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바이칼 호수 & 백악산 아사달 역사기행
부제
  연구소 역사기행
일시
  2018.08.31~2018.09.07
작성일
  2018-10-02
조회수
  48

   
 
 
 
 
 
 
 
 
 
 
 
 
 
 
 
 
 
 
 
 
 


바이칼 호수 & 백악산 아사달 역사기행


2018.08.31.~09.07

사단법인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www.east-asia.or.kr

1. 바이칼 호수
2. 이르쿠츠크
3. 앙가라 강
4. 알혼섬
5. 알혼섬 불한바위
6.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7. 즈나멘스키 수도원
8. 제정러시아 백군사령관 꼴착제독 동상
9. 130번 지구
10. 꿀뚝전망대
11. 아르샨 국립공원
12. 아사달 혼성 노천온천
13. 이르쿠트강 세례체험
14. 코리아의 시원 키렌시
15. 용의 서낭당
16. 미네랄 온천수
17. 온천마을 늴리리야
18. 알탄 문다르카
19. 환바이칼 열차
20. 기초 러시아 회화

1. 바이칼 호수([Lake Baikal]) : 바이칼 호수는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 이르쿠츠크(Irkutsk)와 브랴티야(Buryatia) 자치공화국 사이에 위치해 있다. 2500만 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호수이며, 수심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다. 또한 저수량이 2만 2000㎦로 담수호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전세계 얼지 않는 담수량의 20%, 러시아 전체 담수량의 90%를 차지한다.이외에도 면적은 3만 1500㎢, 남북 길이 636km, 최장 너비 79km, 최단 너비 27km이며, 둘레는 2200km에 이른다.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물도 맑아서 물밑 가시거리가 최고 40.5m이다. 약 330여 개의 강이 이곳으로 흘러 드는데, 밖으로 나가는 수로는 앙가라(Angara)강 하나뿐이다.

호수 안에는 총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 72km인 알혼(Olkhon) 섬이다. 알혼 섬은 호수 내에 위치한 섬으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이다. 바이칼이라는 명칭은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갈(Baigal, 러시아어로는 Байгал)에서 연유하였다.
바이칼 호수는 오랜 역사와 고립된 위치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이채로운 담수 동물상을 보여준다. 식물이 1080여 종, 동물은 1550여 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80퍼센트 이상은 이곳에만 있는 고유종으로, 이곳의 유일한 포유류인 바이칼바다표범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담비, 수달, 시베리아 족제비, 고라니, 흰꼬리수리, 새매부엉이 등 다양한 희귀동식물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풍부한 동식물상과 독특한 위치로 진화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 이르쿠츠크 : 이르쿠츠크[Irkutsk]
바이칼호(湖) 서쪽, 안가라강(江)과 이르쿠트강(江)의 합류점에 위치하며, 안가라강(江)이 시가를 종단하고 있다. 동(東)시베리아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시는 카자크가 만든 동영지(冬營地:1652)로부터 발달하였으며, 1661년에는 목조 성채가 지어졌다. 그후 러시아와 몽골·중국과의 교역로의 중심지로서 모피와 금 거래가 활발하였다.

1803년부터는 시베리아 총독부, 1822년부터는 동시베리아 총독부가 있었으며, 1898년 시베리아 철도가 들어선 뒤부터는 공업도 활발하여 부근의 체렘호보 탄광의 채굴도 촉진하였다. 제정시대에는 18세기초부터 정치범의 유형지로서도 유명하였다. 현재는 광업용 중기계류·공작기계·전기기계 등의 기계 제작업, 마카로니·과자·식육·버터·유지·제분 등의 식료품공업, 가구·신발·펠트·피혁·메리야스 등의 경공업 및 운모 가공업, 철근 콘크리트·건축자재·항공기·오토바이 제조업 등이 발달해 있다.

시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르쿠트강의 합류점보다 상류에 있는 안가라강(江) 우안(右岸)은 이르쿠츠크 국립대학교(1918)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를 비롯하여 많은 교육·연구 기관들이 모여 있다. 안가라강 좌안은 공업지구이고, 안가라강의 우안 하류지역에 있는 구릉 위에 도심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은 행정·상업 등의 중심으로 극장·공원·키로프 중앙광장 등이 있으며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안가라강과 바이칼호를 잇는 정기선 및 시베리아 철도가 통해 있고, 레나강(江) 상류와 몽골에 이르는 자동차도로의 기점이며, 중앙아시아와 모스크바에 이르는 민간항공로가 개설되어 있다. 안가라강의 상류에는 이르쿠츠크 인공호가 있고, 1956년에 완공된 이르쿠츠크 수력발전소가 있다.

수도 모스크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4,200km 떨어져 있으며 시베리아 철도가 이어져 우랄 산맥 지역, 중앙 아시아를 잇는 시베리아 동부의 공업, 교통의 요지이다. 동부 시베리아의 침엽수림인 타이가(taiga)로 덮인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이르쿠츠크 국제공항(Аэропорт-Иркутск)이 있다. 구시가는 예니세이 강의 지류인 안가라강의 우안에 위치하는데 시베리아 철도의 이르쿠츠크 역이 있다. 주요도로로 시베리아횡단도로가 안가라강의 좌안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치타(Чита)까지 M55 간선도로가 지난다. 서쪽으로 노보시비르스크(Новосибирск)까지는 M53 간선도로가 지난다. 안가라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하류의 브라츠크(Братск)로 진입할 수 있다. 상류 쪽으로는 바이칼 호의 각지로 이동할 수 있다.

1686년 칙허(勅許)를 받아 시(市)로 설립되었다. 시베리아 철도는 1904년에 이르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장되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 시대에 이르러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어 공업 발전을 위한 수력발전소 등이 건설되었다. 옛부터 모피의 거래지로서 중국이나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교역이 번성했다. 러시아 중앙부에서 끌려 온 죄인이나 정치범의 유형지이기도 했다. 1863년에는 폴란드 입헌왕국에서 반(反) 러시아 봉기가 일어났는데 그 참가자들이 이르쿠츠크로 유형되었다. 시내에 남아 있는 고딕 양식의 교회는 유형된 폴란드인이 지은 가톨릭 교회로 알려져 있다. 시베리아 지역으로의 기독교 선교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10월 혁명 운동 이후 발생한 러시아 내전으로, 볼셰비키 혁명군과 정부군의 격전이 벌어진 곳이 이르쿠츠크다.

시가지는 바이칼호 서안내륙에 위치하며 교육시설로는 이르쿠츠크국립대학, 이르쿠츠크국립언어대학, 이르쿠츠크국립공과대학, 바이칼국립경제법률대학,이르쿠츠크철도기술대학 등이 있다. 중요한 문화유산으로는 1718~1746년에 건축된 예수 공현 정교회(Троицкая церковь)가 있다. 쾨펜 기후구분에 따르면 아한대동계소우기후(亞寒帶冬季少雨氣候)에 속했으나 2000년 이후 온난화가 점차 진행되어 냉대습윤기후라고 볼 수 있다.

3. ◈ 앙가라 강 : [Angara River]러시아 시베리아 중부지방을 흐르는 강.
길이 1,825km, 유역면적 105만 6,000㎢이다. 바이칼호에서 발원하는 유일한 강으로, 이르쿠츠크와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경계를 북서쪽으로 흘러내려, 예니세이강과 합류한다. 강폭은 상류부의 이르쿠츠크 부근에서 약 700m로 수량이 풍부하고, 계절에 따른 변화가 적다. 또한 이르쿠츠크 하류에서 협곡을 만들고, 다시 중앙시베리아 대지를 지나는 부분에서는 급류를 이룬다. 1964년 이곳에 출력 410만kW에 이르는 세계 굴지의 브라츠크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또한 1969년에는 일림강과 합류하는 하류지점인 우스티일링스크에 댐이 건설되었으며, 풍부한 천연자원과 함께 시베리아 개발의 중점지역을 이룬다. 브라츠크와 이르쿠츠크 사이에는 항공편 외에 뱃길이 열려 있으며, 브라츠크 인공호(人工湖)는 발전소 견학을 겸한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가항(可航)거리는 상류에서 700km, 하류에서 300km이며, 중류는 항행이 불가능하다. 결빙기간은 1∼4월이며, 강에는 철갑상어 ·연어 ·송어 등이 많다.

4. ◈ 알혼섬 : ∙바이칼호수 동쪽 해안선 부근에 위치한 알혼섬은 바이칼호수에서 가장 큰 섬으로, 이르쿠츠크에서는 300km 떨어져 있다. ''''''''''''''''''''''''''''''''''''''''''''''''''''''''''''''''작은 숲'''''''''''''''''''''''''''''''''''''''''''''''''''''''''''''''' 또는 ''''''''''''''''''''''''''''''''''''''''''''''''''''''''''''''''메마른'''''''''''''''''''''''''''''''''''''''''''''''''''''''''''''''' 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알혼(Olkhon)은 지리학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며 수많은 전설이 깃든 바이칼의 성스러운 중심지이다. 17세기 바이칼을 탐험하던 몽골인이 처음 이곳을 발을 내딛은 후, 지리학적, 고고학적 랜드마크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년평균강수량 240mm, 길이 72km, 폭 15 km에 면적이 730 ㎟ 밖에 되지 않는 알혼섬이지만,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지대인 스텝 지방(Steppe), 시베리아·북미 등지의 침엽수림대 타이가(taiga forest), 섬중심의 메마른 사막지역 등 3개의 두드러지는 기후대를 보이는 독특한 지역이다. 섬내에는 1,500명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고기잡이와 가축을 기르며 살고 있다.

∙모래 만(Sandy Bay)'''''''''''''''''''''''''''''''''''''''''''''''''''''''''''''''': 늦여름에도 수영을 할 만큼 따뜻한 수온을 유지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찾는 지역이다. 주변 두터운 소나무 숲을 모래언덕으로 점점 밀어내면서, 소나무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그리 만 (Zagli Bay) : 이르쿠츠크일대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년중 일조일수가 흑해 해안보다 많다.
∙카다이 산 (Khaday Mountain) : 훼리선착장과 쿠치르사이를 잇는 가장 높은 길로, 샤머니스트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으며, 정신을 수양했다.

5. 알혼섬 불한바위 : ∙알혼섬의 상징, 불한 바위(샤먼 바위)
∙불한 바위는 세계적으로 영적인 기운이 가장 강한 곳 중에 하나로 유명하다. 아시아 대륙의 아홉 곳의 성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세계 각지의 샤먼들이 기운을 받기 위해 찾아와 기를 받는 곳

∙알혼섬의 후지르 마을에 가까워지면 우리나라의 독도와 비슷한 바위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 전체가 화강암이고 붉은색을 띄며 그 세월이 느껴지는 이 바위섬이 위치한 툭 튀어 나와 있는 곳을 ''''''''''''''''''''''''''''''''''''''''''''''''''''''''''''''''불한 곶''''''''''''''''''''''''''''''''''''''''''''''''''''''''''''''''이라고 부르고 이 바위섬이 ''''''''''''''''''''''''''''''''''''''''''''''''''''''''''''''''불한 바위''''''''''''''''''''''''''''''''''''''''''''''''''''''''''''''''이다.
∙샤먼바위는 이 곳 말고도 바이칼 호수 주위에 여러 곳 있으며, 샤먼 의식이 행해지는 곳들을 일컬어 ''''''''''''''''''''''''''''''''''''''''''''''''''''''''''''''''샤먼바위''''''''''''''''''''''''''''''''''''''''''''''''''''''''''''''''로 통칭한다.

6. ◈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 데카브리스트란 1825년 12월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꾀한 혁명가들인데, 러시아어(語)로 12월을 데카브리라고 한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데카브리스트는 1825년 12월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원로원 광장에서 거행된 새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한 선서식장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따라서 주모자는 교수형 당하고 100명 이상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는데, 이 혁명은 러시아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데카브리스트들을 기념하기 위해 혁명에 참여했던 세르게이 그리고리예비치 볼콘스키(1788~1865)가 살던 집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개방하였다. 박물관 안에는 데카브리스트의 초상화, 그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는 삽화, 당시에 정치토론과 시 낭송이 행해졌던 거실과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7. 즈나멘스키 수도원

8. 제정러시아 백군사령관 꼴착제독 동상 :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1916년, 러시아 제국 해군 장교인 알렉산드르 콜차크 대령은 다른 2척의 구축함과 함께 발트 해에서 기뢰 부설 작업을 진행한다[1]. 부하 장교인 세르게이 티미레프 중령과 담소를 나누던 중 다른 부하 장교의 보고로 밖으로 나온 콜차크는 안개를 뚫고 나타난 독일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인 ''''''''''''''''''''''''''''''''''''''''''''''''''''''''''''''''프리드리히 카를''''''''''''''''''''''''''''''''''''''''''''''''''''''''''''''''을 발견하고 역시 콜차크의 구축함을 발견한 독일 군함이 포격을 가하면서 전투가 발발한다.

함급의 차이로 모든 것이 불리한 콜차크의 구축함은 일방적으로 독일 장갑순양함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콜차크는 혼란속에서 피격당한 포탑으로 올라가 직접 함포를 조작하여 생존한 부상병과 함께 프리드리히 카를의 함교를 폭파시켜 시간을 번다. 이후 후퇴 준비를 하던 콜차크는 기뢰를 버리길 잘했다는 어느 수병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스스로 설치한 그 기뢰밭으로 순양전함을 유인할 생각을 한다. 유인을 하던 중 추격하며 포격을 하던 순양전함의 포탄에 의해서 기뢰 하나의 연결선이 끊어져 콜차크의 함선과 충돌할 수 있는 위기상황이 발생하나 콜차크는 차분하게 지휘를 하여 함선은 무사히 기뢰를 피하고 추격하던 장갑순양함은 기뢰와 접촉해 침몰한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소장(Контрадмирал)으로 진급한 콜차크는 승전 연회에서 티미레프가 자신에게 소개했던 사진의 주인공이자 티미레프의 아내인 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콜차크는 전쟁에서 승승장구해 중장으로 진급하며 흑해 함대 사령관이 되지만 러시아 혁명이 터지면서 콜차크 제독의 함대에서도 수병들의 난이 일어난다. 이에 콜차크는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장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자신의 예도도 내놓으라는 수병들의 요구에 예도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이후 임시 정부 수반인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콜차크 제독의 정치력을 경계하여, 그를 미국으로 파견해 쫓아내 버린다.

혼란스러운 러시아의 상황을 보고 미국에서 돌아온 콜차크 제독은 신생 소비에트 정부에의 협력을 거부하고, 백군의 지휘관이 되어 적백내전에 참전한다. 티미레프를 떠난 안나는 콜차크 제독과 합류하여 백군의 간호사로서 콜차크와 함께한다. 그러나 소련 적군의 반격으로 인해 백군은 이르쿠츠크 방면으로 후퇴하고 콜차크는 안나와 체코 군단과 함께 열차로 철수하지만 적군과 내통한 체코 군단에 의해 적군에 체포되어 버리고[2] 결국 안나와 헤어진 콜차크 제독은 이르쿠츠크 시장과 함께 총살당한 후 얼어붙은 바이칼 호에 수장된다.

역사적으로는 총살당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체코 출신 백군 장성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보이체코프스키의 군대(영화 상의 카펠 장군의 군대)가 이르쿠츠크 재탈환에 성공하지만 아쉽게도 제독을 구하지는 못한다. 세월이 지나 1966년에 소련에서 영화를 만드는데 다름아닌 전쟁과 평화. 그리고 이 촬영 현장에 단역 배우로 나온 안나는 촬영장의 모습에서 50년전 추억을 떠오르며 회상에 젖는다.

* 러시아 내전(백군과 적군) :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대부분의 군대는 볼셰비키의 휘하에 들어갔지만, 군대에 남아 있는 병사보단 집에 간 병사가 훨씬 많았다. 볼셰비키 정권이 지주의 토지를 분배하고 있었으므로, 농민 출신의 병사들은 집에 가야만 자기 몫의 토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촌을 장악하러 간 공산당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혁명 시점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중심 도시들만 장악했을 뿐이었고, 지방엔 아직 로마노프 왕조를 복권시키려는 왕당파 군벌과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들이 상당했다.[3] 때문에 볼셰비키 정권이 러시아 전역을 통제하려고 하자, 반볼셰비키 진영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내전이 발발한다. 이 시기 각 군들은 수많은 국가들을 수립했는데 예를 들어 백군은 트란스바이칼 공화국을 수립하였고, 적군은 극동 공화국을, 녹군은 젤레나 우크라이나를 수립하였다.

결국 1921년에 외몽골에 잔존해 있던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까지 적군에게 분쇄되었고, 마지막 외부 간섭군이자 블라디보스토크에 벽돌 건물까지 지어가면서 장기 주둔하려던 일본군도 결국 철수했으며, 1924년에는 사할린 북부에서도 철수하면서 러시아의 영토는 소비에트 정권이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이때 외몽골이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중국에서 독립하면서 두 번째 공산국가가 되었다.


이 러시아 내전으로 인해 독립군이 뜻밖의 소득을 거두기도 했다. 위에 언급된 체코 병력은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선박으로 귀국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이 상당량의 군사 장비를 북로군정서 등 독립군 측에 매각한 것. 이는 청산리 전투 등의 후에 벌어질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좌우 할 것 없이 수많은 독립군들이 적백내전에 참여했다. 김홍일장군 또한 적백내전에서 대한의용군을 지휘했는데, 적군에 가담해 싸웠다.

정치사상적인 목적이라기 보단 자유시에 독립군들이 집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휘하 병력을 데리고 독립군에 합류하려다 참변이 일어나자, 근처 러시아 한인촌에서 독립군을 이끌던 중 백군 측에 일본군이 합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군에 가담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이 전쟁을 계기로 연해주 일대와 중국 일대에서 자기들의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때까지 일본의 뒤를 봐주던 미국의 반감을 사게 되어 1930년대에는 미일의 관계가 전쟁만 없을 뿐이지 서로를 가상 적국으로 상정하게 되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여기에 폴란드, 카자크, 각 지역 부농들의 사병이나 타타르인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이슬람 등 종교적 봉기와 발트, 캅카스 지역의 민족주의 봉기 세력까지 겹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직들이 적군에 대항했다. 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이전에는 독일군이 이들을 계속적으로 지원했고, 레닌은 트로츠키 등의 반대에도 불구, 굴욕적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강행키도 했다. 게다가 연합국 역시 종전을 전후하여 볼셰비키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시 독일군과 계속 싸우는 정권을 세울 목적으로 반볼셰비키 세력을 지원하면서 전쟁은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9. 130번 지구
10. 꿀뚝전망대
11. 아르샨 국립공원
12. 아사달 혼성 노천온천

13. 이르쿠트강 세례체험 : ∙이르쿠츠크 발음조차 어렵고 낯설다. 하지만 바이칼 호수를 버킷 리스트로 꼽은 여행자들은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을 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이르쿠츠크라는 걸 안다. 이 도시에는 정작 바이칼 호수는 없고 앙가라 강만 있어서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이 강이 바이칼에서 흘러나온 유일한 강이란 점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데, 단순한 도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귀족 청년층 데카브리스트들이 유럽 문화를 시베리아에 성공적으로 이식했음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 유럽 소도시 미니어처 같은, 바이칼 가는 길목에 있는 시베리아의 작은 귀족 도시 이르쿠츠크. 보물과도 같은 이곳의 진가를 발견하는 순간 그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르쿠츠크는 몽골 종단철도와 만주 횡단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 수많은 열차가 정차하는 곳이다.

이르쿠츠크의 시내는 길이 복잡하지 않고 볼거리가 모여 있어서 도보로 관광하기 좋다. 도심을 걸어 다니다 보면 바닥에 그려진 초록색 선과 곳곳에 세워진 설명문을 발견할 수 있다. 이건 관광객을 위한 보행로인 ‘그린라인’ 인데, 그린라인은 이르쿠츠크 관광 인포메이션 센터와 시정부가 추진해 만든 관광 경로로, 그 길이만 5KM. 이르쿠츠크의 역사적 건물, 교회, 박물관, 동상 등을 포함해 총 30여 개의 명소들이 순환 고리로 연결돼 있어 어디서 시작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고 2~3시간 정도면 대략 훑어볼 수 있다.

14. 코리아의 시원 키렌시 : 한국인들의 시원 백악산 아사달 발견
본문은 러시아의 남 시베리아에서 백악산 아사달과 그지역의 고대 역사들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시타 알렉산더(한국명 김성진)가 현지의 TV방송국과 언론을 통해 발표한 내용들과 현지 국립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내용들 입니다. 발표하는 내용들은

1) 한국의 영어명칭인 KOREA는 고구려나 고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단지 남 시베리아지역의 고대어인 케레(까마귀=kore)에서 시작된 명칭이다. 1만년 전 상고시대에 까마귀는 태양신의 사자로서 천사의 역할을 담당하던 신성한 새였다. 러시아가 한국인을 호칭하는 까레이는 바로 케레이를 그들의 발음데로 부르는 것이다.

2) 고구려는 퉁구스에서 시작된 이름이다. 퉁구스의 고대의미는 숫자로 9를 칭하며 장남을 의미한다. 고대어로 구는 일부 지역에서는 한 이라고도 불리지만 현재까지 구라고 불리고 있고 구-구이-구려-고구려-고려로 이어졌으며 시베리아의 퉁킨스키 지역에는 그 흔적이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3 백악산 아사달은 전설이 아니었다. 남시베리아의 퉁킨스키 라이온지역에 위치하고 3천m급 설산으로 둘러 쌓인 신비한 평원 일대가 백악산 아사달이었으며 아사달의 신표인 비파형 동검은 그 지역을 나타내는 형상지도였다.

4) 백악산 아사달의 의미는 백개의 설산 고봉들 사이에 있는 황금태양의 벌판이라는 의미이다. 현재는 아르샨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그 의미는 알산=알탄산=황금태양 이라는 의미이고 달은 응달 양달의 의미로서 음양의 기운이 아사달지역의 한 중심에서 조화롭게 상생하고 있는 것을 고대의 샤먼들이 신성한 지역이라고 표현 한 것이다.

5) 백악산 아사달지역에는 지구행성에서 가장 큰 신상, 길이 180km의 신의 형상이 숨어있다. 그곳이 바로 삼성기에 나오는 흑수백산(몽골 흡수굴호수와 뭉크 사르딕산) 전설이 시작된 곳이며 환단고기와 천부경의 비밀들이 이곳 백악산 아사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삼족오는 바로 이곳 사얀산맥에서 태양신의 전령으로 부족의 지도자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까마귀를 부르는 호칭이었고 케레이들의 상징이었다.

6) 케레이부족은 고대 상고사에 나오는 12 환국의 부족 중 하나이다 그들의 문장은 십자가였고 이는 까마귀가 날개를 펴고 비행하는 모습과 북두칠성을 형상화 한 것이며 백악산 아사달의 초원에 풀어놓은 케레이 부족들의 말과 소의 엉덩이에 낙인으로 표시되었다. 카톨릭의 십자가 성호는 바로 이 까마귀 부족들인 케레이민족 즉 한국인의 고대조상들이 상호간 인사하던 관습이었다.

7) 백악산 아사달은 한국인들만의 시원이 아니다. 인류의 최초 발상지 였으며 인류문명의 시원이었다. 인류의 모든 종교도 그곳 백악산아사달이 있는 사얀산맥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3대 종교인 카톨릭과 불교 그리고 이슬람과 그외 모든 종교의 뿌리가 바로 사얀산맥과 백악산아사달에서 시작되었다.

8) 인류의 모든 언어와 글도 그곳 백악산 아사달에서 시작되었다. 사얀산맥의 봉우리 이름들이 인류 최초의 언어와 글이었으며 산스크리스트어의 시원이었고 그 언어들이 12 환국의 이동에 따라 각기 다른 언어로 발전해 간 것이다. SUN의 시원은 Solar가 아니다. 사얀산맥을 의미하는 사얀이 SUN으로 발전 된 것이며 Moon도 역시 사얀산맥의 신성한 봉우리에서 시작된 언어이다.

9) 카톨릭의 상징들인 부활절, 크리스마스, 헬로윈데이등등이 모두 그곳 사얀산맥의 백악산 아사달에 살던 케레이 민족과 11개 다른 유목민족들의 풍습이었으며 심지어는 카톨릭의 십자가도 서기 431년에 카톨릭의 수호성인인 성 게오르기(성 조지)가 백악산 아사달을 근거로 하는 케레이 부족으로부터 차용해 간 것이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도서관들 지하에 보관된 고대문서에 다 나오는 진실이다.

10)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류 최고의 고서이다. 일본인처럼 살았던 어용사학자와 아류들이 정복자 사이또총독의 명령으로 일본보다 훨씬 찬란했던 한국의 위대한 상고사를 모두 불태우며 위서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환단고기의 흔적들은 현재 중앙아시아의 모든 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일부 유럽의 박물관에 그 흔적들이 산 같은 증거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독재자들에 의해 모든 상고사가 불태워지거나 숨겨진 채 상고사를 연구하던 모든 진문 인력들이 고난을 당해왔던 것이다.

11) 백악산 아사달의 신표인 비파형동검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 왔다. 비파형 동검은 지구행성에서 가장 맑고 신성한 호수인 바이칼호수의 끝부분에서 태양의 산알탄 문다르가의 봉우리를 지나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로 정확하게 연결된다.

12) 백악산 아사달에는 그동안 미스터리였던 피라미드의 비밀이 쉽게 풀리고 만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피라미드들은 모두 백악산 아사달에 거주하였던 12환국의 후손들이 3300년 동안 이어지는 인류평화의 시절에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각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이 이주한 신천지에 자리를 잡고 제일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자신들의 고향에 있는 신성한 산, 태양의 산으로 무엽산이며 피라미드 형태인 알탄 문다르가와 비슷한 형상을 건설한 것이다.

13) 백악산 아사달지역에는 태양의 산 알탄 문다르가와 달의 산 뭉크 사르딕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하였던 민족들의 상징인 구리다바와 투란다바 산들이 있다. 달의 산 뭉크 사르딕에는 피라미드 설계공식과 천부경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14) 백악산 아사달에서 평화를 구가하던 12환국의 유목민족들이 자신들의 가축을 구별하기 위해 소와 말들의 엉덩이에 낙인하던 표시들이 현재 모든 유럽과 중앙 아시아 국가들의 문장으로 발전했다. 즉 거의 모든 유럽국가의 왕조, 아시아, 인디아문명의 시조들과 중앙아시아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바이칼호수를 중심으로 이동하던 12환국 유목민족들의 후손들이며 그 민족들은 모두 한 뿌리이다. 흑인과 백인 그리고 황인족들은 단지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기후조건에 따라 적응을 위해 멜리닌 색소의 영향으로 수세기 동안 유전자가 조금씩 변형되었을 뿐 모두가 바이칼 호수를 중심으로 이동하던 9개 부족 유목민들의 뿌리에서 시작되었다.

15) 아사달의 지명은 전세계로 이어졌다. 전세계 모든 나라나 도시의 이름 중에 아르샨 (아르샨=알탄산=황금태양)과 비슷한 지명으로 불려지는 나라와 도시들…아르헨티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스타나, 멕시코의 아즈텍 등 많은 지역의 이름들이 자신들의 고향인 아사달의 지명을 그데로 옮겨서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미국의 백악관은 조지워싱턴의 부인이 살던 집을 본 따서 whitehouse라고 부른는게 아니다. 바로 백악산 아사달에 살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원주민들의 성지인 백악산에서 차용된 이름이다. 아리랑은 백악산 아사달에서 인구증가로 먼 신천지로 이주하던 민족들이 부르던 송별노래였다.

16) 백악산 아사달의 모든 종교의식을 담당하던 신관들은 케레이 부족이었으며, 그들은 백색 옷을 입고 12개 환국의 모든 제례의식을 총괄 담당했다. 그들은 바이칼호수를 북극성으로 삼고 북두칠성의 위치에 따라 나머지 11개 나라 유목국가들의 이동시기와 지역을 정해주었고 태양신과의 연결을 담당한 민족이었다. 그들이 주관하던 BC 7199년부터 환웅의 통치시절 3300년 동안에는 단 한차례의 전쟁이 없었다, 수시로 모든 부족이 만나 다같이 제사를 지내고 춤과 노래로 평화를 구가하였으며 같은 친척과 부족끼리는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정하여 이웃나라와의 평화를 이어갔다.

17) 인류의 분쟁과 전쟁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농업발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농업과 동시에 토지에 대한 소유가 시작되었고 각 부족들이 케레이 제사장들의 이동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신관체제가 등장했는데 그 신관의 역할들이 바로 샤먼의식을 거부하는 일부 타락한 승려들 이었다. 토지에 대한 소유개념이 없었던 유목민시절에서 토지소유를 정당화하는 농업의 발전과 함께 전쟁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8) 남시베리아의 백악산 아사달은 인류의 모든 고대상고사의 흔적과 근거들이 살아있는 종합 유적지이다.

19) 러시아 남시베리아 퉁킨스키 라이온과 사얀산맥은 고대 상고사와 전설들이 살아 숨쉬는 바다이다. 이곳의 모든 지명과 산과 호수 그리고 강에는 아주 중요한 역사의 비밀과 전설들이 펄펄 살아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우주에 있는 모든 별의 숫자만큼 많다.

20) 케레이 부족들이 백악산 아사달에서 이주한 곳은 한반도뿐이 아니다. 전셰계 모든 지역으로 케레이들이 이주하였다. 중국의 묘족, 징기스칸의 처가인 웅칸족, 카자흐스탄을 건설한 케레족들, 북아메리카의 최초 원주민들중 한 부족인 발해인,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등 중남미를 개척했던 케레이들 그리고 유럽과 중동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거의 모든 왕조들이 모두 고대국가의 샤먼을 담당하던 케레이 민족들과 연결되어 있다.

15. 용의 서낭당
16. 미네랄 온천수
17. 온천마을 늴리리야
18. 알탄 문다르카

19. 환바이칼 열차 :
환바이칼호는 관광기차이다. 이 관광기차가 이용하는 철도는 옛날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일부분이었으나 앙가라 강의 댐 건설로 일부가 수몰되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는 이용되지 못하고 바이칼 호숫가를 유람하는 용도의 철도가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느린 열차라고 한다. 좌석은 1등석, 2등석, 이코노미 석 총 3종류의 좌석이 있다. 좌석을 찍어두지 않아 사진은 없다. 화장실은 열차 전체에 1~3개 정도 있는 것 같았다. 하루에 많은 사람이 이용하다보니 좀 지저분하다... 가격은 1등석이 4900루블(한화 약 9만 3~4천원) 돌아다니며 본 바로는 1등석 또는 2등석이 좋아보인다. 그렇게 많은 비용이 차이나지 않아 나라면 1등석으로 이용하겠다.

주 5회 운행하며, 화요일은 운행하지 않는다. 5번 모두 같은 방향으로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2가지 방식으로 운행한다. 순환되지 않는 열차다 보니 운영비 절약차원에서 이렇게 하는 듯하다. 월,목,토는 시계 방향으로 운행하며, 수,금,일은 반 시계 방향으로 운행한다. 수요일에 탑승해봤는데 방향은 크게 상관 없으나 출발과 도착을 고려하여 자신에 맞는 방향을 짜면 좋겠다.

20. 기초 러시아 회화
러시아어 기초 회화 : 작성자 박형수■ ①
1. Здравствуйте! [즈드라-스트부이쩨] 안녕하세요!
2. Привет! [쁘리비예트] 안녕!
5. Очень Хорошо! [오친 하라쇼] 매우 좋습니다.
6. До свидания. [다스비다냐]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7. Пока. [빠까] 안녕. 8. Спасибо! [쓰빠씨바] 감사합니다!
9. Болшое спасибо! [발쇼예 쓰빠씨바] 대단히 감사합니다!
10. Пожаллуйста. [빠좔-루스타] 천만에요.
11. Не за что. [녜 자 쉬또] 천만에요.
12. Извините![이즈비니쩨] 미안합니다 13. Нечего. [니치보] 괜찮습니다.
14. Да. [다] 네. 15. Нет. [녜트] 아니오.
16. Как вас зовут? [까크 바쓰 자부트]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17. Меня зовут Надя. [미냐 자부트 나쟈] 나의 이름은 나쟈입니다.

러시아어 기초 회화 ■ ②
3.Что это? [쉬또 에따] 이것은 무엇입니까?
4. Это церковь. [에따 쩨르까피] 이것은 교회입니다.
7. Мы любим вас! [믜 류빔 바쓰]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9. Я не знаю. [야 니즈나유] 나는 모릅니다.
10. Вы говорите по-русски? [븨 거바리쩨 빠루스끼]
당신은 러시아어를 하십니까?
11. Нет. Я не говорю по-русски. [녜트 야 니거바류 빠루스끼]
아니오. 저는 러시아어를 할 줄 모릅니다.
러시아어 기초 회화 ■ ③
1. Откуда вы приехали? [아트꾸다 븨 쁘리예할리]당신 어디서 오셨나요?
2. Я приехал(а) из Кореи. (из Сеула.)
[야 쁘리예할(라) 이스 까레이 (이스 씨울라)]저는 한국(서울)에서 왔습니다.
3. Очень приятно. [오친 쁘리야뜨나] 만나서 반갑습니다. (초면인사)
8. Помагите пожаллуйста. [빠마기쩨 빠좔루스따 도와 주세요.
9. Сколько стоит? [스꼴까 스또잍] 얼마입니까?
=> 러시아 화폐 : 루블 (US $ 1 = 약 30루블
& 러시아어 기초 회화 ■ ④
1 – один [아진] 2 – два [드바] 3 – три [뜨리]
4 – четыре [취뜨의리] 5 – пять [삐야찌] 6 – шесть [쉐스찌]
7 – семь [쎔] 8 – восемь [보쎔] 9 – девять [제비찌]
10 – десять [제시찌] 20 – двадцать [드받짜찌]
30 – тридцать [뜨릳짜찌] 40 – сорок [쏘로크]
50 – пятьдесят [삐지샽] 60 – шестьдесят [쉐스지샽]
70 – семьдесят [쎔지샽] 80 – восемьдесят [보쎔지샽]
90 – девяносто [제비노스따] 100 – сто [스또]
200 – двести [드베스찌] 300 – триста [뜨리스따]
400 – четреста [취뜨리스따] 500 – пясот [삩쏱]
600 – шестьсот [쉐쏱] 700 – семьсот [쎔쏱]
800 – восемьсот [보씸쏱] 900 – девятьсот [제빋쏱]
1000 – тысяча [띄의시취] 1000000 – миллион [밀리온]

& паспорт [빠스뽀르트] 여권 турист [뚜리스뜨] 관광객
вход [브홑] 입구 выход [븨의홑] 출구
(М) мужской [무쓰꼬이] 남성의 (Ж) женский [줸스끼이] 여성의
открыто [아트끄리따] 영업중 закрыто [자끄리따] 닫혔음
магазин [마가진] 가게 киоск [키오스크] 매점
вода [바다] 물 сок [쏘크] 주스 кофе [꼬페] 커피
чай [촤이] 홍차 хлеб [흘롑] 빵
молоко [말라꼬] 우유 мороженое [마로쥐노예] 아이스크림
сахар [싸하르] 설탕 соль [쏠] 소금 рис [리쓰] 쌀
телефон [쩰례폰] 전화 студент(ка) [스뚜젠트(까)] 학생
много [므노가] 많이 нимного [님노가] 조금
подарок [빠다롴]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