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튀르키예
부제
  연구소장 이재형 튀르키예 역사기행
일시
  2022.07.03
작성일
  2022-07-04
조회수
  15

   
 
 
 
 
 
 
 
 
 
 
 
 
 
 
 
 
 
 
 
 
 
한국과 튀르키예

1) 양국 관계
금년은 한국과 튀르키예(터키)가 수교한지 65주년을 맞이하는 해입
니다. 1957년 수교 이래 양국은 튀르키예의 6.25 참전을 바탕으로
2002년 월드컵 4강전, 2012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2013년 한-튀
르키예 FTA 체결 등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올해 개
통한 차낙칼레 대교〔우리기업 DL이앤씨(옛 대림산업)·SK에코플렌트
(옛 SK건설)와 터키기업 리막(Limak)·야프 메르케지(Yapi Merkexi)가
합작해 건설〕는 주탑사이가 세계에서 최장인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대교일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와 번영을 여
는 역사적 대교로써 한-튀르키예 경제협력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작년 한-튀르키예 올림픽 배구 8강전 계기로 우리 국민이
튀르키예에 기부했던 15만 그루의 묘목 심기가 6개 지역의 "한-튀르키
예 우정의 숲" 조성을 통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처럼 양국관계도 더욱 발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튀르키예는 한국의 형제국
①인구 ; 7,120만 명 ②국토 : 780,580평방 km(한반도의 약 3.5배)
③수도 ; 앙카라(Ankara) ④인구 : 약 360만 ⑤국민소득 ; $ 9,000 /1
인당 그런데 튀르키예 는 우리나라를 ‘Brother Country’라 하며, 헝
가리는 우리나라를 ‘Sister Country’라 부르고 있습니다. 형제국이
라는 그 이유를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6.25 때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파병된 15,000명이 넘는 튀르키예 군 대부
분이 자원병이었으며, 그중 3, 500명이 전사했습니다.
튀르키예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튀르크’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 고구려와 동
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투르크
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
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었습니다. 그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당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
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지금의 튀르키예에 자리 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
전히, 그리고 당연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당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
여 결국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원래, 나라와
나라 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돌궐
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요? 그리고 튀르키예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
요? 그 답은 간단합니다. 역사 교과서의 차이입니다. 우리나라의 중,
고교 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튀르키예 는 다릅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
국’을 경험했던 튀르키예 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
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입니다. 돌
궐 시절의 고구려는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 한국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튀르키예인들은 한국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국민이
2002월드컵에 참여한 커키팀에게 ‘한국과 튀르키예 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를 응원하자!’ 라는 내용의 인터넷 글이 올라와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습니다. 우리국민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튀르
키예의 경기장에서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한
국과 튀르키예 의 3, 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튀르키
예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튀
르키예 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2) 튀르키예어 기본회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아드느즈 네?(Adınız ne?)
저의 이름은 00입니다 : 베님 아듬 00(Benim adım 00)
어디(나라)에서 오셨습니까? : 네렐리 시니즈?(Nerelisiniz?)
나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 벤 규네이 코렐리임(Ben Güney Koreliyim)
몇 살입니까? : 카츠 야슨다스느즈?(Kac yasindasiniz)
20살입니다. : 이르미 야슨다이음(Yirmi yoındayım)
나는 학생입니다. : 벤 외렌지임(Ben öğrenciyim)
방이 있습니까? : 오다느즈 바르 므?(Odanız var mı?)
하룻밤에 얼마입니까?: 게젤리 네 카다르?(Geceliği ne kadar?)
얼마예요? : 네 카다르?(Ne kadar?)
너무 비싸요.: 부 촉 파할르(Bu çok pahalı)
깎아 주세요.: 인디림 와르 므(İndirim var mı)
영수증을 주세요. : 막부즈 륏트펜(Makbuz lütfen)
이것이 무엇입니까? : 부네?(Bu ne?)
화장실이 어디에요? : 투발렛 네레데?(Tuvalet nerede?)
생맥주 한 잔 주세요. : 뷔르 프츠 비라쓰 뤼트펜(Bir fıçı birası
lütfen)
도와 주세요! : 임타트(Mdat!)
경찰관을 불러주세요! : 폴리스 차으른(Polis çaırın!)
여권을 분실했습니다. : 파사포르투무 카이베팀(Pasaportumu
kaybettim)

◈ 인사
안녕하세요.(Hello) - Merhaba. 메르하바
안녕하세요.(아침인사)-Günaydin. 귀나이든
안녕하세요.(저녁인사)-İyi akşamlar. 이이 악삼라르
안녕히 계세요. Hoşça kalin. 호 쉬차 칼른
좋은 하루 되세요 İyi günler. 이이 귄레르
감사합니다. Sâul 싸울
예(yes) - Evet. 에벳 아니오(no) - Hayir. 하이으르
실례합니다.(Execuse me) - Affedersiniz 아페데르시니즈
미안합니다!(Sorry) - Pardon 파르돈
또 봅시다! Tekrar görüşürüz! 테크라르 괴뤼쉬뤼즈
아주 좋아요 (Very good) - çok güzel 촉 규젤

◈ 음식용어
물 - su 수 맥주 - bira 비라
컵-fincan 핀잔 차림표- menü 메뉘
이쑤시개-kürdan 퀴르단 소금- tuz 투즈
설탕-şeker 쉬케르 커피-kahve 카흐붸

◈ 숫자
1 - bir 비르 2 - iki 이키 3 - üç 위츠 4 - dört 되르트
5 - beş 베쉬 6 - alti 알트 7 - yedi 예디 8 - sekiz 세키즈
9 - dokuz 도쿠즈 10 -on 온 20 - yirmi 이이르미
1000 - bin 빈 2000 - ikibin 이키 빈

3) 튀르키예 관광팁
튀르키예는 축복받은 지중해성 기후와 오스만 제국의 풍부한 역사에서
영향을 받아 관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제1의 도시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광대한 도시로, 관광객이 보고 즐길 거리
가 풍부합니다. 달얀의 진흙탕에 풍덩 빠져보거나 괴레메의 화산암 주
변을 오르며 둘러보세요.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헤엄쳐서 보드
룸 주변의 고대 난파선을 구경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커피와 디저트를 절대 놓치지 마세요. 튀르키예는 세계적인 관광대국
으로 고대 로마나 그리스 유적에서부터 히타이트 유적들, 사도 요한의
무덤이나 성모 마리아의 집, 묵시록 7대 교회 유적 등 기독교 초창기
유적들도 넘쳐나비다. 일례로 한국이나 유럽이나 중남미에서도 기독교
성지여행 코스로 튀르키예는 요르단, 이스라엘과 더불어 필수코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성지도 그렇고 온갖 유적지가 넘치니 문화유산도
넘쳐납니다. 오스만 제국 황궁이던 톱카프 궁전 박물관만 살펴봐도 대
략 290만 점에 달하는 유물이 있는데, 자국 문화재만이 아니라 고대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이겨 잡아온 장인들이 만든 온갖 문화재들, 전리
품으로 가져온 문화재들도 상당하며 중국이나 동북아시아로부터 온 문
화재도 수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로마나 그리스 유적을 보고자
이탈리아나 그리스에 가지 말고 튀르키예를 가라는 말이 있는데, 가보
면 실감이 납니다.