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100년 전 영국·프랑스가 그은 엉터리 국경선이 중동 분쟁의 씨앗
부제
  쿠르드족 독립투표로 본 중동 갈등의 뿌리
일시
  2017.09.30
작성일
  2017-09-30
조회수
  847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100년 전 영국·프랑스가 그은 엉터리 국경선이 중동 분쟁의 씨앗
[중앙일보] 2017.09.30

.지난 25일 이라크의 쿠르드자치정부(KRG) 영역에서 치러진 분리 독립 찬반투표가 77.8%의 투표율에 91.8%의 찬성률로 마감했다. 마수드 바르자니 이라크 KRG 수반은 26일 승리를 선언하고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에게 독립국 수립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라크의 대답은 국경지대에서 터키와 벌인 합동군사훈련이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6일 KRG의 육상 국경·영공 통과 금지를 검토하고 송유관과 교역도 중단할 수 있다고 KRG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분리주의 움직임의 확산을 경계한 조치다. 이라크는 물론 자국 내 쿠르드족이 1430만~2000만이나 되는 터키나 820만~1200만인 이란의 반발로 쿠르드족 국가의 탄생은 험난한 길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와 이란·시리아·터키로 나뉘어 사는 쿠르드족은 국가에 따라 독자 국가 설립에 대한 반응이 각기 다르다. 이란의 쿠르드족은 독립국 이란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는 바람에 별도 민족국가 건설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쿠르드족은 북부와 서북부 국경 지역을 장악하고 자치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민주적이고 남녀 평등적이며 친환경적인 신사회를 구성하는 세속주의 혁신운동인 ‘로하야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쿠르드 지역 분리는 시리아 내전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거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에서 쿠르드족 지역만 별도로 떼어내 이라크의 쿠르드족 지역과 합칠 경우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나긴 대화와 협상, 조정과 담판이 필요한 상황이다.

흔히 쿠르드족을 수천 년간 나라 없이 지낸 희생자로 보는 시각이 일부 있다. 하지만 민족을 지연·언어·혈연 공동체라고 했을 때 유사 이래 단일민족국가를 이뤄 보지 못한 민족은 쿠르드족 말고도 많다. 인구가 쿠르드족보다 많은 민족도 3개나 된다. 인도·스리랑카·말레이시아 등에 거주하는 타밀족은 인구가 7800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민족국가를 이뤄본 적이 없다. 같은 민족이지만 종교가 힌두교·기독교·이슬람교도로 다양하다. 지연·언어·혈연은 물론 종교적으로도 균일한 경우가 적지 않다. 파키스탄에 사는 신드족은 4000만 명에 이르는 인구의 거의 전부가 무슬림이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은 3500만 명 대부분이 기독교도다. 쿠르드족이나 타밀족처럼 여러 나라에 살면서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민족도 적지 않다. 1215만 명으로 추산되는 줄루족은 남아프리카공화국·레소토·짐바브웨·스와질란드에 나뉘어 살고 있다. 1000만 명 정도 되는 발루치족은 무슬림인데 파키스탄·인도·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한다. 따지고 보면 민족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유럽에서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1861년의 이탈리아 통일, 1871년의 독일 통일 등이 이런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쿠르드족의 독립 문제는 이러한 복잡한 역사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쿠르드족 독립투표
. 이와 함께 이라크와 시리아 등 오늘날 중동 국가를 만든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오늘날 중동의 국경선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인 오스만튀르크를 해체하면서 강대국의 국익을 위해 임의로 그은 것이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승전국들은 패전국 해체를 위해 ‘민족자결주의’를 부르짖었다. 1916년 5월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1차 대전 뒤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라크를, 프랑스는 시리아·레바논을 각각 차지하기로 밀약했고 전쟁이 끝나자 밀약대로 오스만령 중동을 분할 점령했다. 하지만 문제는 민족이나 민족국가라는 개념이 중동에선 생소했다는 사실이다. 오스만제국을 해체하고 새 나라들을 세우는 데 민족자결주의를 적용하려고 해도 그 민족이란 게 중동에선 여간 복잡하지 않았다.

특히 아랍어로 이라크라고 불린 메소포타미아의 내부 민족·종교·종파 구성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지역은 고대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멸망 이래 한 차례도 지역 주민이 민족별로 나라를 세운 적이 없다. 하지만 영국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개의치 않고 이 지역의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그리고 쿠르드족을 하나로 묶어 한 나라로 만들었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는 끝없이 반목했지만 영국은 이를 무시했다. 북부 모술의 쿠르드족은 아랍인의 통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영국은 전략물자인 석유가 있다는 이유로 이 지역을 바그다드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게 했다. 당시 바그다드의 상권을 움켜쥔 유대인 공동체, 모술 주변에 모여 살던 네스토리우스파-칼데아교도를 포함한 기독교 공동체는 이슬람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게 됐다.

전체 메소포타미아 주민의 75%는 중앙정부에 복종해본 적이 없는 반독립적인 부족민이었다. 이들은 폭군이 하나 제거되면 또 다른 폭군이 들어서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이유로 중앙정부를 두는 데 반대했다. 영국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는 결국 20세기에 비극적인 현실이 됐다.

특히 문제는 쿠르드족이다. 1920년 세브르 조약에는 쿠르드족이 사는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에 쿠르드 국가를 만든다는 구상이 들어 있었지만 이를 대체한 1923년의 로잔 조약엔 이런 내용이 빠졌다.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유전지대이기 때문에 영국이 통제가 용이하도록 바그다드에 통제권을 넘겨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영국은 서로 반목하는 이들을 하나의 나라로 묶어 이 지역 출신도 아닌 파이살이라는 인물에게 넘겨줬다. 파이살은 아라비아 반도 메카 출신으로 1차 대전 중 오스만을 상대로 봉기를 일으켜 영국을 도운 하심 가문 출신이다. 하심 가문의 압둘라 1세는 1921년 영국의 도움으로 요르단에 하심 왕조를 세워 지금까지 건재하다. 하지만 이라크 하심 왕조는 58년 쿠데타로 무너졌다. 당시 이라크에 들어선 군사 정권의 마지막 ‘폭군’이 사담 후세인이다. 쿠르드족이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이라크에서 뛰쳐나오려 한 것은 2017년이 아니라 이미 1922년부터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라크 쿠르드족 독립투표는 결국 중동 문제의 근원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S BOX] 레바논·시리아 내전의 근원? 프랑스의 ‘한 나라 만들기’ 무리수

프랑스가 점령한 오스만튀르크 옛 영토에서 탄생한 시리아와 레바논도 열강이 급조한 나라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곳을 점령한 프랑스는 1920년 마론파 기독교도가 많은 레바논을 분리해 자치권을 부여한 뒤 1946년 독립시켰다. 프랑스는 기독교도 지역이 협소하자 무슬림 지역을 합쳤다.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갈등은 75~90년 레바논내전으로 이어져 12만~15만의 사망자를 냈다.

프랑스는 1930년 수니파 무슬림이 거주하는 남부 다마스쿠스국과 북부 알레포국, 이슬람 시아파 알라위트계가 모여 사는 서부 해안지대의 알라위트국, 동남부 드루즈교 신자 거주지인 드루즈국을 인위적으로 합쳤다. 모자이크 국가 시리아의 탄생이다. 프랑스는 이 지역의 소수 기독교계나 쿠르드족의 운명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국익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비극의 씨앗을 뿌렸다. 시리아는 2011년 알라위트계 정부군과 수니파 무슬림 사이에 내전이 발발해 올해 7월까지 33만~47만5000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난민은 수백만에 이른다. 21세기 인도주의적 대참사는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의 모자이크 국가 급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

[출처: 중앙일보]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100년 전 영국·프랑스가 그은 엉터리 국경선이 중동 분쟁의 씨앗

* 사진 출처:
사진 #1: 한겨레, 이본영 기자, 2017.09.19, "쿠르드족, 배반의 역사는 시작되나?"
사진 #2: 원문
사진 #3/4: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2017.09.27, "세번째로 독립 설립에 도전하는 쿠르드족"
사진 #4: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7.09.27, "쿠르드 자치정부 압도적 승리했다 vs 주변국은 압박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