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국제학술세미나 발표문
Subtitle
  몽골 바트수리 발표문
Date
  2007.03.28
Register Date
  2007-03-28 오후 10:01:00
Count
  3992

   
 
한국-몽골 : 양국 관계와 협력

몽골 뭉크하누대학장 바트술해 박사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국제학술대회
2007년 3월 20일, 외교센터 리더스클럽


신사 숙녀 여러분!
우선 먼저 저를 이 세미나에 초대해 주신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IEAPS)의 소장인 이 박사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로선 이처럼 중요한 세미나에 초대되어 연설하게 된 것이 무한한 영광이어서 이 초대를 크나큰 기쁨으로 수락하였다.
몽골과 한국의 역사엔 400년대 때부터 많은 일들이 있었다. 특히 징기스칸에 의해 확립되었었던 대몽골제국과 위안 왕조(원나라) 때에 몽골은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몽골과 한국의 전통적인 연관관계와 협력 상황은 다음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고대(13-14세기), 20세기의 초기와 중기(1910-1930, 1945-1990년), 그리고 1990년대 후로 생각할 수 있다.

고대 (13-14세기)

역사적인 자료에 의하면 한국과 몽골은 고대 때부터 근접한 지리적인 이유로 인해 여러 방면에서 교류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400년도엔 몽골의 니런(Nirun)지방과 한국의 고구려 사이에 공식적인 외교관계도 성립되었다. 그래서 479년도에 몽골의 니런지방의 군주와 고구려의 군주는 만주의(Manchuria) 디고간(Digogan) 지방을 함께 공격하기로 공식적인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학자인 달라이에 의하면 400년도의 중반에 솔론고스(Solongos) 와 같은 이름이 몽골인들 사이에서 이미 사용되었었고 그 사실은 몽골과 한국 사이에서 이미 여러 계층에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역사상에서 몽골과 한국은 12세기 후반과 13-14세기 때부터 교류를 시작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학자들과 연구자들에 의하면 그 시대에 몽골과 한국의 관계는 두 단계로 나누어 질수 있는데 그것은 대몽골제국시대(1206-1260)와 위안제국 (1260-1308) 시대이다. 칭기스칸은 한국과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관계를 확립하고 연맹을 맺게 되었다. 그래서 이 두 나라의 연합군대는 한국을 공격하였었던 키단(Kidan) 국가를 1220년도에 격퇴시켰다.

위에서 언급된 연맹동의서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들이 가까운 동지사이로 영원히 계속되기를, 그리고 우리들의 아이들이 이 날을 잊지 않게 되기를’. 이 동의서는 이 두 국가들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기본문서였다. 이 동의서에 의하면 한국의 임금은 몽골제국으로 매년 15명의 특사를 보내는 것이 의무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징기스칸의 죽음 후 우게다이 칸(Ugedei Khan) 시대에 이 두 나라의 관계는 소원하여졌고 대 몽골제국시대에 행해진 6번의 한국 공격 중에서 우게다이 칸 시대에 3번이나 발생하였다.
대몽골제국의 몰락 후에 쿠비라이 칸은(Khubilai Khan)은 중국 중앙에 위안제국을 창건하였고 한국과 다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펴게 되었다.
이것은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한국을 경제적, 영토적, 인력면에서 이용하기 위한 쿠비라이 칸의 전략적 정책과 연관되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하여 쿠비라이 칸은 한국의 태자에게 그의 딸을 주어 정략결혼하게 하였다. 쿠비라이 칸 시대에 몽골은 제주도라 부르는 한국의 영토를 바다폭풍 때문에 성공할 수 없었던 일본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거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제주도는 쿠비라이 칸에 의해 1273년 이후로 20년간 군대전략거점 지역으로 사용되어지게 되었다. 이 사실은 몽골과 한국의 역사적인 관계의 상징으로 남는다. 제주도는 오랫동안 몽골의 고위 군인장병들과 그들의 가족, 친척들이 거주함으로서 군대주둔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몽골의 말들도 전쟁용으로 사육되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제주도에 있는 작은 조랑말들의 근원은 몽골의 말들로 확인되었다. 쿠빌라이 칸의 몽골인들과 한국인들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하기 위한 정략결혼정책은 200,000 명도 넘는 여자들이 위안에서 한국으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나라는 서로를 ‘신부신랑 나라’ 또는 ‘ 어머니 나라’란 호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고학과 인류학의 관점에서 몽골과 한국인들은 같은 핏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본다. 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증거 중 하나는 몽골인 신생아들에게서 발견되는 파란 몽골반점이 몽골과 한국의 신생아들에게서 90퍼센트나 발견된다는 점이다. 몽골인들과 한국인들은 외모 면에서도 굉장히 비슷하다.
몽골인들과 한국인들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민족학상 관점에서 이 두 나라는 전통적인 생활방식, 언어, 문화적인 유산 면에서 너무도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연구자, 김기소니의 자료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200개도 넘는 몽골단어를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자, 라그바(B. Lhagva)는 13-14세기 사이에 살고 있었던 몽골인들과 한국인들은 많은 유사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고대 때부터 이미 문화적/ 통상적/ 경제적 연맹이 몽골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에서 확립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 시대에 한국인들은 몽골의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몽골어 선생들을 초빙하였었고 먹거리들과 교환물품들과 함께 교과서들과 번역서들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두번째 단계(1910-1930, 1945-1990)

1910-1930년도 사이에 몽골과 한국의 관계에 대한 증거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다. 3,000명도 넘는 한국 사람들이 몽골에서 농장을 하기 위해 몽골정부에게 몽골시민권을 의뢰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또 아이들을 기아선상에서 구출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몽골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었고 몽골정부는 1000얀찬 1500주스(몽골의 화폐)를 원조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인들은 몽골의 보그드 칸(Bogd Khan) 에게 편지를 하여 그들의 대표사절들을 몽골에 보내겠다고 제의하였으며 후에 그들은 그 시대에 몽골의 수도였었던 니스렐 쿠리( Niislel Khuree)를 방문하게 되었다.
1948년 10월에 몽골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확립하였으며 이 두나라의 관계는 프로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리에 기점을 두고 발전하게 되었다. 1945-1990년도에 MPR과 북한의 우호/협력관계는 역사상에서 몽골과 한국이 동맹관계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 전쟁 당시 어려운 시기에 MPR 은 북한에게 경제적 원조뿐만 아니라 많은 음식물과 말들, 의류등을 제공하였고 1952년도엔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고아가 되었었던 4-7세의 아동들, 197명을 보호하였었다.
몽골인들은 그 고아들을 유치원과 학교에서 교육시켰었고 1959년도에 그들의 모국인 한국으로 되돌아가게 해주었다. 1950-1953년도 한국전쟁 동안에 몽골정부는 북한에게 조건 없는 원조를 몇 번 제공하였었는데, 그것은 43,924마리의 말, 9,094명의 소, 79,965마리의 양들과 염소들, 따뜻한 의류와 17,462개의 모피 가운들, 10,000개의 가죽부츠, 4,500개의 두꺼운 외투들, 50,000 카레 양피, 2,248,7톤의 육류, 30톤의 버터, 65톤의 지방질, 1,209,7톤의 소맥, 26,5000 리터의 알코올 등이었다.

전쟁 후 몇 년 동안도 이 두 나라의 협력관계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면과 교육면에서도 발전하게 되었다. 이 두 나라의 관계와 협동은 문화면에서 또 인도적인 측면에서도 오랫동안 꾸준히 발전하게 되었는데 몇몇 공공단체들은 그들의 대표자들을 서로에게 보내는 교류도 있었다. 이 교류는 이 두 나라사이에서 문화면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데 유용하였고 결과적으로 이 두 나라가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들은 북한과 전통적이고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여 왔었다. 몽골은 북한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맨 처음 국가들 중 하나이다.

이 두 정부는 대사관들을 만들었고 많은 학생들과 문화방면의 인력, 스포츠인들을 정규적으로 교환하였었다. 그래서 이 두 나라의 교류는 오랜 시간동안 여러 방면에서 결과의 열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도 말기부터 1990년도 초기사이에 이 두 나라의 협력관계는 희미하게 되었고 거의 끊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부는 1990년도에 몽골정부의 시도로 인해 몽골과 한국간에 외교관계가 성립되자 이에 대해 실망을 표현하였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북한에게 이 이슈의 현실을 애써 설명하려는 몽골정부의 노력의 결과로 이 상황은 부드럽게 되었고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 후에 북한정부는 우라안바타(Ulaanbaatar)에 있었던 대사관을 경제적인 문제로 패쇄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위에 언급한 이슈와 관계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1990년도 중반에 협력 관계를 향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런 시기에 몽골의 수상, 외무부 장관, 외무부 사무장들이 북한을 방문하였었고 북한의 외무부 차관이 몽골을 방문하였었다. 양국의 외교성립 50주년 기념행사기간에 국회와 정당들의 대표자들이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정규적인 회의개최는 이 두 국가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관계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또 북동 아시아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유익하였다. 몽골은 북한과 이미 확립되었었던 전통적인 우호관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북한이 역시 비슷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은 정말 잘된 일이다. 북한 의 외무부 차관이 울라안바타(Ulaanbaatar)에 다시 대사관을 열겠다고 결정하고 몽골을 방문한 것은 이런 시도의 명백한 증거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몽골정부가 북한과 한국정부가 그들의 관계를 정상화 하고 통합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두 나라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각기 다른 국가들이 우호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하고 그 관계가 강건하게 하는 것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단계( 1990년 이후)

1990년의 초기에 사회주의 시스템의 몰락과 전쟁의 결말로 세계는 두 방면으로 나누어졌고 몽골은 다방면 개방정책을 추구함으로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몽골과 한국의 관계에서 새로운 단계의 초기기점으로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1990년도에 몽골정부는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서 한국과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창설하고 확립하였던 사실에 대해 북한의 실망을 무시하기로 하였다.

한국-몽골 두 나라의 외교관계 확립의 실제적인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몽골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 다방면 개방 외교정책을 펼침으로서 두 국가의 우호관계를 기반으로 많은 나라들과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연결끈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었고 국제사회에서 정치/경제/문화/과학/인권분야에서 새로운 현재의 상황에 조화를 이루는 협력/합리의 관계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두 번째로 몽골은 국제 마켙 시스템에서 적응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국의 경제적 도움과 투자를 유치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로 몽골은 특정한 상황들과 부합하는 분야에서 한국을 아시아의 선진국의 하나로서 경제발전 과정에서의 풍부한 경험들과 고도의 기술과 테크놀리지를 소개하게 될 것이다.
네 번째로 몽골과 한국에서 새로운 경제/무역마켓이 형성될 것이다.
다섯 번째로 북동 아시아 지역을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유역 국가들의 적극적인 정치적/경제적 참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이 두 나라의 고위 대표자들이 공식적인 방문을 합의하였고 몽골의 대통령인 오키배트 (P. Ochirbat)가 1991년도에, 바가반디( N. Bagabandi)가 2001년도에 한국을 방문하였다.

1999년도에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2006년도에 노무현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였었고, 몽골 의회의 대변인 곤키그도리( R. Gonchigdorj)가 2000년도에, 남도리가( Ts. Nyamdorj) 2006년도에 한국을 방문하였었다. 한국의 국회의장인 박관영이 1999년도에, 팬 구안(Pan Guan) 이 2003년도에, 몽골의 수상인 아마자갈( R. Amarjargal)이 1999년도에, 엔크바야(N. Enkhbayar)가 2003년도에 한국을 방문하였고 한국의 국회의장이었던 이한동이 2000년에 몽골을 방문하였었고 몽골의 외무부장관인 곰보루렌( Ts. Gomboruren)이 1991년도에, 문크-오질( Ts. Munkh-0rgil)이 2005년도에 한국을 방문하였고 외무부 장관이자 외무통상부 장관이었던 박정서가 1988에 몽골을 방문하였었다.

첫 번째 고위관리 공식방문은 이 두 나라가 외교관계를 확립한 후에 한국 대통령의 초대로 1991년도 몽골의 대통령이었던 오키배트( P. Ochirbat) 의 한국방문이 처음이었다. 이 방문기간 동안에 두 대통령은 국제연합헌장( UN charter)에 준하여 서로의 협력관계를 확대시켜 21세기를 대비하기를 원하는 서로의 희망을 확인하게 되었다.

두 국가정상들은 문화/ 경제/정치면에서도 서로의 협력관계가 발전되어 확장 된것에 대해 만족을 표시하였었다. 한국의 대통령은 몽골이 몽골의 변환을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로 경제사회에서의 몽골의 성공적인 적응에 대해 특별한 감사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이 방문 후에 만들어진 공동성명은 이 두 국가들의 우호/협력관계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첫 번째 중요한 기본문서가 되었다.

1999년도에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였을 때 두 대통령들은 1991년도에 만들어진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이 두 나라가 정치적/경제적면에서 성공적인 우호/협력관계가 형성된 사실에 대해 만족을 표시하였다. 그들은 또한 21세기에 대비하여 서로가 좋은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에 대해 동의하게 되었다. 몽골대통령인 남바린 엔크바야( Nambaryn Enkhbayar)의 초대로 이루어진 2006년도 5월 7-10 한국대통령 노무현의 몽골방문은 800주년 대몽골제국 확립의 기념행사에서 첫 번째 국가정상 방문이었는데 이것은 역사상에서 이 두 나라사이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행사이었다.
이 방문일정동안에 두 정상들은 상호보완/협력관계에 대한 기본원리에 입각하여 두 나라의 관계가 빠른 향상을 보인 것에 대해 감사와 만족을 표하였었고 더욱 장차 더욱 진전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을 결정하였었다.

특히 예전에 동의하였던 상호협력의 원리를 ‘좋은 이웃,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파트너쉽’ 으로 변환하기로 동의하였고 이것은 국제사회에서의 협력과 함께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문화와 인권분야 등 여러 방면에서의 연구와 성과를 나누는 파트너쉽 관계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 두 대통령들은 두 국가들 사이에서 관계를 향상시키고 견고하게 하는 것이 두 나라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지역들의 풍요와 발전을 강화하고 안정시키는데 기여를 하고 북동 아시아에 위치하는 이웃국가로서 ‘좋은 이웃친구와 협력 파트너쉽’의 원리로 정치면/경제면/ 문화면에서 그들의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두 정상은 파트너로서 교역과 경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무역과 투자를 증가함으로서 더 진전된 협력관계를 만들 것을 지지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 두 정상은 그들의 협력관계를 확대시키기 위해 몽골의 채광산업에서 몽골의 자원과 한국의 투자와 기술을 합하기로 결정하였고 농업과 기술 인력의 양성기관에서처럼 기반공사들의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에너지와 건설분야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동의하였다. ‘경제적 협력기금’에서 연화차관을 얻기를 희망하였던 몽골쪽의 희망으로 한국은 몽골에게 연화차관(소프트론- 국제통화인 달러를 빌려주고 현지통화로 상환 받는 차관)을 제공하기로 하였는데 그것은 우라안바타의 자동 도로를 모니터링 할수 있는 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 모니터링, 정보 네트워크를 위한 프로젝트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 두 정상은 사막화되고 모래 크리프(영구적으로 변형된) 땅과 싸우는 일에 한결같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무섭게 전염성 강한 질병들과 조류독감을 예방하기 위하여 건강과 금계분야에서 함께 일하기로 동의하였다. 몽골과 한국의 두드러지는 문화적/역사적 연결끈을 강조하였던 두 정상들은 이 사실이 이 두 나라의 발전가능성에 중요한 기초가 된다고 하였고 교육/문화, 스포츠 분야에서 협력의 확대에 대해 동의하였고 고대의 역사연구와 고고학적 유물탐사를 함께 하고 두 나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단체들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몽골쪽의 희망으로 한국정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몽골학생들의 수를 늘리고 석사들, 특히 정보와 엔지니어링과 같은 공학도들을 위해 장학금제도를 증가시키는 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두 국가정상들은 농업단체들, 공공단체와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의 교류와 직접적인 정보교환을 연장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었다. 또한 두 대통령은 몽골과 한국이 ‘좋은 이웃, 우정과 파트너쉽’을 공유하는 나라로서 북동 아시아 지역에서의 풍요와 발전을 위해 쌍방의 협력을 계속 유지할 것을 다시 확정하였다.

외무부 장관들의 방문기간 동안에 두 장관들은 두 국가가 모든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확대발전시킨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현하였었고 국제적이고 지역적인 이슈에서 상호 합리적인 협력과 공동 작업에 대해 의견들을 교환하였었다. 몽골의 외무장관인 엔크볼드( Enkhbold)가 이 이슈에 대해 세금부과에서 한발 양보한 선에서 한국정부와 동의하였는데 이것은 몽골의 수출을 늘리고 한국의 발전기금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정부에게 한국정부에 대한 몽골정부의 감사와 만족을 표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몽골시민들에 대한 우정적인 태도와 특별히 신경써준 것에 대해서였고 그들의 생활환경과 작업환경을 향상시키려는 배려에 대한 것이었다. 두 장관들은 내각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는 것을 확대시키는 것과, 또 자문적인 만남들을 규칙화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였었다. 두 장관들은 몽골과 한국, 두 정부들에 의해 확립된 ‘ 사회복지에 대한 동의’‘에 효력을 주는 ’당국관리들의 여론 동의’에 싸인 하였었다.

두 나라의 국회들 사이에 협력은 더 확대되고 있다. 몽골- 한국의 의회그룹은 1990년도에, 한국-몽골 의회그룹은 1992년에 창설되었다. 몽골과 한국 사이에서 외교관계가 확립된 이후로 이 두 나라사이에 많은 문서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20개 이상의 동의서와 두 내각 사이에서, 또 도시들과 단체들의 협력을 위해 10개 이상의 포로토콜(컴퓨터상에서 서로의 대화에 필요한 통신규약)이 확립되게 되었다. 이 문서(동의서)들을 바탕으로 두 나라들 사이에서 협력관계는 매년 더 성공적으로 발전되고 있다. 남한은 몽골의 민주주의 확립과정에서 또 자유교역시장에서 경제적 변환과정에서 새로운 도전들을 성공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1990-2005년도 이후로 남한은 54,000,000 달러를 연화차관으로 제공하였고 15,000,000달러를 무상원조 하는 것에 대해 합의하였다. 한국은 몽골에서 가장 막대한 투자가이며 두 번째로 큰 교역파트너다. 쌍무적 교역은 1990년도에 500,000 달러를 기록하였는데 2005년도에 126,000,000 달러로 증가되었다. 또 65,100,000달러의 수출과 61,200,000달러의 수입을 기록하였다. 몽골의 수출은 약간 도금되었거나 완전히 도금된 금과 세공된 구리, 광석등을 한국에 수출하였고 맥주, 차량, 도로건설을 위한 기구들과 공사, 음식과 소비재들을 한국으로부터 수입하였다. 한국은 이제 우리의 원조/증여 국가다. 한국의 경제적/재정적 도움은 증가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몽골정부에게 1995년도 이후로 연화차관을 주고 있고 1992년 이후로 원조를 해 주고 있다.

1991년도 초기에 한국은 몽골에서 몇몇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었고 우리들에게 경제발전을 위한 조사연구의 방법을 가르쳐 주고 기구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감사금/퇴직금은 자문위원들을 파견 보내는 이유로 총 15,000,000달러가 지급되었다. 120,000 달러 원조에서 일부는 몽골에서 2001년도에 있었던 자연재해를 극복하는데 쓰도록 증여되었다. 몽골정부의 희망으로 한국정부는 조류독감과 싸우는데 몰두하고 있었던 연구자들에게 이 원조금이 지급되었다. 7.600,000 달러 연화차관은 이 기간 동안에 일회용 주사기를 만드는 산업에, 다란자드가드 지방에서 석탄 동력 공장을 만들고 또 정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세트와 콰이어와 쎄인스핸드 지방 사이에서 자동도로를 만드는 일을 위해 증여되었다.
더욱이 한국기업들은 국제기관들과 증여 나라들의 대출로 운영되는 포로젝트 의 실행에 참여하였다. 예를 들면; 삼원이란 한국의 기업은 아시아 발전기급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진행되었던 자동 도로 프로젝트에서 총 집행자 역할을 하였다. 이 회사는 우라안배타와 달칸와 아란탄부라그 사이에서 자동도로를 건설하였다. 몽골과 한국 사이에서 경제적 협력은 개별적인 투자가들을 유치하고 공동 벤처사업을 확립/추진한다는 면에서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몽골에서 외국 투자 부문에서 세 번째다. 1994년 이후로 몽골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운영되고 있다. 몽골은 916개의 한국기업체들을 등록시켰는데 투자 예상금액은 106.400,000 달러정도가 된다. 한국의 투자가들은 주로 무역/ 서비스업/ 캐이터링/ 채광산업/ 정보/커뮤니케이션 테크놀리지/ 운송사업/ 건설과 관광업에서 투자하고 있다. 두 나라는 1999년도에 에너지와 광물채광부문에서 연합 통제 위원회를 확립시켜 놓았는데 이것은 지리적인 탐험 프로젝트와 합동 조사 작업을 지휘하는 과정에서 컨트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2002년 현재, 9개의 한국기업들이 등록하였고 지리학적 탐사, 채광탐사, 다른부문과의 비교에서 최고의 적출가등을 산출하는 일들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다른 말로 말해서 이 부문에서 투자금액은 12.900.000 달러인데 한국의 총투자금액의 20퍼센트에 달하는 액수다. 2005년도에 215건의 한국투자가 확립되었다. 총 투자액은 19,100,000 (미국)달러였다. 이 투자는 국내외 교역, 음식, 식당과 술집의 서비스, 자동차, 유지관리, 전기제품들, 기술적인 서비스, 화학약품들, 사슴의 녹용을 사용하는 가게들과 공업/제조업, 운송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다른 사회 분야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몽골경제 분야에서의 한국투자의 현재상황은 다음과 같다.
경공업분야에서 25개의 회사가 6.700.000달러를 투자하였는데 이것은 모든 부문의 총투자에서 20퍼센트에 달하는 것이다. 경공업분야에서의 투자에서 한국은 다섯 손가락에 드는 투자국이다. 이 부문에서 대부분의 투자는 제봉과 편물공장에 투자되었다. 교역과 음식업에서의 투자는 다른 부문들과의 비교에서 비교적 작은 편이다. 교역부문에서 투자된 금액은 ‘코즈모토바코(Cosmotobaco)란 회사가 8.200.000 달러, 로테나 잉크(Rotena Ink)란 회사가 6,700,000 달러, 스카이 트레이딩(Skytrading)이란 회사가 3.600.000 달러, 레인보우 클럽이 2.000.000 달러정도다. 그러나 ‘서울 그룹’은 음식 서비스업부문에서 1.100.000을 투자하였다. 운송부문에서 28개의 회사가 5.600.000 달러란 액수의 돈을 투자하였는데 그들은 흑자를 보고 있다. 1999년도에 Ulaanbaatar( 울라안바타) 에 ‘시티 택시(City taxi)란 회사가 설립되었는데 택시 서비스에 2.000.000달러가 투자되었다.

통신부문에서 5.300.000달러가 투자되었는데 1999년도의 총 투자액에서 7.4퍼센트가 되고 스카이탈(Skytal) 이란 회사는 삐삐 통신서비스와 휴대전화에서 3.000.000달러를 투자하였다. 또한 2.000.000달러란 돈이 1995년도에 몽골리안 통신회사에 투자되었다. 빌딩부문에서 2001년도에 한국의 ‘M Kae J' 란 회사가 콘크리트 합성제작과 조립식 빌딩 부문에 1.700.000달러를 투자하였다. 우리 두 나라의 근본 목적은 상호보완의 상태로 경제적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제 관점에서는- 몽골의 광대한 영토의 경제적 사용방법은 펼쳐진 천연자원과 동물의 가공되지 않은 표피/털을 한 손에, 한국의 하이 테크놀로지와 투자능력과 공업부문에서의 풍부한 경험들과 서비스들을 몽골 문화속으로 도입시키는 것을 다른 한 손에 있게 하는 것이다.

생활환경을 향상시키는 것은 가난을 줄이고 실직을 감소시킴으로서 사람들의 수입을 증가시키고 경제적 성장을 유지하여 몽골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적 효율을 높이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몽골은 최근 한국으로 노동자들을 파견하였다. 이것은 이제 매우 효율적이다. 이것은 이미 언급된 필요조건의 한 예다. 몽골과 한국정부는 이 문제에 몰두하기로 합의하였고 공식적인 합의서도 체결하였다. 이것의 결과로 한국엔 21850명의 몽골인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 중 48퍼센트가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고 52퍼센트의 사람들은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다. 이것은 몽골의 경제에 투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한국의 공장들에게 싼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서 협력의 한 방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양쪽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몽골과 한국의 협력관계와 경제적 효율성의 용이성에 초점을 맞추는데 있어 많은 국면들과 관점이 있다. 두 나라사이에서 펼쳐진 경제적 자원을 발견하는 것은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면 곡식재배를 위하여 코이발산 마이매그와 같은 영토를 경작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또한 매이메그에 동물의 가죽과 모피를 얻을 수 있는 무두질 공장을 만들어 놓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자유통상지역이나 공장단지들을 관광지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며 동물농장이나 세계시장에 내 놓을 수 있는 상품을 제조해내는 농장들에서 한국의 테크놀로지를 소개/적용시킬 수도 있으며 몽골의 약용식물들을 사용하여 새로운 의약품을 만들 수도 있으며 현대의 한국인들이 교역과 공공서비스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들도 이런 경제적 자원들을 발견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채광산업에 눈을 돌리자면, 동물농장과 한국에서의 기반공사는 양쪽 나라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경우에 우리의 협력관계의 효율성은 유익하다는 것 이상으로 보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나라의 성공적인 경제적 협력의 결과로 ‘ 몽골-한국 경제적 동맹회’ 는 1994년에 서울에 창설되었다. 몽골과 한국의 협력관계에서 교육, 문화, 과학방면에서의 정보와 경험들을 서로 교환하는 것은 이 두 나라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저는 이 두 나라가 고대 시대 때부터 여러 방면에서 문화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저는 최근 몇 년간 행적직원으로서 또 문화인으로 학자로 교수로 학생으로 또 연구원으로 우리 두 나라의 학문적 기관들과 교육기관들내에서 서로의 문화를 교환하여왔다.
그들은 국제적 토론회와 조사와 연구를 위한 공동 원정 탐험여행들을 이끌었다. 많은 종류의 협력이 있다. 1994,1996,1998,2001,2005년도에 몽골의 교육장관과 차관이었었던 사람들이 한국을, 또 1993,1995,2002,2005 년도에 한국의 교육부장관과 차관을 역임하였던 사람들이 몽골을 방문하고 있다. 양 정부는 교육, 문화 인본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하여왔으며 높은 교육기관들은 서로 다 연결되어 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몽골의 학생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 양 정부는 공동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2년마다 회담을 개최할 문화 협력 정부 위원회를 설립했다. 1992년 이래로 한국과 몽골의 교육부는 문화프로그램을 실시해 왔다.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은 몽골의 일반 학교, 대학, 연구소 및 교육원에 있는 131명의 학생들을 위한 2주간의 교육 프로그램을 조직했다. 2005년 한국은 각 학교에 컴퓨터를 한 대씩 보급하기 위해 몽골에 있는 모든 종류의 학교에 2,000대의 컴퓨터를 증정했다.
현재, 480명의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의 “빙게레(Bingere)" 단체는 매년 농업과 식품공학을 전공하는 34명의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진(Hanjin)" 그룹의 21세기 펀드는 1997년 이래 5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2005년 “현대자동차”사도 몽골의 교육, 문화 및 과학부에 장학금 기금으로 100,000달러를 기부했다. 공립 및 사립 대학교와 연구소 간의 협력이 증대되고 있다. 몽골에는 한국의 투자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3개의 종합대학과 3개의 전문대학이 있다. 한국학 연구원 원장이 1992년 몽골을 방문했다. 몽골 과학원는 1999년 한국 과학 기술원과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2001년 한국의 과학공학재단과의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2001년 바가반디(N. Bagabandi) 몽골 대통령이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때 지식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지식 파트너십 프로그램이 형성되었고, 실행되었다. 몽골 과학원 원장이 1994~1998년 한국을 방문했다. 이러한 상호 방문은 양국의 학문 기관들 간의 학문적 협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방문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고대 문화, 인종 및 고고학적 발견에 대한 연구를 하며 연구 서적의 번역 및 출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대학이 몽골 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한 몽골 교수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몽골의 대학도 한국 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 교수도 몽골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 및 몽골 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그룹은 인종 및 고고학 연구를 진행한다. 30명의 학자로 구성된 몽골 학자 연합이 1990년 설립되었다. 이 연합은 울란바토르와 서울에서 여러 차례 국제회의를 조직한 바 있으며 이 회의들을 통해 몽골 연구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다뤘다. 이 연합은 “몽골 연구”라는 저널을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한국의 방콕 대학은 몽골 연구 수업을 개설했고 약 80여명의 학생들이 몽골 연구의 번역자로서, 연구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몽골과 한국 간 문화를 다루는 문화 공동 위원회가 2001년 설립되었다. 이 위원회의 프로그램에 따라 몽골의 문화 대표단은 한국에서 조직된 다양한 전시회 및 예술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양 국의 문화 기간이 2001년 서울과 울란바토르에서 각각 정해졌다. 몽골의 문화 정보 센터는 남잔구(Namjangu) 마을과 서울의 광구(Guangu)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 문화 정보 센터는 울란바토르에 있다.
양국 간에 직접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지방 정부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울란바토르가 1995년 서울과, 1999년에는 남잔주와 직접 협력 관계를 체결했다. 중앙 아이마그(aimag)지방은 2001년 관왕 지방과 직접 협력 관계를 체결했으며 이러한 협력관계는 성공적이었다. 울란바토르의 7개 지구는 서울의 구와 직접 협력 관계를 맺었다. 우벅항가이(Uvurkhangai), 올혼(Orhon), 고비 섬버 아이마그 (Gobi-sumber aimag) 및 중앙 아이마그 지방의 주운모드 마을이 한국의 마을과 직접 협력 관계를 맺었다.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 울란바토르의 날 과 서울의 날 10주년을 맞아 양 국의 수도가 각각 2005년 활동을 조직했다.

2000년 서울 거리 (Seoul Street)가 울란바토르에 조성되었다. 중앙과 지방 정부 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NGO들은 자선 지원, 예술 단체의 나무 심기 행사 교류 및 기타 활동을 통해 양국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양국을 서로 오가는 관광객의 수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동북아지역 안보와 협력의 틀 내에서의 몽골과 한국의 관계 고찰


국제적, 지역적 문제에 관한 대화와 국제 포럼에서의 상호간의 지지를 위한 한국과의 협력이 성공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양 국은 인권 존중, 민주주의,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및 국제 테러리즘 근절이라는 공통의 가치에 입각하여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세계 모든 개발의 일반적인 경향은 지역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지역 안보를 확고히 하고,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및 인문 분야에서의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관계로 발전시키고자 함이다. 이것이 집중 관심 사항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의 상호 의존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호 의존성은 각 국의 이해관계와 자원, 다양한 관계를 통합하여 지속가능한 경제의 효율적 발전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그러한 과정이 매우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남북한 및 몽골은 직접적으로 이 지역에 속해 있다. 미국과 캐나다도 태평양 지역에 위치해 있어 이 지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불린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들이 이 지경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이 지역의 독특한 특성이다. 이 지역 국가들의 인구, 국토 크기, 개발 정도, 정치 구조, 지리적 위치, 천연자원, 문화 및 관습과 생활 방식이 매우 다르다는 점도 이 지역의 구별되는 특징이다.
그 중 현재 상황에서의 몽골과 한국의 안보는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구별되는 특징으로 인해 통합보다는 분열되기 쉬우며,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동북아에서 한반도 안보는 몽골의 국가 안보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경제 정치적으로 강대한 국가가 될 수 있는 통일 한국을 건설하는 것은 몽골의 국가 이익에도 부합한다.
그 이유는 만약 한국과 북한이 관계 정상화를 이룬다면, 그는 바로 과학 기술에 기초한 경제 개발을 촉진하고 통일 한국의 설립에 기여하게 된다. 이는 몽골의 국가 안보 및 효율적인 경제 개발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몽골은 대단히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고 천연자원 및 동물 자원이 풍부하다. 하지만 인구가 흩어져 있고, 내륙지방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제 개발이 부진한 상태이다. 따라서 동북아 지역 안보와 협력의 틀 안에서 한국과 몽골의 국가 연합은 양국 협력 관계에 중요한 부분이다.
몽골은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루어낸 아시아의 호랑이 중 하나인 한국과 동북아 차원에서 다양한 협력을 증진하는 데 관심이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것이 바로 몽골 외교 정책의 우선과제 중 하나라고 본다. 국제무대에서의 새로운 환경 하에서 동북아 지역의 다양한 경제 개발 수준을 지닌 국가들은 무역, 경제, 및 투자 부문에서 활발한 협력 증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 국가 간의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 관계의 결과로서 이 지역은 다른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통합의 과정이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무역과 경제를 담당할 지역 차원의 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직의 초기 징조가 바로 “투멘골 (Tumen Gol)"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투멘골 지역의 개발 협력과 정부 차원의 협력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 강은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초인바이 호수 (Choinbai Lake)에서 시작해서 러시아 연방 국가의 국경 지역과 중화인민공화국 및 북한 지역으로 흐르고 있다.
“투멘골”은 본류에서 약 100개 이상의 강과 합류되고 동해로 흘러들어간다. 이 “투멘골”지역은 동북아시아 본토 및 해양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중국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 러시아와 몽골의 천연 자원, 일본과 한국의 생산 능력과 첨단 기술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무역 및 경제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투멘골”지역을 동북아 무역 및 경제의 중심지로 만들자는 제안은 1990년 7월 중국 창청에서 개최된 동북아 경제 문제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을 때 제기되었다. 이번에는 1991년 7월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된 UN 지역 개발 회의에서 제시된 “투멘골” 지역의 개발 프로젝트에 중국, 북한, 몽골 및 한국이 찬성했다. 이들 국가들은 유엔 개발 프로그램이 이 지역 개발을 위한 주요 연구를 후원하고 향후 20년 동안 “투멘골”지역을 세계로 향하는 연결 통로로 만들 뿐만 아니라 무역 및 경제의 중심지로 만들 지역 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한 인프라를 갖추도록 요청했다.
중국, 북한, 몽골 및 러시아 연방은 국제적 프로그램인 “투멘골” 프로젝트의 정회원으로 참가한다. 일본, 캐나다 및 핀란드는 옵서버로 참가한다. “투멘골” 프로젝트의 목표는 먼저 이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이 지역의 수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몽골의 경우, 이 프로그램의 결실로 인해 일본과 황해로 진출할 수 있다. 학자들과 연구자들에 따르면 “투멘버스” 프로젝트는 21세기 동안 약 20,30년에 걸쳐 진행 될 수 있으며 동북아 지역 발전을 촉진한다고 한다. “투멘버스” 에 대한 투자가 고무되었고 그 결과로 1995-1998년 몽골을 포함한 이 지역의 다른 국가들도 투자를 하게 되었다. 이 틀 안에서 몽골은 2억 5백 3십만 달러를 받았다. “투멘버스”는 고대의 역사적 실크로드의 동부 항구였다. 현재는 자동차 도로이자 몽골-라쉬안트 (Rashaant)-초이발산(Choibalsan)-울란바토르
(Ulaanbaatar)를 잇는 철도망이 놓여 있다. 이 곳은 이 수송경로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몽골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 프로그램에 몽골의 참여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활발한 협력이 증진될 수 있으며 보다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해양으로의 접근이 용이해 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동부 몽골이 “투멘버스”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인접국과의 커뮤니케이션, 자동차 도로, 철도 및 항공로를 개발하고 경제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동부 몽골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형석, 섬광석, 석유, 납, 텅스텐 금, 몰리브덴, 우라늄 및 식염과 같은 자원이 풍부한 켄테이(Khentei), 수-바토르(Sukh-Bator), 및 도나드 (Dornod) 지방이 아시아의 시장과 연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역의 규모는 289.4 평방킬로미터이며 인구는 213,800명에 3백만 마리의 동물이 있다. 농업, 석유, 화학, 광산 및 관광 개발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지역에서 “투멘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이 지역 국가들은 반드시 각 국의 경제 개발 이익을 고려해야 하고 상호 이득이 되는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 예를 들면, 몽골 및 한국은 “투멘골”프로젝트의 틀 안에서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플랜테이션 농장을 임대할 수 있다.

결론

결론적으로 필자는 수세기 동안의 역사적 전통이 있는 양국 간의 우호적인 파트너십 형성과 협력 관계에 밝은 미래를 전망하며 지난 15년 동안 성공적으로 이를 발전시켜 왔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만큼 잘 조직된 기관들과 실제적인 사실들이 있다.

1. 양국 간의 관계 및 협력은 고대 역사적 전통의 확고한 기반에 근거하며 양국의 이익에 반하는 영토적, 정치적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 개발을 효율적으로 지속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1999년 몽골을 방문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경제 협력에서의 그 같은 뛰어난 성공을 거둔 주요 이유가 바로 양국 간의 깊고 친밀한 역사적, 정신적 관계라고 강조했으며 1218년 칭기즈칸 시대의 맹세를 상기시켰다. “ 나로 하여금 영원한 형제가 되게 하라. 그리고 우리 후손들이 이 날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라” 따라서 몽골과 한국간의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 증진은 몽골의 다각적이고 개방된 외교 정책의 우선과제 중 하나이다.

2. 양 국은 국익에 부합하는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 개발에 관심이 있다. 또한 추가적인 개발 전망과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특히 한편으로는 몽골의 천연 자원 및 동물 자원이 풍부한 광대한 영토와 한국의 첨단 기술과 풍부한 개발 경험이 어우러져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 있어 양국의 협력 상황을 상세한 분석과 협력으로 달성되고 있지 않은 분야를 찾아냄으로써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양국 간에 상호 이익이 되는 개발 파트너십 형성은 다음 세 가지 방향에서 가능하다.
첫째, 무역 및 경제협력이다. 이 분야는 현 단계에서 양국 관계 및 협력의 법적 근거 및 무역, 경제 협력의 향후 전망, 한국의 투자 및 정보통신, 광산 도로 및 수송, 농업, 에너지, 관광 등과 몽골의 한국으로 인력 수출과 같은 분야에서의 효율적 협력 가능성과 같은 분야를 다루는 일이다.
둘째, 개발 협력이다. 이 분야는 한국의 개발 경험과 같은 협력 분야를 다룰 것이다. 이는 몽골의 경제 개발 모델을 만드는데 고려될 것이다. 경제 지원 및 한국의 차관, 한국의 중소기업의 개발 경험 활용 및 다국적 기업의 경영 마케팅 정책 및 지식 파트너십과 같은 협력이 다루어질 것이다.

셋째, 지역적, 국제적 차원의 협력이다. 이 방향의 프레임은 다음과 같은 협력 분야를 다룰 것이다.
- 몽골과 한국간의 경제협력.
- 투만 골(Tumen Gol) 프로젝트, 석유 및 천연가스 송유관 건설, 에너지 수송망, 철도, 도로 네트워크 건설과 같은 국제 프로젝트에서의 협력.
- UN과 UN산하 기관들과의 협력을 증대해 가면서, APEC, ASEM, ASEAN을 통한 동북아시아의 생태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양자 간 및 다자간 협력. 몽골과 한국의 협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면에 주목해야 한다.
- 몽골이 한국 측에 더 좋은 조건의 무역투자 제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동부경제특구를 만들기 위하여 한국과 협력한다.
- 역내 광물자원의 적절한 사용을 위하여 특별 조건을 포함한 제안을 내놓는다.
- 역내에서 새로운 현대기술을 사용하여 농업과 축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협력한다.
- 한국은 몽골을 통해 구소련지역과 중ㆍ동부유럽에 수출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EU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시간을 절약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 몽골에 수출자유지역을 설립하고 인프라와 광업 분야에 투자를 증대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양국이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데 있어 관련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역과 생산의 경제특구로 발전할 수 있는 첨단기술생산 단지를 양국이 공동으로 설립한다. 이러한 공동 노력은 한국 경제기관에게도 더 나은 경제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다. 몽골과 한국간의 FTA 체결도 중요하다. 양국 간의 협력 확대의 가장 주요한 목적은 고위급 회담을 할 때에는 양국의 정상이 합의한 아이디어들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3. 몽골과 한국은 아태지역의 협력의 중심에 있는 동북아지역에 속해있다. 따라서 역내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에 놓여있다. 특히, 몽골과 한국, 북한이 삼자간 합의를 이루고 경제협력을 도모하여, 한국의 투자와 몽골과 북한의 인력을 이용하여 몽골 동부지역에 자연환경과 주택 건설 분야에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할 수 있다.

4. 몽골과 한국은 고대시대부터 문화 및 언어, 관습, 전통, 생활 습관 등을 포함해 민족성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간에 형제자매처럼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대할 수 있다. 양국의 우호협력을 확대 강화하는 대에 이러한 공통점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몽골과 한국의 연방국가 모색은 아직은 생소한 아이디어로서, 양국의 연방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이러한 목적을 위해 양국의 학자들과 조사기관에 의한 더욱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국의 연방국가 실현은 역사적인 결속과 전통, 지리적인 위치, 사회 심리학, 기타 많은 요인들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양국 우호협력의 주요 목적은 현 양국 관계를 심화하고, 모든 분야에서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을 확대하며, 원칙에 기반을 둔 종합적인 파트너십을 강화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