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커버스토리: 통일준비 '개점휴업'
부제
  통일준비
일시
  2016.06.18
작성일
  2016-06-22
조회수
  1001

   
 
 
 
 
 
[토요판 커버스토리]
1. 통일 준비 ‘개점 휴업’

동아일보, 윤완준기자 , 조숭호기자, 2016-06-18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90년 2월 동독 주민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실제로 1989년 10월부터 1990년 1월까지 4개월 동안 30만 명 이상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특히 1990년 1월 들어서는 매일 2000명 이상이 서독으로 옮겨왔다. 한 달간 이주한 사람이 5만8000명이 넘을 정도였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독일에서 겪었던 것처럼 북한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남쪽으로 쇄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처럼 매일 탈북자 2000명이 쏟아지는 사태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유사시 정부는 휴전선과 인접한 육·해군 부대 8곳에 탈북자 임시수용소 10곳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그야말로 수용소일 뿐, 포용·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 2000명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본 적도 없다(2015년 1년간 입국한 탈북자는 1276명).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그동안 탈북자의 정착 교육은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것을 받아들여라’는 식이었지,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생을 추구하는 차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해마다 탈북자 1000명 이상이 한국 땅을 밟았지만 그동안 입국한 탈북자(2만8786명)는 특정 지역(함경남북도 71%), 특정 계층(노동자·무직 86%)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공생 학습을 할 충분한 기회가 없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북한 땅에 묶어둘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동독 주민들의 서독행 엑소더스가 한풀 꺾인 것은 서독 정부가 동·서독 화폐를 통합하기로 발표한 뒤였다. 1989년 4.5%의 경제성장률과 국민총생산(GNP) 대비 재정 적자가 0%였던 서독과 달리 한국의 현재 경제 체력은 내수 시장을 부양하기에도 취약한 실정이다.

“통일되면 북한 핵무기는 우리 것”이라는 착각
그동안 통일은 ‘당연히 해야 할 것’ ‘되면 좋은 것’이라는 당위론에 묻히면서 실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제대로 논의한 적이 드물었다. 국민의 ‘통일’에 대한 생각도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일되면 북한 핵무기는 한국 것이 된다’는 식의 생각이 대표적이다. 김숙 전 유엔대사는 “‘핵 비보유국은 핵무기를 만질 수 없다’는 것이 핵 보유국들의 묵시적 합의사항”이라며 “유사시에도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이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핵 비보유국이 핵무기를 손에 넣거나 핵무기 제작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비확산(non-proliferation)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전 대사는 “북한 핵무기는 미군이 처리하거나 유엔의 협조하에 중국, 러시아가 함께 처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주민들은 통일을 갈망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순진한 접근이다. 탈북자 정착을 돕고 있는 박석길 링크(LINK) 정보전략부장은 “최근 한국에 온 탈북자 J 양은 1997년생으로 ‘고난의 행군’(1990년대 북한 대기근)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 장마당 시장경제에 익숙해진 북한의 젊은층에서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을지훈련 실시, 충무계획도 있지만…
일반인의 통일 인식이 순진하다면 정부의 통일 대비는 허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역대 정부는 충무, 부흥계획 등의 이름으로 북한 급변사태 대응 계획을 세워왔다. 북한 최고지도자 유고(有故), 무정부 상태, 쿠데타 등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식을 담은 것이다. 남북의 통합을 강조했던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의 호를 따서 한때 ‘고당계획’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유사시 정부는 북한 지역을 수복해 행정통치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북한의 실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미덥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여전히 북한을 1945년 광복 당시 기준인 ‘이북 5도’(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로 부르고 있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행정구역이 1946년 강원도, 1949년과 1954년 자강도·양강도가 신설되는 등 1직할시(평양), 2특별시(남포, 나선), 9도로 바뀐 현실과 맞지 않다. 전 청와대 고위 안보당국자는 “지금의 이북5도위원회는 실향민을 정서적으로 끌어안은 조직이지 통일 준비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평안남도지사를 지낸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도 “정부가 차관급 이북 5도지사를 임명해 놓고 정작 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은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북5도위원회 관계자는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통일부 산하가 아니라 행정자치부 산하인 점도 통일 준비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년 8월 ‘비상대비자원관리법’에 따라 모든 정부기관이 참여해 전쟁연습인 ‘을지훈련’도 실시하고 있지만 공무원 사이에는 “훈련은 휴가 못 가는 기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통준위, 대북정책과 다른 목소리 못 내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외치며 발족시킨 통준위는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로는 개점휴업 상태다. 대통령 주재 회의는 지난해 11월 제6차 통준위 회의 이후로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지난해에는 통준위가 정부의 대북정책보다 나아간 남북협력 방안을 제시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준위가 ‘로키(low key·저자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리 정보는 국토부’ ‘날씨 정보는 기상청’ 식으로 각 부처에 흩어진 북한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시너지를 발휘하려면 통준위 같은 총괄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직 고위 당국자 A 씨는 “통일 과정에서 독일이 동독 주민의 이주, 국유재산 처리, 사회보장·정치체제 결합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을 쏟아 부은 실질적 통합 문제에 우리 정부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통일정책은 흡수통일론? vs “북한 안 망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외교적 고립 압박 △제재를 통한 북한 변화 유도로 요약된다. 이 정책의 바탕에 ‘북한 붕괴론’이 깔려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실제 정부 내부에도 ‘2015년이면 (북한 붕괴로) 남북통일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정부가 그동안 지향하던 ‘신뢰 프로세스’ ‘통일대박론’과 지금의 대북 압박정책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향후 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한 유럽국가 소속의 한 외교관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 갑자기 압박정책으로 돌아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1월 4차 핵실험, 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유로 들지만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때에는 없었던 강경책이 지배하게 된 배경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을 외교적으로 굴복시킬 시점이 언제인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북한이 변할지 등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오래 상대해 온 중견 외교관은 “모든 대외정책에는 출구전략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북정책은 출구도, 지향점도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대북제재의 결집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중국이 북한과의 대화론을 내세우고 미국이 이에 동조할 경우 한국은 고립무원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시아·중동 국가들이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도 유엔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대북압박 외교의 성과로만 홍보하는 것은 실제 모습을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현 정부가 이명박(MB) 정부와 같은 논리적 함정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MB 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2008년)과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2010년)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북한을 상대할 수 있느냐”며 대북 강경론을 지속했다. 제재 및 압박으로 북한의 태도를 돌려놓겠다는 셈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은 살아남았고 핵능력은 더 고도화됐다. 통일부 간부를 지낸 B 씨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2018년이면 김정은 체제도 출범 7년째를 맞게 된다. 7년간 생존한 정권을 취약하다고 부를 수 있겠나. 북한이 망할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 ·윤완준 기자


2. 통일비용 최대 4822조… 北주민 복지비용에 재정절벽 우려
손영일기자 , 정임수기자, 2016-06-18

‘원화 가치가 흔들리면서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을 겪는다.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다. 북한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나랏빚이 빠르게 늘어난다.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로 인플레이션이 찾아온다. 원자재 수입이 늘면서 경상수지는 악화된다….’

남북한의 통일이 예고 없이 찾아왔을 때 단기 및 중기에 걸쳐 한반도 경제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전문가들은 통일경제의 ‘대박’은 생각보다 천천히 찾아올 수 있다며 일단은 단기적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년 전부터 경제부처들도 저마다 남북한의 급진적인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경제통합의 기초적인 시나리오들을 짜 놨다. 하지만 아직은 로드맵 수준에 그칠 뿐 구체성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단지 경제통합을 무작정 서두르기보다는 남북한을 한시적으로 분리했다가 점진적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원칙만 세우고 있을 뿐이다.


남북한 격차 커… 일단 분리하는 것 외엔 답 없어

통일에 대비하는 정부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 경제의 인프라가 너무 낙후돼 있어 이를 새로 정비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또 북한 지역에 대한 자료 조사나 데이터 확보가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는 점도 통일을 미리 준비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 부문의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현재 북한은 일반 시중은행이 전혀 없고 중앙은행 격인 ‘조선중앙은행’이 상업은행 업무까지 맡아 220여 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지점들은 가계의 예금을 받는 기능을 일부 하지만 대출은 해주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제도권 밖에서 고리대금업자들이 가계에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실정이다. 금융시장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가장 기본적인 혈맥의 역할을 하는데 북한 경제는 약 70년 동안 사실상 제대로 된 금융시장·산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당장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북한 경제를 한시적으로 분리하는 것밖에는 없는 실정이다. 가장 중요한 화폐부터도 당분간은 남북이 ‘2화폐’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다가 장기적으로 경제력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판단되면 단일 화폐로 통합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한 경제력의 차가 워낙 큰 시점에 성급히 화폐 통합을 했다가는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도 통일 초기에 1 대 1의 비율로 동서독 화폐 통합을 단행했지만 이로 인해 동독 화폐가 고평가돼 동독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기업 도산으로 실업이 급증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재정 문제도 당장 ‘발등의 불’이다.
북한에 철도 도로 전력 통신 등을 깔아주는 ‘투자성 지출’의 경우 그나마 민간자금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 유엔 등 국제기구의 참여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면 북한 주민의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는 ‘소비성 지출’은 오롯이 정부 부담이다. 현재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의 5%대에 불과하다. 통일 이후 남한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가감 없이 북한 지역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북한 주민 거의 대부분이 제도 수급자가 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주민에 대한 재정 지출이 급증해 단기적인 ‘재정 절벽’이 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통일재원 마련 방법도 ‘깜깜’… ‘재정절벽’ 올 수도
남북한 통일비용도 연구 주체와 조사 방법에 따라 제각각이다.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선 통일 후 향후 50년간 통일비용을 최소 2316조 원에서 최대 4822조 원으로 추산했다. 최대치로 계산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의 3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금융위원회가 2014년 내놓은 보고서는 통일 이후 20년간 북한 경제를 재건하는 데 5000억 달러(약 586조 원)의 통일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통일기금 조성 △국공채 발행 및 차관 도입 △부가가치세 인상 등 다양한 통일비용 마련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관(官) 주도로 통일기금 조성 사업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금융위는 국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채권 발행 등을 통해 통일비용의 50∼60%인 2500억∼3000억 달러를 조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나머지는 국내외 민간투자 자금과 통일 후 북한의 자원 개발 이익 등으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 재정 건전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공채를 발행하거나 차관을 도입하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 일각에선 부가가치세 인상을 주장한다. 한국은 1977년 부가세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10%의 단일 세율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부가세 인상은 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을 지우는 ‘역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를 먼저 도출해야 한다.

물론 통일 전에 북한 경제가 개혁개방을 통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다면 통일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들이 중심이 된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지난해 구상한 ‘4단계 남북경협 추진안’에도 이런 기대가 담겨 있다. 추진안에 따르면 정부는 개성공단에 이어 북한 주요 도시에 경협 거점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평양-개성-남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남북 경협벨트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가들로부터 “현재 남북 관계를 감안할 때 선언적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정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