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중국 중경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역사기행
부제
  총칭역사기행
일시
  2016.06.23
작성일
  2016-06-25
조회수
  1483

   
 
 
 
 
 
 
 
 
 
 
 
 
 
 
 
 
 
 
 
 
 
중국 중경(重慶) 소개/중국어 기본회화
<제공: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www.east-asia.or.kr 2016.06.18.>

1. 중경 개요
충칭(간체: 重庆, 정체: 重慶)은 중국 서부의 직할시로 중국 네 개 직할시 중 하나로 유일하게 서부에 위치한다. 다른 직할시인 베이징 시, 톈진 시, 상하이 시에 비해 시 면적이 넓어 총 면적은 8만 km²로 총 인구는 3000여만 명이 넘는다. 1997년 중국의 네 번째 직할시로 독립했다. 2012년 초 보시라이(薄熙來) 당서기 몰락으로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붉은 도시’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는 충칭을 임시 수도로 삼아 항일전쟁을 치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도 잠시 머물렀다.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火鍋)와 미녀의 고장이기도 하다. “가을밤 아미산엔 반달이 걸려 있고, 달그림자 평강강에 비쳐 강물 따라 흘러가네(峨眉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한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으로 향하는데, 그대 생각하나 만나지 못하고 유주로 내려간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의 유주가 지금의 충칭이다.
 충칭이란 이름은 송(宋)나라 때 유래했다. 1189년 정월 송나라 효종(孝宗)은 아들 조돈(趙惇)을 공왕(恭王)에 봉했다. 조돈은 왕에 봉해진 지 한 달 만인 2월 광종(光宗)으로 제위에 올랐다. 이에 ‘경사가 두 번 겹쳤다(雙重喜慶)’란 뜻의 중경부(重慶府)로 승격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남송은 충칭의 조어성(釣魚城)을 근거로 몽골군대와 36년에 걸쳐 처절한 항전을 펼쳤다. 송나라 군대의 상대는 당시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4대 황제인 원(元) 헌종(憲宗) 몽케 칸이 이끄는 군대였다. 몽케는 쓰촨을 우회해 창장 남쪽 송나라의 심장을 노렸다. 5만의 몽골군은 5000명이 지키는 조어성에서 크고 작은 200여 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몽케 칸은 1259년 조어성 전투 중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가 충칭에서 돌연사한 것이다. 1276년 남송의 수도 임안(臨安, 오늘날의 항저우)이 함락된 뒤에도 충칭은 3년간 항전을 계속했다.
몽골의 지배는 영원하지 못했다. 1363년 홍건군의 영수 명옥진(明玉珍)은 충칭을 수도로 하(夏)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라 칭했다. 충칭은 내륙 도시로는 처음으로 개방된 대외 통상항구였다. 1876년 청(淸)이 영국과 옌타이(煙臺)조약을 맺어 영국 영사관이 처음으로 세워졌다. 청일전쟁 패배로 맺어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일본에 개방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불리한 전세에 몰린 국민정부는 1938년 10월 충칭을 전시 임시 수도로 삼고 일본과 맞섰다. 원나라 말에 이어 두 번째로 충칭은 대륙의 수도가 됐다. 1945년 일본이 패퇴하자 당시 주중 미국대사 패트릭 J 헐리의 중재로 마오쩌둥(毛澤東)과 장제스가 충칭에서 만났다. 43일간 치열한 국공담판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쌍십협정’이다. 마오쩌둥과 장제스가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곳은 장제스의 쩡자옌(曾家岩)관저다.
2007년부터 4년간 충칭의 ‘제후’로 군림한 보시라이는 폭력배를 근절하겠다며 대대적인 타흑(打黑) 운동을 벌였다. 충칭의 뿌리 깊은 ‘조직’ 문화를 퇴치하려는 캠페인이었다. 보시라이는 이 캠페인으로 인기도 얻었다. ‘조직’의 문화는 17세기로 올라간다. 중국 땅을 장악한 만주족의 청은 한족에게 변발을 강제했다. 머리카락 아니면 머리를 요구했다. 자연스럽게 한족들은 명(明)나라를 재건하려는 비밀 조직을 곳곳에서 만들어 항거했다. 충칭의 비밀조직 이름은 ‘포가(袍哥)’였다. ‘도포 입은 사내’라는 뜻이다. 80년대를 풍미했던 영화 ‘영웅본색’에서 긴 코트자락 날리던 소마역의 저우룬파(周潤發)가 전형적인 포가 출신이다. 청나라 말기 포가는 철도 국유화를 반대하는 보로(保路)운동을 주도했다. 포가들의 철도주권 보호운동은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비밀 결사조직 포가는 철의 규율로 무장했다. 군신·부자·형제·부부·친구 사이의 실천덕목인 오륜(五倫),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여덟 가지 덕(八德)은 포가들의 생활 신조였다. ‘방망이부대[棒棒軍]’도 충칭 특유의 세력이다. 항구도시인 충칭엔 언덕이 많다. 등에 몽둥이를 짊어지고 짐을 나르는 짐꾼들이 도처를 누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0만에서 40만의 방망이부대가 충칭에서 활동 중이다. 1996년 TV 드라마 ‘산성의 방망이 부대(山城棒棒軍)’가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훠궈·미녀·방망이가 충칭의 3대 명물이 됐다.
충칭은 소비 도시다. 쓰촨성 청두와 함께 중국의 전형적인 내수지향 도시다. 임가공→수출 모델로 발달한 도시가 아니다. 내수도시 충칭은 중국 내수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한국 기업들에 포기할 수 없는 진검 승부처다. 지난 2010년 국가급 개발구로 지정된 량장(兩江)신구는 충칭시 경제 현주소다. 이곳은 자동차, 전자 IT 산업 기지로 향후 10년간 중국 서부 내륙경제 발전을 이끌 견인차다. 80년대 선전, 90년대 상하이 푸둥, 2000년대 톈진 빈하이 신구가 있었다면 2010년부터는 량장신구가 중국 경제 발전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동차는 충칭 경제를 뒷받침하는 대표 지주산업이다. 현재 상하이에 이은 중국 2대 자동차 생산기지인 충칭에는 로컬 기업인 창안자동차를 선두로 충칭시에는 상하이ㆍ둥펑ㆍ베이징자동차 등 대형자동차 기업 8곳이 둥지를 틀었다. 최근엔 IT 산업도 자동차 산업을 대체할 정도로 무서운 기세로 발전하고 있다. 충칭에는 휴렛팩커드, 에이서, 시스코, 폭스콘 등이 입주해있다. 충칭은 지난 2011~2015년 5년간 IT산업에 총 3000억 위안을 투자해 매출액 1조 위안을 실현해 중국 전체 IT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1.5%에서 1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 보물섬 여행 코스
1. 인민대례당: 중경시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중국 현대 건축물전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중국 10대 현대건축물 중 하나이다. 건축 채색과 선의 모양이 전통 건축형식을 계승하여, 주랑(柱廊)과 양쪽 날개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탑의 꼬리부분도 입체적으로 각각 균형있게 짜여 있다. 공연 행사시 5000여명이 한꺼번에 입장하여 앉을 수 있는중앙홀은 뛰어난 내부시설과 완벽한 공연설비를 갖추고 있고, 홀 중간에 기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2. 삼협박물관: 장강삼협의 역사와 중경시의 역사, 문화, 변천사를 전시해 놓은 삼협박물관은 전 세계가 주목한 삼협수리의 주요공정의 산물이다. 삼협 문화재 보호의 장기적인 요구와 삼협박물관의 개조는 삼협지역과 중격지역 문화재의 표본의 보호, 교육방송, 과학연구의 공익 사업기구 사회주의 문화교육사업의 주요한 사업이 되었다. 1997년 이래로 전국 68개 연구소는 중경에서 발굴계획을 수립, 장비묘와 석보채보호 등이 진전을 이루어 냈다. 삼협 박물관 내부는 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시실, 과학연구, 종합 서비스 구역, 휴게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3. 조천문 부두: 중경의 동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장강삼협으로 가는 유람선이 출발하는 장소이다. 매표소에서부터 배의 선착장까지는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굴곡이 심한 대지의 특성상 운행의 편리를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 일대에는 양자강크루즈를 위한 매표소가 모여 있는데, 성수기가 되면 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중경을 오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4. 무릉: 무릉은 중경시 동남쪽에 위치하며 우강의 하류, 무릉산맥과 대루산의 결합부에 자리잡고 있다. 무륭현은 동서로 82.7KM, 남북으로 75KM, 총면적이 2901㎢이다. 무륭현은 중경과180KM 떨어져 있고 남으로는 귀주성과 인접하여 있다. 무륭현은 무릉산맥과 대루산의 결합부에 자리잡고 있어 하천과 협곡이 많고, 골짜기가 많은 지형특징으로 80%가 산지로 동북지역이 지세가 높고 서남쪽이 낮다. 년 평균기온은 15℃~18℃로 최저기온은3.5℃이다. 무륭관광은 주로 천하제일동-부용동, 수상 카르스트원시삼림-부용강, 남국목장-선녀산,세계 최대 천생교군-천생삼교, 지질경관-무륭지봉으로 이루어 진다.
5. 용수협 지붕: 용수협지봉은 무륭현 선년산진 경내에 속하며 현성과 15KM 떨어져 있다. 땅틈은 몇 천만년전에 산지지각변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전형적인 깊은 협곡속의 카르스트지형이다. 협곡은 길이가 5km 너비가 2km 협곡 깊이가 200~500m로 기세가 웅장하다. 협곡 내에 아찔한 절벽과 원시적인 경관들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현재는 엘리베이터, 관광터널 등 인프라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중국 정부의 국가지질 공원으로서 대부분의 협곡들이 그냥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데 반해 용수협 지붕은 직접 들어가서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에서 차이점이 있다. 협곡을 관람하다보면 대형 폭포수와 고목과 흘러내리는 맑은 물 등을 보실 수 있다.
6. 천생삼교: 하늘이 만든 세개의 다리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중국 남방의 카르스트지형 무륭지방의 유명한 관광지로 용식에 의해 만들어지 3개의 천연 다리를 뜻함,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며, 하늘이 만든 위대한 작품 세개의 다리는 각자의 이름이 있는데, 천룡교, 청룡교, 흑룡교로 불리운다. 무륭에 와서 이 곳을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르는 코스이다.
7. 금도협(유람선 포함): 해발 825m에 달하는 금도협은 중경시에 약 90km 떨어져있으며 국가AAAAA급 관광구이다. 몇억년전의 지각운동에 의해 형성된 협곡관광구로서 각종 기이한 협곡 및 지각층으로 세인들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금도협은 전체 길이가 6.2km에 달하여 지세가 험하고 협곡이 험준하고 수림이 무성하고 암석이 기이한것으로 유명하다. 중경직할시 북배구 화금산에 위치하고 중경 시내에서 거리 90km거리에 있다.새로발견된 원시풍경을 가지고 있는 신기한 협곡으로. 수십억년의 협곡유학경관이 주된 볼거리이다.전체길이 6.2km 상하 두부분으로 나뉘는데, 상단은 카르스트 지각운동에 의헤 지면이 잘려서, 금도신공반은 독특한 협곡을 형성했다. 석벽은 매우 날카로우며, 최고 고도는 100m 이상이다.위에는 오랜 덩쿨이 휘감겨 있고 아래에는 계곡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하단은 물이 흘러 침식작용을 하여, 동굴이 여러 생겨났으며, 연못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폭포가 층층이 있다. 석종유, 석이 석주 등이 수천 수만년동안 그 모습을 형성했다. 전국의 제일가는 십리협곡잔도(절벽사이에 매어놓은 다리)로 불릴만 하다. 관광객들에게 중국 제일가는 험한 협곡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8. 자기구 옛거리:자기구고진은 중경시 사평바구 가릉강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송나라시대에 건립된 거리이다. 총면적 1.5평방km이다. 명나라시대에 이름은 백아장이라고 불렀고 변화한 상업거리였으며, 청조시대에는 청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이여서 자기구로 이름 지었다. 역사가 오래되였고 중경에서 중점적으로 보호하는 전통적인 미식거리이다.
9. 대족석각: 중경시에서 81㎞ 떨어져 있으며, 석각의 주 표현양식은 마애불상의 석굴양식이다.대족석각은 초당(初唐)부터 지어지기 시작하여 오대(五代)를 지나 양송(兩宋)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그리고 불(佛), 도(道), 유(儒) 세 종교의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져 전기석 굴과는 다른 점을 지닌다. 선명한 민족화, 세속화, 지방화된 특색을 갖고 있어서 실물형상과 문자 사료 등으로도 많이 운용되며, 당송 시기의 석굴 예술의 풍격과 민간 종교신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0. 해방비거리: 한국의 명동
11.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등이 임명되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기틀을 잡았다. 6월 11일 임시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한편 내각을 개편하였는데, 의원내각제가 정부형태의 주류를 이루었다.
충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1945년 1월부터 9월까지 중국 내에서 마지막으로 자리잡았던 곳이다. 중일전쟁 후 경제적 후원을 받던 중국 국민당 정부를 따라 중경으로 이전한 임시정부는 이곳에서 항일전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1991년 12월 도시개발 계획으로 청사가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현대와 LG, 대림, 대한항공, 고합그룹이 협찬하여 복원작업에 착수하여, 1995년 8월 11일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청사는 상해 임시정부 청사의 12 배가 넘는 313평 규모로, 5호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집무실의 진열품들은 1940년대 당시 사용하던 물품들을 수집하여 전시한 것들이다. 1호 건물에는 김구 선생 흉상과 임시정부에서 사용했던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 2~5호의 각 건물에는 김구, 조소앙, 신익희, 조완구 선생 등 당시 임시정부를 이끌던 각 부서 지도자들의 숙소와 집무실로 사용되던 방들이 있다. 원래 주석 비서실 뒤에는 일본 폭격기 공습에 대비한 방공호가 있었으나 현재는 자취조차 찾을 수 없다.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발자취


◈ 충칭의 명소
●홍애동(洪崖洞): 충칭 전통의 산비탈에 기대어 지은 ‘조각루(吊脚樓)’식 건물이다. 언덕의 1층이 강가의 11층이 되는 방식의 건물이다.
●십팔제(十八梯): 명(明)나라 시절 우물이 있던 곳으로 주민들 거주지 사이에 18개의 돌계단과 함께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아령공원: 청말 초대 충칭상회 회장의 별장터로 신중국 성립 후에는 서남군구 사령부 주둔지였다. 쓰촨 출신 덩샤오핑(鄧小平)이 이곳에 머물렀다.
●창장케이블카: 충칭의 ‘공중 복도’로 불린다. 충칭의 랜드마크다.
●자기구(磁器口): 충칭의 인사동이다. 옛 전통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다. 18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래탄고진: 중국의 10대 아름다운 거리 중 하나로 꼽힌다. 고성이 아름다운 윈난(雲南)성의 리장(麗江)과 비슷한 분위기 때문에 충칭의 리장이란 별칭이 붙었다.
●가락산(歌樂山): 과거에는 충칭 12경 중 하나인 ‘가락영음(歌樂靈音)’으로 유명했다. 충칭이 국민당의 수도였을 당시 지하에서 활약하던 공산당원의 활동 근거지였다. 소설 ‘홍암(紅岩)’의 무대가 이곳이다.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혁명가요 부르기인 창홍(唱紅) 캠페인을 펼친 것도 충칭의 이런 뿌리 깊은 혁명 전통이 배경이 됐다.
●조천문(朝天門): 충칭의 상징이다. 창장과 자링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 위치한다. 충칭 서민들의 앞마당이다.
●해방비(解放碑): 충칭에는 ‘3000년 강주성(江州城), 800년 중경부, 100년 해방비’란 말이 있다. 충칭의 최대 번화가인 해방비 앞을 지나는 미녀들의 모습은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