침구술이 한국인이 발명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역사에 대한 오류를 오도할 수 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중국 동북공정을 겨누어 제작한 <주몽>,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대조영> 등 한국의 드라마가 중국의 불만을 자아냈다. 박영환 (2008), 『문화한류로 본 중국과 일본』, 동국대학교출판부, 214쪽.

넷째, 중국에선 한류가 중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한국에선 기껏해야 ‘중국어학습’ 바람만 일고 있지 ‘한풍(汉风)’은 한국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수요의 측면서도 다른 점이 있는데 중국 사람들은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이 여유로워지면서 문화소비의 수요로 한국문화를 소비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취업 등 생계를 위해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양국의 문화는 서로 상호 교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일방적으로 한국문화만 들어오는 상황이다「韩流PK汉风」(2010), 国学, 01期.

. 이러한 문화의 유입은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해서 중국화폐가 일방적으로 한국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한다. 중국 내 한국 드라마의 수입가격 변동 현황은 다음과 같다. 2000년도 중국 내 한국 드라마의 수입가격은 회당 1,000~2,000달러 수준이었으나 2005년 초 한국 드라마 평균 수입가격은 회당 3,000달러 정도로 올랐다. 그리고 2005년 말 한국 드라마의 수입가격은 회당 8,000~20,000달러 수준으로 <대장금> 수입 전과 비교해 평균 8배가 상승하였다. 중국의 한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2005년 말 CCTV는 16부작인 <풀하우스> 방송권을 70부작인 <대장금>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수입했다고 한다 한은경 외 3명 (2010), 『한류 포에버: 중국. 대만 편』,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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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류는 최고조의 시기처럼 중국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드라마를 즐겨보며, 한류를 이어가고 있다. 즉 한류에 대한 호감과 반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계속해서 중국인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한국 상품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더 정확하게는 <한류 3.0시대>의 양상을 많이 보인다.

4. 결론

본 연구에서는 시대별 중국에서의 한류현상을 살펴보았다. 앞에서 논의해왔듯이, 중국의 한류는 <한류 1.0, 2.0시대>를 지나 <한류 3.0시대>로 진입하는 단계이다. 그만큼 드라마 등 영상콘텐츠와 K-Pop의 수용이 꾸준히 증가하고는 있지만 현지에서 느껴지는 한류의 열기는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정리해보았다.
첫째, 일방적인 문화 흐름은 중국의 반감을 불식시키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정서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양국의 문화 쌍방향 교류가 필요하다.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 문화산업특별위원회(2008), 『한류포에버: 한류의 현주소와 경제적 효과 분석』,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70쪽. 박영환 (2008), 『문화한류로 본 중국과 일본』,동국대학교출판 부, 216쪽. 李雪威 (2011), 「韩流汉风:中韩文化交流之因由与深化」, 求索,1001-490X (2011) 6-073- 03.
중국의 한국 문화콘텐츠 수입에 대한 규제도 이러한 점에서 제기된 것이다. 한국 문화콘텐츠의 정당한 수출을 바라는 점에서 그 대가로 중국의 영상물도 어느 정도 수입을 함으로써 중국 시청자들에게 한류가 중국문화의 침략자라는 인식보다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대외적으로 지속적인 공동제작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현재는 큰 수익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K-Pop을 세계로 알린 1등 공신이 유튜브 등 뉴미디어이기 때문에, 뉴미디어(온라인)사업으로의 확장을 통하여 장기적인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셋째, 한류 확산의 관건은 프로그램의 경쟁력이다. 좋은 콘텐츠는 아무리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세계 시장을 뚫는 킬러 콘텐츠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2011년도 방송콘텐츠 수출의 성과가 미미했던 부분은 <겨울연가>, <대장금>, <꽃보다 남자> 등과 같은 대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방송 한류의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좋은 방송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고 양질의 프로그램 확보가 우선이다 한국콘텐츠진층원 (2013), 「콘텐츠 해외진출 유형에 따른 정책방향」, 코카포커스, 02호 (통권 68호).
. 본 연구를 통하여 중국에서의 한류발전 관정을 살펴보았는데, 앞으로 한류가 중국에서 더욱 지속가능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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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 방향성과 한국의 역할
- 한류를 중심으로 -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사 임수연


1. 서론


문화는 사회, 경제, 정치 발전의 밑거름을 바탕으로 문화라는 꽃을 피우게 된다. 따라서 문화는 한 공동체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사회 이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기술, 사회를 발전시키는 정책 등등의 모든 것들을 내포하게 된다. 따라서 문화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특히 1990년 이후부터 ‘한류’라는 문화의 꽃을 피워 문화, 사회,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와 더불어 지속 가능한 문화 발전을 위해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이 서서히 거론되고 있다.
‘한류(韓流)’는 2000년 중국 <人民日報>에서 한국가수들의 대형 콘서트 개최 보도를 시작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동북아의 중국과 일본 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 유행하는 문화흐름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해석은 ‘한류’의 미시적인 의미로써, 한국의 음악, 드라마. 패션, 영화 등의 문화들이 다른 나라에서 유행하며 소비되는 현상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한국의 음악, 드라마, 패션, 영화 등에서 포함된 한국의 제품이나 사회 이념, 정책, 사고방식 등도 서서히 다른 나라에 한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되면서 한국의 제품을 사용하거나 한국에 대한 이해와 한국의 이미지 상승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거시적인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거시적인 의미의 ‘한류’가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과 크게 연관성을 지닌다. 미시적 의미로써의 한류를 동북아 문화공동체와 결합시키면 문화제국주의적인 측면으로 발달할 수 있겠으나 거시적인 의미로써의 한류를 동북아 문화공동체와 결합시키면 다른 나라들과의 문화적 차원에서 교류와 이해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의 정의와 관련해서는 다음 2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동북아 문화공동체가 한국에서 대두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문화정책에 큰 방향성을 잡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정부 정책은 한국이 문화강국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미 그 이전에 ‘한류’라는 문화 흐름을 통해 파생된 문화산업의 경제성이 입증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문화강국을 추구하는 것은 한국에는 자원이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문화산업의 문화상품은 문화를 바탕으로 그 사회의 구성원이 만든 걸작품으로 큰 부가가치를 갖게 된다. 당시 낮은 임금으로 수출경쟁력을 갖을 수 없는 상태에서 우수한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경제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산업의 발전과 문화상품의 수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상품 수출의 큰 조류가 바로 ‘한류’인 것이다.
하지만 동북아 문화공동체에 대한 각국의 생각은 제각기 다르다. 한국에서 초기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되고 있었을 때,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 필요성에 대해서 크게 인지하지 못 했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을 경제효과 혹은 경제파급력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 단기적인 기회비용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하였을 경우 어떤 나라가 패권을 주도하는지의 문제점이 있다. 이것은 동북아 한․중․일이 민족주의 바탕을 두고 문화제국주의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역사분쟁과 영토분쟁들이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중․일이 서로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필동, 「동북아문화교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 『인문과학연구』 제17집, 동덕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한국의 학계에서는 이미 위의 상황들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되고 있는 중이다. 공통적으로는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며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입증이 되었다. 특히 그 가능성은 미디어의 발달과 ‘한류’라는 콘텐츠의 동북아에서 잘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크게 세 가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논의는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논의이다. 김필동(2011)은 동북아 문화공동체에 앞서 문화교류의 방향성이 문화제국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하고 있다. 이남희(2005)와 임현진(2010)도 이와 마찬가지로 문화의 보편성과 각 나라의 개성을 존중하여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문화산업적인 측면에서 한류를 중심으로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의 구체적인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우평균(2008), 최혜실(2006, 2008), 문승현(2006)은 구체적으로 한류라고 하는 문화산업을 한국문화의 콘텐츠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둘의 문화적 다리역할, 중국에게는 서양과 동양의 이념이 어우르는 문화적 다리역할을 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한국정부의 역할을 규명하는 논의가 있다. 전영평 ․ 박경하(2003)에서는 참여정부시절의 한국의 동북아 문화공동체 구상과 전략에 대하여 논의되었고 정숙경(2011)에는 한류 이후의 한국의 국가적인 차원의 역할을 논의하였다.
위의 세 가지 논의를 살펴보면 우선 한류를 기점으로 크게 동북아 문화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한류 이전에는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통해서 한국의 문화산업 수출이 목적이었다면, 한류 열풍이 일어난 이후의 동북아 문화공동체는 한국의 문화산업 수출에서 벗어나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로써 각 국의 영토분쟁이나 역사왜곡문제 등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대립을 완화시키려는 안보 혹은 평화의 해결방안으로 동북아 문화공동체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서 한국 사회 내에서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 주요 행위자는 바로 한국정부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중심의 문화공동체는 문화정책과 함께하여 더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문화산업정책과 결합이 된다는 단점도 있다. 문화산업정책이 결합된다면 결과적으로 각국이 문화산업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제로섬으로 인하여 쉽게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 가능성과 당위성이 연구에서 그쳤을 가능성이 있다.
본고에서는 위의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우선 문화, 한류,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정의를 정리하여 깊이 있는 논의를 이끌어 가려고 한다. 이로써 ‘한류’라고 하는 새로운 동북아의 문화현상과 민간차원에서의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 방향성과 한국의 역할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실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에 빠지지 않고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며 문화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더욱 더 풍부한 동북아 문화의 형성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성을 논의하고, 민간차원에서 ‘한류’의 문화현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2. 문화 한류와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정의


1) 문화

문화의 개념은 아직도 다양한 논의가 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문화의 특성은 자연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바로 ‘인간’이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문화는 모든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거시적으로 인간의 문화는 자연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인간들이 생각한 방편이나 발명한 도구 등과 같은 것으로 인간들의 ‘환경 적응 체계’를 말한다. 이 때 인간들의 문화 모델의 세계는 ‘피시스(physis)라고 부른다. 유리 로트만은 이를 가르켜 ‘제 1차 모델링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 즉, 정치, 경제, 제도, 법 등과 같은 일차적 문화 모델 체계를 바탕으로 상위 버전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 상위 버전의 이차 모델링 세계는 ‘세미오시스(Semiosis)의 세계라고 부르며, 로트만은 이를 ‘제2차 모델링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이 때, ‘세미오시스’에서 상부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데, 가치관, 세계관, 사고방식과 같은 세계관의 표현수단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때 세계를 노모스(Nomos)라고 부른다. 문승현, 「동북아 글로벌리즘과 `韓流` 현상의 이해」『次世代 人文社會硏究』 Vol.2 ,동서대학교, 2006년, 313-314
또 다른 유명한 문화학자인 레이먼드 윌리암스도 위의 경우와 비슷하게 문화를 3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의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이다. 이러한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는 주로 문화인류학에서 연구 대상이 된다. 사람들의 의․식․주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그리고 자연에서 적응하여 살기 위해서, 인간의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관습적으로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를 말한다. 두 번째는 인간들의 지적, 정신적, 예술적 산물의 문화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의 창의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화의 산물이 바로 지식이며 종교, 예술작품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징체계로서의 문화 상징체계로써의 문화는 크게 형식지와 암묵지로 나뉜다. 형식지를 예로 들면 한국의 우수한 IT 기술이 있고, 암묵지를 예로 들면 2002 월드컵 때 시청 앞 ‘붉은 악마’ 응원 속에서 외국인이 함께 한국을 응원하며 겪는 경험이 있다. 이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개인적, 실제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가 있다. 유리로트만의 ‘노모스’와 같은 개념이다. 이렇게 문화는 크게 3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위와 같이 문화의 거시적 정의는 성립된 지 100년도 채 안되었다. 기존의 문화에 대한 개념은 미시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지적, 정신적, 예술적 산물의 문화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이 개념은 문화산업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예술적 산물이 사람들 사이에서 구매의 수단이 됨으로써 문화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한류의 열풍도 이러한 문화․예술적 산물로써 문화사업의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만든다면, 세 문화가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문화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전파와 동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즉, 문화들은 다른 문화에 전파가 되어 하나가 되어 동화되기도 한다. 그러면 새로운 또 다른 문화가 만들어 지고, 이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소멸되기도 한다. 따라서 시대적 배경에 따라서 그리고 문화는 그 속성이 시대적 가치와 상황에 따라 형태와 결과를 달리한다는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에서 인식해야 할 사항은 문화 전이 3 단계이다. 이것은 문화의 교류 이후 어떠한 단계로 문화가 융합될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인지단계로서, 이 단계에서는 타국의 대중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타국의 대중문화와 구성요소를 인지하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선호의 단계이다. 2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지한 타국의 대중문화와 구성요소를 선호하거나 혹은 배격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타국의 대중문화를 단순히 선호하는 것을 넘어서 열광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대중문화뿐 만 아니라 타국의 다른 분야에까지 점진적으로 몰입한다. 그리고 타국에 대한 친숙한 입장과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단계에 접어들면 문화의 이동현상은 양국관계의 교류와 확대 등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우평균, 「동북아공동체와 문화산업의 확산 : 한류현상과 동북아 각국의 정책」, 『평화학연구』, 한국평화연구학회, 2008년 4월, p.139.
이렇듯 문화에서는 「교류」가 중요하다. 하지만 교류는 다른 문화 이해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자국의 문호 개방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문화요소들이 교류에 의해 이동되거나 교환되기도 하며 또 변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2) 한류

한류의 ‘~류’라는 어원이 이미 존재하였다. 1980년 대중문화의 소비가 활발한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홍콩류’, ‘항류(港流)’가 있었고, 1990년에는 일본 스스로 ‘일류(日流)’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대만의 문화가 유행했을 때에도 ‘대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한류’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면, ‘~류’라는 용어는 대략 10년 주기로 동아시아의 문화 유행을 선도하는 국가의 앞 글자와 ‘류(流)’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2000년의 ‘한류’로 2010년대의 한류를 ‘신한류’라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장규수, 「한류의 어원과 사용에 관한 연구」, 『한국콘텐츠학회』제11권 제9호, 한국콘텐츠학회, 2011.
조미혜, 정우철, ⌜한류의 관광자원화 방안에 관한 연구 : 영상촬영지(춘천시)를 방문한 일본관광객을 중심으로⌟, 『강원발전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2004.

한국에서는 한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정부적 차원에서 ‘한류 1.0~ 한류 4.0’을 분류하여 구분하고 있다. 한류 1.0은 한국의 드라마 유행이고, 한류 2.0은 한국의 K-Pop이고, 한류 3.0은 한국의 전통문화, 나아가서 한류 4.0은 한국의 생활방식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것을 앞어 논의한 문화의 개념과 연관을 시키면 다음과 같다. 한류4.0 생활방식과 한류3.0의 전통문화는 문화에서 가장 기초단계인 생활양식, 관습과 관련된 문화이다. 그리고 한류2.0과 한류3.0은 문화에서 지적, 정신적, 예술적 인간의 활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문화산업과 연관이 되면서 IMF과 글로벌 금융 국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화의 3단계 측면에서 유행된 부분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문화 제국주의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3) 문화공동체

문화공동체는 문화적, 정신적 지역협력을 지향하는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유의점은 정치적, 경제적 관심사를 중심 주제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적, 정신적 지역협력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문화공동체는 역사적인 공유가 필요하다. 이 역사는 문화적, 정신적 공통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문화적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포용력을 갖출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을 모색하며 좀 더 밀접한 문화적 상호 이해와 문화가치 창출을 도모하는 공식적, 비공식적 문화연대 체제를 말한다. 이남희(Lee Nam-Hee), 「동북아문화공동체의 정체성과 그 구축 방안 - 문화유산의 활용과 가치공유를 중심으로」, 『동양사회사상』 제11집, 동양사회사상학회, 2005, pp.93~94

위의 문화공동체의 정의를 동북아시아에 대입하면 우선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사적으로 통일된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유럽연합과의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혜실(Choi, Hye Sill), 「동북아 시대 구현을 위한 사회문화적 협력 : 미디어와 문화콘텐츠의 활용을 중심으로」, 『구보학보』Vol.1, 구보학회, 2006, p.223
이 세 개의 나라는 각기 시대별로 전쟁을 치러왔지만 결과적으로 하나의 나라 혹은 하나의 왕조가 통일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 3국은 역사적으로 항상 엮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을 예로 들자면 국사 정규 수업에서는 자세히 배우지 않지만 ‘위만 조선’이 있다. 그들은 중국에서 왔으나 머리에 상투를 메었다고 하여 조선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각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건국한 세력을 보면 토착민들과 유이민들이 함께 세력을 결합하여 건국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전쟁과 조공 무역을 통해 각국에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양한 연관성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를 예로 들면 세자 책봉에 있어서 중국에서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당시에 사신을 파견한다는 것은 중국에서 새로운 문물을 들여오거나 우리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중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조선을 통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그들의 문물이 조공무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 다음 동북아시아 삼국의 가치관을 살펴보았을 때도 크게 중국은 공사주의, 한국과 일본은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경제적인 사회적인 부분의 요소이다. 즉, 정치적, 경제적 관심사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문화공동체와는 연관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이러한 기본 사상은 단지 정치적인 사건들, 경제적인 관심 사건들보다 더 넓고 깊은 문화를 내포하고 있다. 문화 예술에 나타나는 소재들과 내용들 자체로써 이미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적인 사상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3. 한․중․일의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 관점과 콘텐츠


1) 문화 공동체의 정체성 구축과 방안

위의 정의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북아시아의 문화공동체의 관점에서 정치적, 경제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문화적으로 유교, 한자 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난관이 있다. 따라서 우선 동북아문화공동체가 정체성 정체성이란 개인이나 집단, 혹은 민족과 국가가 공통된 역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갖고서 스스로 일체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귀속감을 느끼는 사회 심리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체성을 확산시켜갈 수 있는 방안도 마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동아시아공동체와 동북아공동체의 관계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중심의 위치에 자리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을 연결시킬 수 있는 중간 조정자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또한 자신의 국가가 중심이 되고자 한다. 이것은 바로 문화공동체를 추구하면서 그 속에서 정치적인 우위와 경제적인 선점효과를 보기 위한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다.
두 번째로는 동북아시아 문화 유산의 현재화가 필요하다. 문화에 대한 지적 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남희(2005)에 따르면 한자문화를 동북아시아 문화 유산의 현재화의 대표적인 예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자유 자본주의로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하여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거나 미비한 상황이다. 따라서 한자문화가 아닌 새로운 전통과 현재의 연결고리이면서 동북아사아가 모두 갖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동북아시아의 가장 큰 공통점은 지난 전통과 현재의 단절을 다시 잇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세 국가가 공통적으로 지닌 전통 문화의 구체적인 예로는 단오제를 들 수 있다. 단오제는 음력 5월 5일에 열리는 향토신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3국에서 갖고 있는 단오제의 문화원형은 하나로 합쳐지지만 각기 개성과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강릉단오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때, 중국의 반발이 심했다. 그 이유는 문화의 원류가 바로 중국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의 단오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완료되었다. 이 사건에서 주는 시사점은 동북아시아는 문화적으로 엮여있기 때문에 원류보다는 같은 원형을 개성있게 발전시켜나갔다는 점이다. 이 사건에서는 두 나라가 각기 문화적 포용력으로 인정을 하지는 못 했지만 같은 문화원형을 공유하고 있다는 예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로는 대중문화 교류, 사이버 공간과 디지털 문화의 활용이 있다. 이 부분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데 활용하기 쉬운 방법일 것이다. 대중문화의 교류로서는 매년 한국과 중국은 협동 음악회와 같은 문화교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중일 모두가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중음악 뿐 아니라 공연, 드라마 합작, 문화 예술가들의 교류의 장을 형성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의 활용은 동북아라고 하는 지리적 제약을 벗어나게 한다. 사이버 공간 상에서 교류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바로 ‘동시성’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한 사람이 올려 놓으면 그것에 즉각적으로 수백명의 댓글로 반응이 온다. 이 때 동시성이 떨어지게 된다면 그 효과도 떨어지게 된다. 동북아 한중일은 시차가 30분씩 난다 한국을 기준으로 중국과 일본이 수도를 중심으로 시차를 파악한다면 30분씩 차이가 난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사회규범으로 설정된 공식적인 시차는 0시로 되어 있다. 즉 란국과 일본의 시간 기준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표준시간이 일본의 도쿄를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다. 광복 이후에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 하게 됨에 따라 시차도 아직까지 일본의 도쿄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 따라서 다른 곳에 비하여 동시성을 확보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미디어 서비스의 발달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잘 몰라도 번역기 서비스를 사용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동시성과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 번째로 새로운 철학과 이념의 창출과 가치창출의 공유가 있다. 동북아 한중일은 앞서 언급한 봐야 같이 중국은 공산주의, 한국과 일본은 자본주의 이념을 따르고 있다. 이 이념의 대립은 한중일의 가치 대립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한중일은 전통적으로 대중 불교권과 유교 문화권이라는 이념과 가치를 갖고 있었다. 현대에는 대부분 서양의 근대화 발전과정을 수용함으로써 과거의 가치를 스스로 억제하였으나 과거의 공유 가치를 바탕으로 새롭게 한중일이 도모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 가지 권유를 할 수 있는 공동가치이자 보편적인 가치로써 ‘인간애’를 들 수 있다. 근대화로 인해 많이 퇴색되었지만, 한국에서도 다시 도시생활을 할 수 있는 생활공동체, 예술공동체, 육아공동체와 같은 많은 공동체들이 더불어 사는 인간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생겨나고 있다. 동북아의 공통적인 ‘인간애’는 더불어 사는 인간사회의 형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승불교가 아닌 대승불교가 유행을 하였으며, 자신의 분수를 이해하고 그로써 인간사회의 보탬이 되는 공부를 하는 유교가 발달한 것이다.
다섯 번째로 제도적 장치와 기구 설치 방안 마련이 있다. 여기서 정부 중심의 정책적인 제도 장치와 기구 설치 방안이 마련된다면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포함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민간차원에서 문화공동체를 형성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기구 설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남희(Lee Nam-Hee), 「동북아문화공동체의 정체성과 그 구축 방안 - 문화유산의 활용과 가치공유를 중심으로」, 『동양사회사상』 제11집, 동양사회사상학회, 2005, p.91
그리고 부차적으로 문화공동체 형성을 통하여 공유된 문화를 토대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며, 그것이 또한 문화산업을 육성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 민간차원의 문화공동체를 지원하는 것으로도 장기적으로는 경제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2)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둘러싼 한․중․일의 관점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설정하고 사람들에게 합당한 근거를 통해 이해되고 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의 설정에서부터 이미 한․중․일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정체성을 설정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관점에서 동북아시아 공동체는 한국이 생각하는 세력 균형 관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둘러싼 한중일의 관점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역할과 그 방향성을 설정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중국은 ‘중화론’을 중심으로 중국 이외의 나라들에 대해서는 이(夷)라고 지칭하였다. 한국은 그 중에서도 문화가 매우 잘 발달한 나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하여 왕이 아닌 ‘황제’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왕권강화를 할 때 두드러졌다. 그리고 조선후기에는 ‘소중화’를 표방하였다. 중국의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중화의 중심이 무너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조선후기에는 한국이 이 중화를 잇는다는 의미로 ‘소중화’를 외치게 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의 ‘소중화’가 자주적이지 못 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학은 자신의 분수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방법의 학문이다. 한국은 당시 중국의 땅보다 작고 그 만큼 인재가 확률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수를 이해하기 때문에 한국은 더 열심히 문화를 꽃 피우게 된다. 조선전기 한국 문화의 꽃은 세종대왕이 피웠다. 이 당시는 그러나 중화사상을 받아들이던 조선전기라기 보다는 고려 공민왕 이후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재정립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조선 후기에는 영조, 정조 임금의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의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회화, 소설 등의 배경이 한국이 되었으며, 한국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문화 발전은 바로 문화의 수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일제강점기의 일본학자들은 조선은 자주성이 없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인재를 육성하는데 주력하며, 이 모든 기반은 문화이다. 따라서 문화적 재창조를 하기 위해 다양한 나라의 문물과 문화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나라였던 것이다. 마치 그것이 자주성이 없어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다시 한국적인 특성으로 빛을 내게 된다.
그 다음으로 중국의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관점은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화이(華夷) 질서를 주창하였다. 중국은 자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아 자국의 문화을 ‘화(華)’, 주변을 뒤떨어진 ‘이(夷)’로 파악였다. 그리고 그 문화에 등급을 매겨 차등을 두었다. 가장 중심부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등의 순서로 위계질서를 형성하여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중국 황제와 주변 국가의 군왕들 사이에 형성된 예(禮)적 관계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형성하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일본은 화혼한재(和魂漢才)와 ․화혼양재(和魂洋才)로 형성된 일본문화를 화혼화재(和魂和才)로 승화시켜 나가려고 하였다. 특히 동북아시아 한중일 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겪었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을 실행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직접적인 전쟁을 통하여 실행하려고 하였지만 세계 제 2차 대전의 종결이후 패망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통해서 얻은 이득으로 일본은 문화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 때 일본은 ‘문화적 관용성’을 내비췄는데, 이미 관용이라고 하는 것은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베푼다는 의미가 있다. 이 의미는 일본이 다른 나라에게 문화적 관용성을 베푼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결국에는 문화적 ‘일본화’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 일본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아시아 경제․환경공동체」구상이나「아시아 콘텐츠 공동체」구상 같을 것으로 판단된다. 김필동(金弼東), 「동북아문화교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 東北亜文化交流が志向すべき価値」, 『人文科學硏究』 第17輯, 동덕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pp.113~115.



4.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한류’콘텐츠


한국은 자원이 없는 나라이다. 따라서 가장 큰 부의 원천은 ‘인재’이다. 그러한 ‘인재’들은 과거 조선시대에는 대게 유생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콘텐츠 사회로 변화가고 있으면서 인재는 콘텐츠를 기획, 제작, 생산, 유통 시키는 과정 속에 포함된 인재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한류 콘텐츠가 있다. 따라서 이번 한류 열품은 한국에게는 두 번 없는 좋은 기회이다. 한국정부는 이를 이용하여 문화공동체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 문화공동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문화발전의 또 다른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류 열품과 성공요인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한류’는 1992년 한·중 수교를 통해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것이 큰 계기가 되어다. 1997년에는 중국 CCTV에서 한국 드리마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되었으며, 1998년에는 한국의 음반이 중국에서 판매되었다.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2003년 NHK의 위성 제2방송(BS2)에서, 2004년 지상파인 NHK에서 방영되었다. 그리고 가수 보아의 일본진출 성공으로 많은 한국의 가수들이 직접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한류가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할 수 있었던 요인은 중국과 일본이 각기 다르다. 중국에서는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문화와 밀접하였다. 그리고 중국보다 앞서 자본주의를 통해 미국, 유럽의 현대 문화적 색채가 잘 어우러져 있다. 따라서 한류 속에는 중국적인 문화적 특색과 중국의 신세대들이 꿈꾸는 현대화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류 콘텐츠는 사람들에게 친밀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안겨주므로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궈랑, 리샹롱, 「동북아시아 문화공동체 형성, 그 가능성 분석- 한류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방송학회, 2005.11, p.36
따라서 한류 열품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의 힘은 전통과 현대를 드라마에 잘 묻어나오게 한 시나리오의 성공에서 유인되어있다. 드라마의 표면상으로는 부부,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과 사소한 이들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통해 다양한 심리, 사회, 문화 등의 윤리도덕, 가치관과 인성 등을 나타내므로 관중들로 하여금 평범한 것들 속에서 의미심장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장궈랑, 리샹롱, 「동북아시아 문화공동체 형성, 그 가능성 분석- 한류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방송학회, 2005.11, p.37

일본에서 한류 열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과거의 추억들을 회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그 이전의 일본이 성공하였던 시기를 회상하고 있다. 그 모습을 한국 콘텐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K-POP은 일본의 아이돌 ‘졸업제’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아이돌 육성방식 프로세스는 결과적으로 약육강식을 통한 우수한 아이돌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한국적인 특성이 잘 결합되어 나온 아이돌은 일본이 생각하는 우수한 트레이닝의 산물이면서 한국적인 특성이 어우러진 신선한 충격을 동시에 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한류 열품을 통해서 한 가지 시사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미 동북아시아에서 한류 이전에 ‘홍콩류’, ‘일류’ 등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유행은 대략 10년을 주기로 바뀌었다. 2000년을 전후로 동북아시아에서는 ‘한류’가 유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10년이 지나도 아직까지도 한류는 유행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한국 국내에서도 ‘한류’가 다른 동북아시아의 문화유행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하여 또 다른 문화발전의 원동력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2)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구상

동북아 문화공동체는 우선 크게 4가지 단계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단계는 ‘동북아 역사 문화공동체’이다. 한류의 열품에도 불과하고 혐한류 활동도 매우 조직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분쟁에서 비롯된 영토분쟁이 원인이 된다. 따라서 가장 먼저 동북아 역사 문화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 방안은 계속 논의되고 있으나 사실상 이뤄지지 못 하고 있다. 동북아 역사 문화교류를 한다고 하더라도 주최가 되는 측에서 발표자 혹은 토론자들을 선별해서 초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문화교류가 아니다. 동북아 역사 문화 공동체는 전혀 다른 역사적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조합해 나갈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충분히 의견을 조합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견 조합은 역사적 화해와 평화가 아닌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이다. 혹은 각기 다른 의견들이 점차 커지면서 더 첨예하게 의견 대립을 할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처음 시도는 매우 어렵겠지만 꼭 동북아시아가 1단계로 거쳐야 할 사항이다.
두 번째 단계로는 ‘순수예술 문화공동체’이다. 순수예술은 문화부분에서도 가장 포용력이 넓은 부분이다. 요즘 한류는 순수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유행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순수예술 관련 국제 공모전을 주최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작가들은 한중일의 동북아시아 작가들이 많다. 이천의 도자기 축제는 매년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작가들의 작품을 초청한다. ‘세계 ZOO 아트 공모전’에서도 매년 다양한 재료를 갖고 동물을 만드는 공모전을 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순수예술분야의 한류 열품의 밑거름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단지 국제 공모전, 국제 전시뿐 아니라 예술가들의 공동 작업실과 같은 더욱 더 순수 예술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모든 문화의 창의력과 생각은 순수예술에서 비롯된다. 순수예술가들이 공통작업을 하게 되면, 그것에서부터 공통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통영될 수 있는 가치나 이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념을 작품으로써 나타내어 서서히 다양한 문화에 그 가치와 이념을 내포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 창조도시 이론에 따르면, 예술가들의 창의력을 통한 혁신과 그들이 갖고 있는 이념과 가치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에서부터 비롯되어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준다.
이다.
세 번째 단계로는 ‘문화콘텐츠 문화공동체’이다. 한류는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문화산업콘텐츠에서부터 시작이 되어 이제는 음식, 미술, 공연과 같은 다양한 문화산업콘텐츠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일본은 이미 앞서 현대적인 문화콘텐츠를 기획, 제작, 생산, 유통시켰고, 한국은 현재 문화콘텐츠 사업이 호황을 이루고 있다. 중국은 일본과 한국의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연구하여 앞으로 큰 발전을 이뤄나갈 것이다. 여기서 문화콘텐츠 문화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본은 문화콘텐츠 사업의 정체기라고 판단할 수 있는데, 한국도 어느 순간 지속적으로 한류 열풍을 이끌어 나갈 문화 소재를 발굴하지 못 한다면, 한류는 정체기로 빠져들 것이다. 이것을 타파할 수 있는 것이 일본과의 문화공동체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정체기에 빠져든 문화콘텐츠 사업을 보면서 한국의 콘텐츠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현재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이 문화콘텐츠 산업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체기를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소재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발달한 문화콘텐츠 산업 시스템을 배워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중국도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중국문화의 열풍을 가져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은 이 공동체를 통해 중국 문화콘텐츠의 발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콘텐츠 문화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형태로 합작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제 필요한 것은 크기 자본, 기획자, 제작자, 생산자, 유통자가 필요하다. 이 모두를 각기 다른 나라에서 맡거나 혹은 자본은 한국과 일본이 대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중국에서 맡아서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뤄지고 있으나 주로 생산자 중에서 한류 스타의 스타파워를 이용하여 콘텐츠를 홍보하려는 의도가 크다. 이제는 그러한 의도를 넘어 공동작업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네 번째 단계로는 문화기술 문화공동체가 있다. 문화기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일반적인 대중들은 문화콘텐츠 자체에 매료될 뿐, 그 콘텐츠를 만드는 데 드는 기술에는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데는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다. 만약 미래세계 영화를 한 편 제작한다고 하면, 그래픽 디자인에서부터 미래 세계에 도래할 다양한 공간에 관련된 기술과 시스템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기술은 콘텐츠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4단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문화기술을 실제 과학기술이나 과학기술발전 상상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즉, 이 기술들은 다른 제품들의 기본 기술이 되며, 이 기술로써 수출은 하는 다른 기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2,3단계를 거치면서 신뢰가 구축이 된 상태에서 문화기술 문화공동체가 형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동북아 협력 문화기술 공동체를 운영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표1> 동북아문화공동체 구성의 단계별 전략
단 계
명 칭
단계별 전략
1단계
동북아 역사 문화공동체
동북아 공통의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역사 연구자들과 문화교류 및 학술단체 교류
2단계
순수예술 문화공동체
공모전, 전시회, 공동 작업 공간 마련
3단계
문화콘텐츠 문화공동체
동북아 합작 문화콘텐츠
4단계
문화기술 문화공동체
동북아 협력 문화기술 연구소 설립



결과적으로 동북아 지역 통합과 교류에 문화콘텐츠의 교류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동북아에서는 한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만의 문화콘텐츠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해야 함을 논의하였다. 민간단체들에서 할 수 있는 총 4단계를 논의하였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동북아 문화협력기구를 창설 최혜실, 「동북아 사회문화 협력의 초석으로서 문화콘텐츠의 역할」, 동북아세아문화학회, 2008.4, 253-256 (4 pages)
해 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5. 결론


한류는 현재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문화기반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류는 한국 중심의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만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형성된 문화공동체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동북아문화공통체를 장기적으로 형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중일이 모두 동등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그 틈새에서 한류라고 하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한류와 동북아문화공동체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각각의 정의를 모아 용어 사용의 의미를 통일하려고 하였다. 그 다음으로 대부분의 논의가 한국정부의 활동과 노력에 치우쳐져 있었다면, 한류라는 콘텐츠는 특성상 민간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정치적 분야를 배제한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되거나 개입이 있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민간차원의 4단계 문화공동체 형성 방안을 제시해 보았다.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그 이후 더 많은 지역과의 문화교류 혹은 문화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콘텐츠를 형성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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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의 미래

한국외국어대학교대학원
일본어일문학과
우오즈미 야스코

















Ⅰ. 서론
전세계적으로 한국 대중문화 붐이 일으키기 시작해, 2003년 4월 일본 NHK의 BS2에서 '겨울 연가'(冬のソナタ)가 방송 된 후 '한류붐'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한류붐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된 지 올해로 10년. ‘겨울 연가'를 본 사람은 드라마의 주역, 배용준과 최지우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고 드라마 배경으로 등장한 남이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영향으로 드라마의 OST를 구입하거나 DVD를 사게 되고 드라마의 주역, 배용준과 최지우에게 호감이 증가하여 그들이 출연하는 다른 드라마나 영화도 보고 싶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류 붐이 확산되어 한류 문화와 스타에 대한 호감은 한국 이미지 개선에도 이어졌다. 이는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의 전자 제품, 자동차, 화장품 등의 구매를 촉진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한류붐이 일본과 일본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한류붐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미래의 한류를 위해 새로운 제안을 해보도록 한다.

Ⅱ. 본론
1. 한류의 정의
한류란 1990년대 말부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일으킨 한류붐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 문화의 유행을 가리키는 것이다. 민간 주도에서 1997년 이후 한국 정부 의 문화 산업 진흥책 지원, 일본 TV 드라마의 가격 상승, 홍콩 영화의 쇠퇴 등 국내외 성장 환경 기반이 조성되었고 이에 따라 아시아권 전역에서 한국 대중 문화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붐이 형성 되었다. 이 현상이 대만에서 '韓流 熱風'라고 표현되며 이는 이후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1998년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단계적으로 개방되고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를 통해 한일 양국 우호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에 맞춰 일본 대중 매체는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그 범위는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쳤다.
먼저 영화에 있어서 2000년에 일본에서 공개된 ‘쉬리’의 흥행을 계기로 한국영화 붐이 일어났다. 그 후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엽기적인 그녀’ 등의 작품들이 잇따라 개봉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도 위성방송(BS)에서 2002년경부터 ‘가을동화’ ‘이브의 모든 것’ 등이 방송되며 점차 시청자가 늘었다. 음악에 있어서는 2001년에 일본에서 데뷔한 BoA가 2002년에 발표한 4번째 싱글 ‘LISTEN TO MY HEART’로 주목을 모으고 같은 해 ‘가요 홍백전’에 출연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외에도 잡지에 한국 특집 기사가 실리거나 한국에서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방송되어 한국여행이나 한국요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또한 일본의 국민 아이돌 SMAP의 멤버가 한국어로 진행하는 ‘초난강’이라는 프로그램도 큰 화제를 모았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일본인들도 늘어났다.
이상과 같이 일본 사회에서의 한류 붐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한류의 영향
2.1 한국에 대한 일본국민 감정 변화
한류의 경제적 파급 효과 외에도 폭넓은 분야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특히 오랫동안 양국에 쌓여있던 감정적인 응어리와 편견을 제거하고 우호 친선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2001년과 2004년 일본의 여론 조사를 비교하면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가 증가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가 감소하고 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한류 (겨울 연가, 욘사마 붐)의 영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2006년 요미우리 신문 • 한국 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진 일본인은 51 %, 또한 한일 관계는 나빠졌다고 보는 일본인도 59 %로 1995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사상 최대가 되었고, 그 원인으로 한일 정치적인 문제와 함께 한국의 드라마를 중심으로 일어난 한류붐이 서서히 식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2010년도의 여론 조사에서는 '친밀감을 느낀다'가 61.8 %로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가 36.0 %로 전년에 이어 60 % 넘었다.

2.2 한국어 학습자의 증가
한류붐의 영향으로 한국어 학습자는 대폭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NHK의 한글 강좌 텍스트의 판매량은 1984년 방송을 시작한 시점에 9만부였지만, 2004년에는 20만부까지 증가하여 영어에 이어 판매 2위가 되었다. 한류 드라마나 한국 가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 학습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한류가 단순히 컨텐츠 수출에서 한국 브랜드 수출로 한 단계 성장한 증거로 판단된다.

2.3 한국 관광 증가
한류붐이 시작한 2004년 한국 관광객이 전년대비 35.5%증가해 2,44만명으로 최고기록을 경신하다 환율, 한류붐 약화로 인해 관광객이 점점 감소하여 2008년 200만명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경부터 한국의 높은 성형 기술이 주목을 받아 관광객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고 2009년 엔고 • 원화 약세와 한류 붐을 타고 일본인의 한국 입국이 처음으로 300 만명을 돌파했다.

2.4 신오쿠보(新大久保)의 변화
2010년 초부터 한류 상점이 늘어선 도쿄의 신오쿠보의 코리아 타운은 '한류의 성지'로 많은 팬들이 방문하게 되고 , 2011년에는 한국 연예인 관련 상점과 한국 식당, 카페 등이 잇따라 오픈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약 300미터 골목에 60개 이상의 상점이 즐비하고 코리안 타운은 땅값이
2배 이상 오르고, 휴일 유동인구는 3만명이 넘게 되었다.

3. 한류의 과거
3.1 드라마
2004년 4월에 NHK BS2(위성방송)에서 방송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겨울연가’는 같은 해 12월 NHK BS2에서 재방송되었다. 지상파에서도 방송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으로 인해 2004년 4월에는 NHK 종합TV를 통해 또 다시 방송되어 2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NHK BS2에서 네 번째 재방송되었다. 이 ‘겨울연가’붐은 일본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2004년의 히트 상품 1위는 ‘한류’가 선정되었고 , 유행어 대상에서도 ‘겨울연가(후유소나)’가 탑10에 진입하였다 . 이후 ‘아름다운 날들’, ‘호텔리어’, ‘천국의 계단’, ‘올인’등 한국 드라마의 일본 진출이 속속 이루어져 호평을 받았다.
2005년에는 ‘대장금’이 큰 성공을 거두어 한국 사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 ‘주몽’, ‘이산’등이 잇따라 인기를 끌었다. 2009년에 방송된 ‘이산’은 ‘대장금’을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 일본에서 한국 사극이 정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2012년 5월 일본 주요 방송국의 BS(위성)방송 에서는 한국 현대 드라마와 사극이 매주 각각 1편 이상씩 방송되고 있으며 현대 드라마뿐만 아니라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더하면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3.2 K-POP
일본에서 한류라는 맥락에서 BoA가 원조 K-POP가수라고 할 수 있다. BoA의 등장 이후 K-POP은 2008년경부터 점차 붐이 조성되었고 현재는 주로 K-POP 아이돌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먼저 동방신기, BIGBANG과 같은 남성 그룹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동방신기는 2005년에 일본에서 정식으로 데뷔했는데 실제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말경이었고 , 2008년에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BIGBANG은 2008년 일본 데뷔 후 2009년, 2010년에 일본 음반 대상에서 잇달아 ‘최우수신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그룹들의 영향을 받아 CNBLUE, 2PM, BEAST, 2AM 등 남성 아이돌 그룹들이 최근 속속 일본 데뷔를 했다. 2011년에는 이미 드라마를 통해 인기가 있었던 장근석도 가수로 데뷔했다. 장근석은 2011년 3월 일본 여성 패션 잡지 ‘an・an’의 표지 모델을 맡았는데 ‘an・an’ 3월호는 판매 직후 28만부라는 판매 기록을 세우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보이고 있다 .
2010년에 들어와 아시아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끌었던 걸그룹들이 일본에서도 연달아 데뷔했다. 특히 KARA와 소녀시대는 높은 인기를 끌며 많은 일본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 외에도 T-ara, 2NE1, Secret, 4Minute 등 걸그룹들도 앞다퉈 일본 진출 중이며, K-POP은 일본에서 하나의 음악 장르로 확실하게 정착했다.

4.한류의 현재(2013년)
한류 붐이 확산 한편에 한류 드라마나 K-POP에 대한 싫증과 염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12년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 런던 올림픽 박종우 축구선수 현수막 사건이 발화점이 되어 일본 국민의 반한 감정이 고조 되었고 미디어에서도 한류 콘텐츠의 노출이 점점 감소되어 한류 인기가 점점 쇠약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현직 CEO 246명 중 47 %는 "한류가 5 년 이내 에 끝날 것이다 "라고 답했고 40%는 "5 년 이상 지속 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28 %는 3 ~ 5 년 이내에, 17 %는 3 년 안에 한류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류 지속의 장애 요인으로는 아이돌 가수 일변도의 좁은 저변 (73 % • 중복 응답 허용)을 가장 많이 꼽았고 반한류 (57 %), 유사한 드라마 양산 (39 %), 외국 한류 모방 (22 %)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삼성 경제 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비슷한 콘셉트의 가수와 드라마가 늘어나면서 외국인들도 싫증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5.한류의 미래
이렇게 인기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한류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신한류 지속발전 6대 전략을 제안했다.
1. 한류 범위의 확장
2. 한국적 가치 결합으로 독창성 강화
3. 건전한 창작 생태계 구축
4. 교류. 협력 강화로 공감기반 조성
5. 온. 오프라인 플랫폼의 전방위적 활용
6. 국가별 맞춤형 마케팅 전개
이 중 1, 4, 6번 3개 전략에 주목해 새로운 콘텐츠 제안을 하고자 한다.

5.1 한류 범위의 확장
한국 드라마, K-POP 두 개 장르에 국한된 한류는 주류 문화로 정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 된다. 그래서 K팝, 드라마 등 스타 중심의 한류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텐츠 장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기존 K팝이 아닌 다른 영역의 시장 진출을 제안하며 이는 개그분야 그리고 또 하나는 엔카 시장의 진출이다.
일본 간토지방 방송평균 시청률을 보면 드라마 보다 시청자의 성별, 나이에 상관 없이 즐길 수 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다. 이 시장에 개그콘서트를 필두로 관객과 하나가 되어 호흡하는 극장형 개그와 말이 안통해도 의사전달이 가능한 달인과 같은 몸개그는 일본의 개그 코드와 유사함과 동시에 상이해 한국 개그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다음은 엔카 시장 진출이다. 한 예로 일본 엔카가수 히카와 키요시다. 히카오 키요시는 아이돌에게 지지 않는 외모와 가창력을 가지고 2000년 일본전통문화인 앤카계에 데뷔했다. 2001년부터 출시하고 있는 "엔카 명곡 콜렉션"시리즈는 발매 될 때마다 오리콘 앨범 차트 첫 등장 베스트 텐 진입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싱글에 있어서도 2001 년에 발매 한 "오-이 뒤쫓아 온지로 '에서 종합 차트 베스트 텐 진입을 과연 이후' 히카와 키요시 '명의의 싱글은 모든 싱글 차트 베스트 텐에 진입하고 있다.
뛰어난 외모와 가창력, 댄스실력을 갖춘 K팝 아이돌 가수가 기존 댄스분야에 한정되어 젊은 세대에게만 호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엔카 시장에 진출한다면 젊은 세대는 물론 나이든 세대까지 전연령에게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슷한 컨셉의 K팝 아이돌 일변도에서 벗어난 시도가 새로운 한류 시장을 이끌고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2 교류, 협력 강화로 공감기반 조성
반한류. 혐한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문화교류와 합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양방향성 문화교류와 공동제작 등으로 한류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 시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요즘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주목을 받고 있는 뮤지컬 시장이다.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전세계 3대 뮤지컬 시장으로 한국에 비해 시장의 규모가 월등히 크다. 700억엔 규모의 일본 뮤지컬 시장에 작년 많은 한국 뮤지컬 업체들이 진출했다. 2012년 일본에서 공연한 한국뮤지컬을 보면 햄릿을 비롯 한국인기드라마를 뮤지컬화한 커피프린스1호점, 궁 등등 있다.
일본 뮤지컬시장에 최근 한가지 중요한 특징은 한국회사와 일본회사가 공동제작을 한 점이다.
올해 4월에 썸머 스노우라는 일본드라마를 뮤지컬화해서 일본 티켓피아와 한국 J엔터테인먼트의 공동투자로 오사카와 도쿄에서 공연을 했고 특히 도쿄공연은 31회 공연에 총 제작비 32억원에 매출이 56억원으로 수익율이 무려 79%를 달성하였다.
공동투자의 비즈니스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일본 시장을 목표로 전략적인 비즈니스 파트너쉽을 맺는다.
2. 안정적인 티켓 판매 유통망을 확보한다.
3. 한류 스타가 참여하는 뮤지컬 개발 및 확보를 통한 일본 진출을 확대한다.
4. 지속적인 작품 개발 투자 및 유통 구조 개선을 한다.
5. 새로운 비즈니스 툴 개발과 프로젝트 개발을 한다.

6. 국가별 맞춤형 마케팅 전개
K팝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과 일본 아이돌 육성방법의 차이다.
일본은 백댄서 등으로 활동을 거치고 나서 가수 데뷔시키는 '육성형'인 반면 한국은 몇 년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완성된 가수로 데뷔시키는 '완성형'이다. 한국 스타는 완성도가 높아 초기 호응도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지라도 시청자 입장에서 쉽게 싫증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육성형은 상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지라도 점점 발전해가는 모습에 싫증을 덜 느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두번째 이유는 한류 아이돌 가수들은 서로 유사하고 정형화된 콘셉트라 가수간 개성을 없다고 생각 된다.
이에 따라 일본의 대표적인 육성형 아이돌인 AKB48의 성공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이란 콘셉트로 2005년에 데뷔한 AKB48은 데뷔 당시 20명이었고 팬도 7명뿐이었다. 그러나 매일 매일 계속 공연을 했고 그런 그녀들의 열심히 하는 모습에 팬들이 한명씩 늘어났다. 그리고 2009년도부터 시작된 팬들이 직접 인기투표를 해서 선발 멤버를 선출하는 총선거시스템은 팬 커뮤니티를 강화하고 아이돌 아이템들이 많이 팔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CD구매자를 대상으로 악수회를 개최하는 등 팬과 가까운 아이돌으로서 성공했다.
한국의 주입식 일방통행식의 문화 수출보다 일본에 맞는 일본 국민의 정서에 맞는 컨셉으로 육성형 아이돌을 만든다면 새로운 시도이자 기회가 된다고 판단된다.

Ⅲ.결론
한류를 계기로 벽 허물고 한국의 문화, 상품, 언어 등 한국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일본어 속담 중에 好きこそ物の上手なれ라는 말이 있다. 좋아해야 뭐든지 잘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한국을 좋아하니까 학생이 늘고 친구가 되고 제품을 사게 된다. 이는 한류라는 한국대중문화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 발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본격적인 한류붐이 시작된지 10년이 되었지만, 앞으로 10년 20년 한류가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양국이 많은 협력과 노력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양국간 진정성있는 한일 우호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参考文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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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浩淵(2011)「韓流産業の明と暗」『アジ研ワールド・トレンドNO.195』
朴倧玄 「深韓流-韓流の語原と韓流文化の考察-」『〔連載〕深韓流からみた韓国事情 第12回』
동상, p. 50참조.
박용구(2007)「겨울연가 ‘쓰나미’와 일본인의 대한 이미지 변화」『일본연구』제31호 p. 49참조.
서민수(2013)「新한류 지속발전을 위한 6대 전략」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제899호
이유리(2013) 「한국뮤지컬의 일본진출상황과 발전방안」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

디지털콘텐츠 백서 2012 한국콘텐츠진흥원
「한일문화콘텐츠산업포럼」 2013년 4월 25일
한류 붐은 2004년부터 시작했다’는 논자도 있지만 본고에서는 ‘겨울연가’를 기준으로 2003년을 한류의 시작으로 본다.

朝日新聞名古屋本社版、2005年9月8日
総合ニュース YONHAP NEWS 2011年 2月 24日付
中央日報 2006年8月7日、2011年1月3日付
中央日報(英語版) Coming to Korea to see the doctors
朝鮮日報 2005年10月25日、2006年 6月13日付
長良プロダクション 公式ホームページ
日本経済新聞 2011年9月14日、2012年11月19日付
日本貿易振興機構(ジェトロ)(2011)「韓国のコンテンツ振興策と海外市場における直接効果・間接効果の分析」

AFPBB News 2012年04月23日
Gow! Magazine(ガウ!マガジン)2012年04月28日
J ENTERTAINMENT KOREA 内部資料
Video Reserch Ltd

* 「시대별로 본 중국의 한류」토론문

한국외국어대학교
이구치케이나

흥미로운 발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중국에서 한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사한 적이 없어서 이번 발표를 통해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발표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싶은 점이 있어서 몇 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발표자는 한류가 생긴 이유를 몇 가지로 지적하셨는데, 그 하나는 “예전에는 일류열풍이 있었지만 일본 콘텐츠의 수입가격이 비싸서 일본드라마 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발표 후반에서는 한국드라마 가격이 계속 올라서 2003년 작품인 “대장금”과 2005년 작품인 “프르하우스” 수입가격을 비교하면 8배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처음에 값이 싼 드라마라고 인식한 한국드라마는 이제 더 이상 싼 드라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결론에서 발표자는 앞으로도 중국에서 한류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게 아주 낙관적인 의견이 아닐까요? 혹시 싼 가격 때문에 한류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으면 그렇게 앞으로도 더 지속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는데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중국은 인구가 많은 나라입니다. 따라서 어떤 드라마 시청자가 1.8억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인구에 대비하면 10%도 차지하지 않습니다. 발표자는 ‘중국에서’라고 지역을 한정하면서 중국에 있는 한류열풍을 잘 설명해 주셨는데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한국 드라마나 노래나 다른 문화산업을 지지하고 있습니까?. 제가 본 자료에서는 한류에 빠진 연령대는 10대, 20대이며, 30대는 한류라는 말 정도는 알지만 주로 젊은 세대에서 한류열풍이 유행하는 증상이라고 들었는데, 실은 이런 세대적 차이든지 지역별 차이든지 이런 것이 실제로 있다고 보는 건가요? 혹 지역별 차이가 있다면 이런 지역적 차이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세대 차이가 있으면 이 차이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또한 차이를 줄이기 위해 한류의 어느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감사합니다.

*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 방향성과 한국의 역할에 대해 토론문

사미미(성균관대학교 석사과정)

임수연 학생의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 방향과 한국의 역할’에 대한 발표를 보고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을 꼭 이루어야 되겠다는 주장을 알 수 있었다. 저는 그 중에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생각이 좀 다른 부분도 있다.
우선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형성 가능성부터 얘기 한다. 여기서 동북아는 주요 국가인 한중일을 지칭한다. 만약에 한중일이 이 지역 문화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면 당연히 자기 나라가 중심국가가 되고 싶어할 것이다. 그것만 해결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그리고 경제, 문화, 역사, 정치적으로 분석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첫 번째, 경제적 문제이다. 세나라 모두 자가나라 문화가 유행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즉 ‘한류, 중류, 일류’. 그리고 자기 나라문화가 다른 나라에게 영향을 주고 싶은 원인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심국가가 되는 것은 경제 이익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보다 먼저 유럽처럼 경제연합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한중일 FTA, 즉 경제연합단계 전단계는 요즘에 세 나라가 적극 추진 중이다. 그리고 경제연합도 엄청나게 힘든 문제인데 문화공동체는 더 어렵겠죠?
두 번째, 문화적 문제이다. 한국문화는 자기 고유문화 플러스 외래문화이다. 임수연씨가 얘기하는 것과 같이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문화적 재창조를 하기 위해 다양한 나라의 문물과 문화를 끓임 없이 받아들이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문화는 외래문화와 고유문화를 조화롭게 융합하면서도 한국의 독특한 문화이다. 또 다시 다른 문화를 융합해서 문화공동체의 형성을 쉽게 받아 드릴 수 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원래 고유문화 의식이 강하고 타문화를 융합해서 문화공동체를 형성하기 힘든 것이다. 간단히 예로 들면 커피 문화이다. 인구수는 중국이 더 많고 국가 발전 정도는 일본이 더 앞서고 있지만 이 커피문화는 한국에서만 형성 되었다. 친구 집에 가도 사무실에 가도 어떤 장소에 가도 먼저 권하는 것은 커피이다. 그리고 곳곳에 커피숍이 있다. 반면에 중국과 일본은 아직도 차이가 난다. 그리고 중국은 원래 자기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서 자기 것이 제일 좋다고 인식한다. 일본은 원래 민족 자존심이 강해서 다른 문화를 쉽게 못 받아 들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임수연씨가 문화 공동체의 정체성 구축과 방안 중에서 동북아 문화 유산의 현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역시 그 것도 쉽지 않다. 같은 문화원형을 공유하고 각자를 원형을 개성있게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참 예민한 문제이다. 유산의 원형을 공유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 왠지 문화 유산을 뺏기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세 번째는 역사적 문제이다. 세나라는 오래 전부터 한 나라라도 빠지면 안 되는 복잡한 관계다. 한중일 세 개의 나라는 각각 시대별로 전쟁을 치러왔지만 결과적으로 하나의 나라 혹은 하나의 왕조가 통일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역사 분쟁과 영토 분쟁들이 해결되지 않는 상태이고 서로 국가간의 신뢰도 안 좋은 상황이다. 그래서 문화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임수연씨가 문화공동체의 정체성 구축과 방안 중에서 철학과 이념의 창출과 가치창출의 공유가 가능하다는 관점은 같은 생각입니다. 과거에 한중일은 공통적으로 대중 불교권과 유교 문화권이라는 이념과 가치관을 통해서 세 나라의 분쟁을 해소하고 평화롭게 갈 수 있다고 생각 한다. 생각이 틀린 부분을 억지로 통일화 시키는 것보다 서로 공감이 되는 것부터 출발해서 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휠씬 더 효과 적이다. 종교와 신앙처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그래서 제 생각은 ‘한류’가 지속적으로 가려면 문화공동체의 형성보다 물론 문화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면 아주 좋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실현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차라리 한국정부와 국민이 잘 협력하여 자기 나라문화를 외국으로 적극 홍보하는 동시에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문화체계를 형성해서 ‘한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일본에서의 한류의 미래-토론문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김미란


우오즈미 야스코님의 한류의 미래란 글을 통해 현재 일본에서의 한류는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한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지금과 같은 한류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부터이고, 현재는 신한류인 K-POP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까지 확대되어 한국의 대중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야스코님의 글 속 자료를 통해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는 일본인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한국어학습자가 점점 증가하여 2009년기준 17만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인으로써 뿌듯함이 느껴졌다.

일본에서의 2003년 ‘겨울연가’의 높은 시청률과 욘사마 열풍은 폭발적이었다. 겨울연가의 영향으로 2004년 4월부터 NHK에서 한국드라마 최초로 지상파 방송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을 볼 때 겨울연가가 한류의 붐이 일어나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한국드라마의 아름다운 영상 뿐 아니라 멋진 남성의 다정한 모습과 로맨틱한 상황은 일본여성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고, 점차 사라지고 있는 가족애를 일깨워줬기 때문에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일본 중장년층의 여성으로부터 한류가 시작되었다면, K-POP을 통해서는 젊은 층에게도 한류 붐이 일어나게 했다. 글 내용처럼 2008년 동방신기, 빅뱅의 성공과 2010년 소녀시대와 카라가 일본으로 진출하면서부터 신한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K-POP스타들의 완벽한 춤과 안무실력, 멋진 스타일과 외모는 따라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거기에 한류 열풍에 편승하려는 한국 아이돌의 일본 진출도 늘게 되었고 이러한 한류 열풍은 한국제품의 사용증가, 한국으로의 관광증가 등의 경제효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한류에 위기가 오고 있다고 한다.
야스코님의 자료를 보면 한류가 5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응답은 40%인데 반해 한류가 5년 내 끝난다고 응답한 사람은 47%로 한류의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야스코님은 한류의 지속장애 요인을 외국의 한류 모방, 유사한 드라마 내용, 반한류, 아이돌 가수의 일변도 이렇게 4가지로 나누었다.
한류의 열풍으로 인해 비슷비슷한 그룹 등이 일본에 대거 진출하면서부터 신선함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캔디형 여주인공이 멋진 남성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비슷한 내용의 드라마에 일본인들도 싫증을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몇년전부터 반한류의 감정이 일본 내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점이 한류에 큰 위기요소가 되고 있음은 개인적으로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너무 과한 한류열풍으로 일본의 문화가 잠식당할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이에 야스코님은 위기를 극복하고 한류가 일본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6가지로 정리하였다. 한류 범위를 확장하고, 한국적 가치 결합으로 독창성을 강화하고, 건전한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고. 교류 협력 강화로 공감기반을 조성하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의활용, 국가별 맞춤형 마케팅 전개를 제시하고 있다.

야스코님과 마찬가지로 K-POP, 드라마로 국한되어 있던 한류의 범위를 넓히고 독창성을 강화해야 한류가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속 자료 중 일본의 간토지방 방송 평균 시청률을 보면 드라마보다 버라이어티의 시청률이 높게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시청자들이 드라마보다는 다양한 재미의 버라이어티로 시선을 돌리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를 근거로 야스코님은 개그맨을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나라마다 웃음의 코드가 다르고, 언어가 달라 억지로 개그맨이 진출하는 것은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런닝맨이란 버라이어티가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된다면 버라이어티의 한류 가능성이 없어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콘텐츠 제안이었던 아이돌 앤카가수의 진출은 상당히 공감 가는 부분이다. 앤카와 트로트는 한일 양국에서 비슷한 형태로 인기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일본의 히카와 키요시와 같이 우리나라에도 박현빈, 장윤정, 윙크 등의 젊은 트로트가수가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에 진출한 박현빈이 2012년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서 엔카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신세대 트로트가수의 일본진출은 일본의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있다고 본다.

교류 협력 강화는 한류의 거부감의 낮출 수 있는 방법으로 매우 공감 가는 제안이었다. 그 예로 뮤지컬을 들었는데 일본배우가 일본어로 공연하는 방식이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여 일본인들이 친숙함을 느끼고 거기에 음악과 안무 등은 K-POP을 기반으로 제작된 방식은 성공적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작품의 완성도와 일본의 마케팅 협력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약 5000억원 규모로 한국시장 2배에 가깝기 때문에 앞으로 뮤지컬의 한류를 공략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글쓴이는 국가별맞춤형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2011년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가 홍백가합전에 출연해서 한류열풍을 보여주었으나 2012년에는 명단에서 빠지게 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독도분쟁 등의 정치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2011년에 비해 그 열풍이 식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의 마케팅 방식에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아이돌 그룹 중 AKB48은 팬과의 소통을 통해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AKB48처럼 점점 발전하는 모습에 열광하고 팬들이 스타를 키운 것 같이 느껴져 애정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슈퍼스타K등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신선한 모습과 점점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고 애정이 생기게 된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일본에서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오디션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여 한국적이지만 일본과 친숙한 아이돌을 만들어 가는 방법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AKB48의 상설공연은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의 이미지로 친숙함을 강조한다. 이 역시 좋은 방법이긴 하나 아무래도 우리나라 가수들이 일본에 상주하지 않는 이상 이 방법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된다. 대신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트위터나 팬카페 등에 아이돌이 직접 자신의 생활사진이나 소식을 알리고 영상을 통한 팬미팅 등의 마케팅활동을 한다면 친숙한 아이돌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AKB48의 성공 비결 중 CD판매량에 따라 악수회 참여권이나 선거권이 주어지는 방식은 한류가수에게 좋은 방법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본인이 좋아하는 멤버에게 투표를 하기 위해 대량으로 CD를 구입하게 된다면 단기간 수익이 늘어나고 열광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 방법을 우리가 따라한다면 자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상술처럼 보일 수 있어 반한류를 가속화 할 수도 있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야스코님은 한류가 일본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방송매체나 스타 중심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기존의 한류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처럼 붐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한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류는 이제 일본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고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제 한류는 넓은 의미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찾고 확장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근 일본에서 한국드라마를 통해 음주문화와 음식 등이 전파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주류시장에 고급화 전략을 통해 소주가 알려지고, 막걸리는 장근석의 CF를 통해 일본의 히트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뷰티쪽에서도 한류의 열풍으로 한국 연예인처럼 되고 싶어 하는 여성이 늘면서 한국화장품의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여배우 마쓰야마 코유키가 한국 산후조리원에서 출산을 했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의 산후조리원 문의가 이어졌고, 일본에 들여오고 싶은 한국상품 1위로 뽑혔다고 한다.
이처럼 한류 문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이 콘텐츠를 일본에 맞게 현지화를 시키고 생활문화로 이어져 다시 좋은 콘텐츠가 생기도록 순환적인 한류가 필요하다.
이제는 무조건적인 한류의 수출보다는 한류의 인기요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일본 사회의 변화하는 트렌드를 간파하여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한류 문화콘텐츠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상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일방적이 아닌 상호교환적인 문화교류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한류가 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