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원전에 대한 시비 분석
부제
  한국, 이젠 탈원전 갈림길
일시
  2017.09.28
작성일
  2017-09-30
조회수
  366

   
 
 
 
 
 
 
 
86년 “원자로 못 만들면 태평양에 빠져 죽자” … 한국, 이젠 탈원전 갈림길

기자이승호 기자 [중앙일보] 2017.09.28

원자력은 ‘제3의 불’로 불린다. 우라늄은 화석연료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효율을 자랑한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원자력 발전에 오래 매달린 이유다.

“원자력은 사람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

.한국은 56년 2월 ‘한·미 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3월 문교부 산하에 원자력과를 신설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반면에 같은 해 영국에선 세계 최초의 상업 원전이 운영을 시작했다. 늦었지만 한국은 빠르게 기술 습득에 나선다. 이승만 대통령은 58년 이후 원자력 유학생을 총 273명 보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0달러였다”며 “한 명당 6000달러 이상의 유학비를 지원하며 미국과 유럽에 학생을 보냈다”고 말했다. 같은 해엔 원자력 연구개발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원자력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한국 최초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실험용 원자로인 미국의 ‘트리가 마크-투(Mark-Ⅱ)’도 이해에 도입된다. 미국이 35만 달러를 무상 원조하고 한국 정부가 나머지를 부담해 총 73만 달러에 들여왔다.

박정희 대통령도 이승만 정부의 원자력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71년엔 미국 정부의 차관과 미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지원받아 한국 최초의 상업 원전인 ‘고리 1호기’ 착공에 들어갔다. 총 공사비는 당시 1년 국가 예산의 4분의 1 정도인 3억 달러였다. 73년 1차 석유파동 등으로 공사가 연기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78년 운행에 들어갔다.

80년대는 원전 기술 국산화가 본격화된 시기다. 특히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이 한국과의 기술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전은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영광(한빛) 3, 4호기 건설을 의뢰했다. 86년 CE에 파견된 원자력연구소 연구진 50여 명은 “원자로 개발을 못하면 태평양 바닷물에 빠져 죽자”고 결의하며 미국으로 갔다. 결국 88년 원자로 설계 독자 기술을 익히게 된다. 원자력 발전에 사용되는 핵연료 국산화가 이뤄진 것도 이 시기다. 월성 1호기 등에 쓰인 해외 핵연료 제품의 재료와 특성 등을 분석해 개발을 진행했다. 89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국내 원전에는 국산 핵연료가 공급됐다.

원자로와 연료 자립을 이루자 드디어 2005년 국산 원전이 완성된다. 이른바 한국표준형 원전 ‘OPR(Optimized Power Reactor)1000’이다. 고리 1호기 운행을 시작한 지 27년 만이다. 설비 용량 1000메가와트(㎿)에 설계수명은 40년이나 됐다. 0.2g(리히터 규모 약 6.5)의 지진이 나도 견딜 정도로 설계가 이뤄졌다. 현재 고리·월성·한빛·한울 원전 총 10기가 이 모델이다. 이후 안전성을 강화한 3세대 한국표준형 원전 ‘APR(Advanced Power Reactor)1400’이 개발됐다. OPR1000에서 안전성과 효율성이 더욱 향상됐다. 설비용량이 1400㎿에 설계수명 60년, 내진설계도 0.3g(리히터 규모 약 7.0) 규모다. APR1400은 2009년 해외 진출에도 성공한다. 한국전력이 4기의 원전을 아랍에미리트에 총 186억 달러(약 21조원) 규모로 짓는 계약을 따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다섯 번째의 원전 수출국이 됐다.

APR1400의 뒤를 이을 차세대 모델인 APR+도 2014년 개발됐다. 설비용량을 1500㎿까지 올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교훈 삼아 지진해일 등에 대비하는 안전기술도 강화됐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APR+ 후속으로 4세대 한국표준형원전 ‘IPower(Innovative Power)’도 개발 중이다. IPower는 발전소 전원이 끊기면 중력 등 자연력만으로 원자로의 가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기술을 갖출 예정이다.

한국 원자력 발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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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술로 만든 소형 모듈 원자로인 ‘스마트(SMART)’는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도 됐다. SMART는 증기발생기와 가압기 등 주요 기기가 원자로 안에 다 들어간다. 소형이라 육지에서도 원자로를 물속에 통째로 넣어 사고가 나더라도 주변의 물로 곧바로 열을 식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국가 전체 전력망의 크기가 작아 대형 원전을 짓지 못하는 나라에 수출이 가능하다. 전력 생산 외에 해수 담수화, 지역난방 등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SMART 원자로는 문재인 정부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를 추진하면서 잠수함에 탑재하는 동력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스마트 원자로의 용량을 조금 더 줄이면 잠수함 탑재가 가능하다”며 “실제 잠수함에 기술을 적용하는 건 지금도 1년 6개월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 원전 산업은 지난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원전을 천명하며 새 기로에 섰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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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전 산업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정부가 지난 6월 탈(脫)원전 정책을 선언하면서 APR1400 원자로를 채택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은 일시 중단됐다. 향후 운명은 시민참여단이 판단하는 공론조사 이후 결정된다. 정부는 신규 원전의 건설 계획도 백지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해 당초 경북 영덕에 지어질 천지 1, 2호기는 공사 부지 매입 작업이 중단됐다. 천지 1, 2호기는 새로운 APR+ 모델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IPower의 연구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SMART 원자로는 국내에선 건설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원자력 업계에선 신기술이 적용된 원전을 새로 건설해 상용화하지 못하면 향후 원전 수출길은 막힐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은 수출뿐 아니라 안보·국방 측면에서 기술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기존 기술을 사장시킬 것이 아니라 APR+나 SMART와 같은 ‘신기술’을 활용하고 수출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공론조사를 계기로 한국 원전이 미뤄온 문제를 되짚어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원전은 국내 에너지 공급을 위한 공공산업 측면이 강하다”며 “곧 필요한 고준위 사용후 핵연료 처리장 문제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독자 핵무기 개발하려면 … 협정·조약 깨고 제재 감수해야

원자력 발전은 낮은 가격에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지만 방사선 유출, 폭발 등의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이 위험성이 극대화된 것이 최근 북한의 ‘핵’ 위협이다. 정치권 일부에선 핵 억지력을 위해 독자 핵무기 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한국은 실제로 핵 개발을 할 수 있을까. “북한의 6차 핵실험 수준이라면 6개월 안에 가능하다”는 게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원자력 발전 기술을 바탕으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핵실험은 수퍼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핵 개발을 하려면 현재의 한·미 원자력협정을 파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미국이 선뜻 찬성하거나 용인하기 어렵다. 여기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도 탈퇴해야 한다. 이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다. .

[출처: 중앙일보] [인사이트] 86년 “원자로 못 만들면 태평양에 빠져 죽자” … 한국, 이젠 탈원전 갈림길 2017.09.28 이승호 기자

* 사진자료: 사진 #1 본문
사진 #2 (안준호 기자, 조선일보, 2017.09.29,
"제3세대 원전 중 가장 안전" "가동 순간부터 거대한 핵폐기물")
사진 #3 (최준호 기자, 2017.09.18,
"연료 1g으로 석탄 8t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